안희정 사건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준 것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edited)

안희정에 관한 글은 더 이상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존경하는 형님이 안희정 사건의 직접적 여파로 엄청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셔서 이렇게 마지막 글을 남깁니다.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신한 정치인

저는 노무현 정권 말부터 이명박 정권 중반기까지 언론시민운동을 4년 동안 하면서 조선일보, 검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과 직간접적으로 투쟁했습니다. 지금은 고향 제주로 내려와 어린이, 청소년, 부모님을 대상으로 그림책과 인문고전, 글쓰기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6.15지방선거와 노무현 서거 특별판 배포 행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민주당이 야당이었던 시절 6.15지방선거를 위해서 강원도 등 산간오지에 경향, 한겨레, 시사인 등 이른바 정론매체를 배달하며 유권자들이 부자 신문사의 논조에만 귀를 기울이지 않게끔 전국의 시민들과 함께 배달 운동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시사인, 한겨레21, 위클리경향 세 개의 회사와 함께 추모 특별판을 배포했습니다. 확산의 방식도 조직적인 방식에서 개인의 주변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저도 시사인을 들고 이웃집 문을 두드려 캠페인을 설명하고 수줍게 건넸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정치적 호오를 떠나서 인간 노무현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순간에 개개인의 인간으로서 지인이나 가족, 이웃 등에게 그의 이야기를 전하자는 캠페인은 세계 여러 나라의 교민들까지 참여하면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 인생에 이보다 더 감동적인 기획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6.15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크게 선전하였죠. 하지만 4년 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현실정치'에 대한 모든 기대를 완전히 접었습니다. 만약 한국 정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몇 년간 뛰었다면 아마도 제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순수한 시민들이나 시민단체는 소모품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영광을 위해서 끊임없이 소모되어 줘야 하죠. 소모되고 버려지고 새롭게 소모되고 버려지고. 하지만 '그들'은 소모되지 않습니다.

한국정치의 진정한 변화를 바라는 열망을 마치 그들이 소유한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국정치구조는 영향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 지분을 소유하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총선, 지방선거, 대선 등 선거 때마다 마치 마약을 투약하듯 수발이 될 사람들을 소모하고 그들은 왕관을 바꿔가며 쓰죠.

진정한 정치 변화를 바라는 시민이라면 선거 결과에 일희일비하거나 특정 정치인의 신상변화에 동요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 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정치구조와 정치인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정치구조를 바꾸는 것은 시민이며, 현재의 더러운 정치구조를 고수하려는 것은 정치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정치인들은 한국정치의 적입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차악'이 아니라 '최악이 이미 예약된 차악'입니다. 뼈아픈 좌절감과 패배감을 위로해준 것은 막스 플랑크의 한마디였습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반대자를 납득시키거나 그 빛을 보게 함으로써 승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반대자들이 마침내 죽은 뒤 새로운 세대가 그 빛에 친숙해짐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A new scientific truth does not triumph by convincing its opponents and making them see the light, but rather because its opponents eventually die, and a new generation grows up that is familiar with it.
『과학 자서전-초상화와 막스 폰 라우에의 장례식 연설』중에서
요한 암브로시우스 바르스 출판사, 라이프치히 1948년판

저는 인문고전과 그림책에 침잠하며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정치변화를 아직도 꿈꾸고 있습니다. 저의 결론은 지금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제가 가진 모든 지식과 능력을 쏟아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청소년, 가족교육이 제 중심대상이 되었고, 인문고전과 문학고전, 그림책이 도구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한비자>와 <논어>를 집중해서 읽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야당 정신'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여당이 되는 순간, 또는 권력에 맛을 들인 순간 뇌가 이상해집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여당이 되거나 권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야당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야당 정신을 놓으면 결국 부패나 성추행 같은 것을 건드리게 됩니다. 안희정 때문에 큰 실의에 빠진 형에게 한비자가 중요한 말을 해놓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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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재앙을 당하면 마음이 두렵고 마음이 두려우면 행동을 바로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자에 말하기를 '화란 복이 의존하는 곳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공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과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뜻 밖의 사건으로 그 사람과 파혼을 했다면 몹시 고통스럽고 좌절감에 빠지겠지만 그 사람과 결혼했다면 수십배의 좌절과 비참, 불행을 가져올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지금의 좌절이 사실은 행복일 것입니다. 그가 만약 지금 안 걸리고 진짜 차기 대통령 선출되었다면 그 참담함이 지금과는 또 다르겠죠. 이것이 사람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고, 불행한 일을 통해서 정신 차리고 그 덕분에 더욱 행복해지는 거죠.

안희정 사건은 많은 사람을 가슴아프게 했지만 분명한 사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의존보다는 새로운 정치구조를 위해서 시민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형, 힘내세요. 그리고 다시 일어서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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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6.13 지방 선거에 큰 영향이 없기를 바라며, 조속히 국민 앞에 나와 진실을 밝혀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팔로우 & 보팅합니다.

@ranesuk 님//저도 마음이 무겁고 일이 잘 잡히지 않아서 쓰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더라고요. 팔로우&보팅 잘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용히 보팅 누르고 갑니다. 그래도 올바른 방향으로 대한민국이 간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hyunwungjae 님//고맙습니다. 크게 보면 올바른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사람이 벌을 받은 거니까요~

그래. 큰 위안을 얻고 간다. 이게 다음 대선에 터졌으면 어쨌을까...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고작 일년 반 밖에 허비하지 않아 다행이다...

그리 생각해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그가 이런 사람인 건 전혀 몰랐어요. 알았다면 말렸겠죠. 이것도 결국 결과론이지만 반복이 너무 심해서 일정한 법칙처럼 되어 버렸네요. 기운 차리시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저로선 행복할 따름입니다~

이럴때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해야하나요... 대한민국은 한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될꺼에요! ^^

네. 맞습니다. 한 단계 성숙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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