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나무를 후려치다 / 안해원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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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를 후려치다 / 안해원

홀로 거울 앞에 앉아 검게 탄 얼굴을 바라보며
유달리 빨갛던 배니*를 입술에 발라보곤 하셨던 어머니
서리 내린 새벽마다 물 길어 쇠죽을 끓이고
아궁이 속 빨갛게 달아오른 장작불에 시린 손 위로 삼아
하얀 입김 불어가며 꽁보리밥 지어 아들들 주시고
배부르다며 돌아나가 누룽지만 드셨던 어머니
눅눅한 부엌문 열고 더 달라며 밥그릇을 내밀다가
움텅한 두 눈에 피어있던 동백꽃을 보았다
매워서 연기가 매워서 그렇다고
빨갛게 달아오른 아궁이를 보며 꽃물을 훔쳐낼 때마다
동백분이 화르르 피어올라 얼굴 위로 사라져 갔다
그 후로 동백나무가 괜스레 미워져
밤마다 몰래 작대기로 후려치기를 몇 번
동백나무는 끝내 꽃을 피우지 못했다
이제 손이 시리지 않아도, 배를 곯지 않아도 되는데
병상에 누워 눈을 감고 투석을 받는 어머니 몸에서
빨간 꽃물이 비닐 호스를 타고 흘러나온다
배고파서 봄날이 그리워서 동백꽃을 드셨나보다
비늘 갑옷을 두른 동백나무 같았던 내 어머니를
작대기로 후려쳤었다는 것을 모르고
어머니의 봄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대기만 곁에 서 있다

*립스틱을 뜻하는 경상도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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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과 어머니 슬프기도 하지만 아름답기도 하네요
병상에 계신 어머니 힘내시길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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