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H2
1992, 아다찌 미쯔루
아다찌 미쯔루는 80년대를 대표하는 중견작가이다. 많이 알려진 아다찌 미쯔루의 작품들은 스포츠를 주소재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를 인기만화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터치'가 대표적이다. 그의 만화에서 거의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갑자원, 소꿉친구, 누군가의 죽음 등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쌍둥이 형제와 이웃집 소꿉친구, 형제 모두 그녀를 좋아하지만 형은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만 지켜본다. 야구부 에이스였던 동생이 사고로 죽으면서 이제는 형이 야구공을 대신 들고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다. 어쩌면 아다찌 미쯔루 등장 이전 일본 소년만화계를 지배했던 '열혈'이라는 키워드를 대체하는 신호탄으로 봐도 될 작품의 등장이었다.
아다찌의 작품 속에서 소년들은 운동을 하지만 그것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는다. '터치'의 쌍둥이형 타츠야, 'H2'의 주인공 히로는 그런 주인공들이다. 갑자원 우승을 위해 다른 즐거움을 모두 봉인한 채 피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주인공은 아다찌의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다. 일본의 이전 세대 스포츠 만화의 대표작이었던 '거인의 별'이나 '맨발의 죠'에 익숙한 독자라면 근성 없는 놈들이라고 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아다찌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스포츠라는 장치를 빌렸을 뿐이다.
아다찌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이다. 동적인 움직임이 강조될 수 밖에 없는 스포츠를 주요 소재로 차용하면서도 그의 만화는 굉장히 정적이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야구 경기 속에서도 강조되는 것은 빠른 강속구나 호쾌한 홈런 같은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묘사이다. 그리고 그런 묘사는 결코 행동이나 대사로 표현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들의 말 등을 최대한 생략하면서 장면과 장면 사이에 의도적인 여백을 삽입하여 표현력을 극대화한다. 장면 전환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용한 케이스이다.
'터치'에서 시작한 아다찌의 야구만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성장만화)는 'H2'에서 정점을 이뤘다. 그의 독특한 연출기법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가 이전 작품들에서 구축해온 일종의 아다찌 정석과도 같은 작품이다. 야구라는 소재를 빌려 경계선과도 같은 위치에 서 있는 주인공들의 성장스토리를 매우 여운 있게 표현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H2' 이후의 작품들에서 아다찌 미쯔루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틀에 갖혀 버렸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H2'에서 보여준 그의 이야기들이 너무도 인상적이었고 다른 기대를 갖게 만들었지만, 오랜 시간 뒤에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다찌가 성장하지 못했다는 표현은 과도했다는 생각도 든다. 스스로가 결정한 것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