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82년생 김지영

in #kr9 years ago

 김지영씨의 삶을 설명하는 정신과 의사의 모습은 희극에 가깝다. 교수의 삶을 포기하고 육아를 선택한 자기 부인의 삶을 옆에서 보지 않았다면 여자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나 같이 일하는 직원은 미혼으로 뽑아야겠다는 그의 독백은 일종의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그리고 그건 역시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과거와 현재의 이곳에 대한 지극히 얌전한 냉소이다. 그래서 김지영씨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2016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가장 논쟁적인 이슈 중 하나는 '여성 혐오'였다. 강남역 화장실에서 발생한 묻지마 여성 살인 사건은 상징적이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살해했는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없었다. 한 남성이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화장실에 처음 들어온 '여성'을 무차별 살해한 것이다. 세간에 여성혐오 살인사건으로 알려지면서 여성의 인권에 대한 담론들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물론 여러가지 의견들이 충돌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이 남자가 저지른 사건을 무조건 여성혐오와 연결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거나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와 등치시키는 담론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 등이다. 그런데 여성혐오에 대한 이 담론의 구조는 본질적으로 성차별과 관련하여 벌어지는 논쟁 속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그 전에 살펴볼 문제가 있다. '여성혐오'와 관련해서 빠뜨릴 수 없는 주인공들은 바로 일베와 메갈리아이다. 일베는 기본적으로 여성, 전라도, 민주당을 혐오하는데, 메갈리아는 이 중 여성에 대한 성적위협과 성대상화를 그대로 돌려주자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남성혐오 사이트이다. 그래서 메갈리아에서는 보통의 남초사이트에서 흔하게 튀어나오는 마초적인 성적 표현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바뀌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방식을 미러링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은 '메갈리아'를 '여자 일베'로 보았다. 전태일 열사, 안중근 의사와 성적 소수자까지 비하하는 메갈리아는 혐오적인 표현으로 자신들의 불만을 쏟아내는 패륜적 집단이며 페미니즘 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 경향 등 흔히 진보진영쪽으로 분류되는 매체들에서 '메갈리아'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시사인'의 '정의의 파수꾼들'(467호 게재)일 것이다. 시사인은 메갈리아를 '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로 보았다. 많은 남자들이 이 기사에 분노했는데, 시사인에서 내부적으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절독자가 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 


 시사인이 기사에서 보여준 혐오의 모델을 간략히 하면 이렇다. 세상에는 여성을 차별하고 성적으로 착취하는 남성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남자들도 존재한다. 여성혐오를 담지하고 있는 구성원은 일부이지만, 그 대상은 여성 전체가 될 수 밖에 없는 비대칭구조가 이루어진다. 메갈리아는 여성혐오를 그대로 미러링하기 때문에 이 비대칭구조 또한 똑같이 이식될 수 밖에 없다.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 남자들(시사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선량한 남자') 또한 메갈리아의 공격대상이 된다. 그래서 선량한 남자들은 분노했다. 


 기사를 읽은 많은 남자들은 메갈리아를 혐오주의의 문제로 보았는데, 시사인은 그걸 젠더의 문제로 바라본 것이다. 자신을 '선량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과 메갈리아 사태가 건드리는 지점들이 불편하다. 어쩌면 정신과 의사도 '선량한 남자들' 중 한명일지도 모른다. 그는 김지영씨가 육아우울증이라고 생각한 것이 성급했다고 자책하면서 동시에 태연하게 성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는 생각을 한다. 자신을 짓누르는 현실에서 도망친 김지영씨처럼 그 또한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메갈리아의 태생에서 알 수 있듯이 그곳은 일베와 쌍둥이이다. 서로를 거울에 그대로 비쳤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접점을 찾을 수 없다. 극단까지 가버린 이 쌍둥이들이 언제 사라질까. 그 답을 먼저 찾아야 할 것 같다. 김지영씨와 정신과 의사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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