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파인딩 포레스터

in #kr9 years ago

2000, 구스 반 산트 연출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마. 말을 하게 되면 모두 그리워질 테니까."

 사우스 브롱스의 한 공터, 농구 골대가 있고 몇명의 흑인 소년들이 그 곳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게임이 끝난 소년들은 늘 해왔던 것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 코트 건너편에 생뚱 맞게 홀로 서있는 작은 아파트의 꼭대기층을 바라본다. 창문이 열려 있는 그 곳에는 누군지 모를 어떤이가 살고 있지만 소년들은 일종의 괴담처럼 그의 정체를 추리한다. 분명 무서운 존재일 거라는 결론을 내리며. 

 작가지망생인 소년(자말 월러스)는 우연한 기회에 그 꼭대기층에 사는 사람과 마주친다. 그는 괴물이 아니라 완고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젊은 시절, 평단의 극찬을 받은 한 소설을 쓰고 나서 위대한 작가가 되었지만 몇십년 째 은둔해 살고 있는 윌리엄 포레스터가 그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세상을 피해 살았던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말에게 자신의 창작기법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일종의 작가수업은 이렇게 시작된다. 윌리엄의 모델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제롬 D 샐린저이다. 화려한 모습 뒤에 숨겨진 문단의 위선과 허위에 염증을 느껴 모습을 감췄던 샐린저가 그의 모습과 뚜렷이 겹쳐진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윌리엄의 말과 행동은 상당히 낡았다. 아파트에 틀어박혀 오래된 책들을 읽으며 타자기로 글을 쓴다. 가끔은 새벽에 나가 아무도 없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며 돌아다닌다. 그의 시간은 분명 몇십년 전 어딘가에서 멈춰있는 것으로 읽힌다. 자말은 농구를 좋아하는 흑인소년이다. 자신 앞에 놓여진 선택과 새로운 길 위에서 주저하지 않는 작가지망생이다. 하지만 그의 집은 수많은 뉴욕 빈민가 중 하나이고 아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형은 주차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어머니는 아들의 문학적 재능에 대한 기대보다 학비에 대한 걱정이 큰 평범한 가장에 가깝다. 문학과는 어딘가 동떨어져 보이는 자말의 환경을 덧댄 그들의 이야기는 문학의 본질에 더 다가가려 한다. 

 단 한권의 소설로 퓰리쳐상을 수상했던 윌리엄의 말은 재기가 넘치면서도 냉소적인 칼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말이 쓴 글을 비평하며 자신이 글쓰기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자말은 그의 말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끌리듯 그의 집을 계속 찾는다. 쓸데 없는 생각을 집어던지고 자신 안에서 솟구치는 진짜 문장을 쏟아내라는 윌리엄의 말에 공명하며 그는 조금씩 성장해 간다. 
 하지만 시간이 멈춘 듯한 낡은 아파트 안에서 자신의 문학론을 이야기하는 윌리엄은 새로운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젊은 작가 자말과 결국 부딪힌다. 그가 설파하는 문장론은 이 낡은 아파트 안에 갖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어기고 윌리엄의 글을 인용한 글을 수업시간에 발표한 자말은 표절 의혹을 받는데, 윌리엄은 자신의 방을 열고 밖으로 나가 자말의 누명을 벗겨줄 수 없다. 자신의 방 안에 그리고 과거의 시간 속에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책한 권 속에 갖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말을 구해주지 못하고 고민하는 윌리엄의 모습은 결국 글쓰기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자신이 스스로 세상을 버리고 천착했던 자신만의 글쓰기는 과연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낡은 시간 속에 멈춰있던 마지막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는 결국 닫았던 문을 열고 새로운 이야기를 쓸 젊은 작가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자말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 앞에서 자말이 쓴 새로운 글을 대신 읽으며. 자신이 쓴 글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시대의 마지막 작가가 던지는 마지막이자 새로운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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