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완전범죄게임

in #kr9 years ago

 1980년대 후반 새소년 게임북이란 시리즈가 있었다. 특정 상황이 주어지고 독자의 판단에 따라 페이지별 선택지를 고르면서 목표를 해결해 가는 게임이다. 선택에 따라 넘어가야 할 페이지가 다르다. 이렇게 페이지를 이동하면서 독자가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얻어가는 것인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건 아니고, 일본에서 발간된 책을 베껴 온 해적판이었지만 고르고13으로 유명한 사이토 다카오가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하는 등 나름 가격대비 완성도가 괜찮은 책이었다. 


 시리즈 중 '완전범죄 게임'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이 게임의 주인공은 살인범이다. 우발적으로 누군가를 죽이게 된 주인공이 자신의 범죄를 숨기고 경찰에 잡히지 않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결국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거짓말과 폭력은 물론 극단적으로는 추가살인까지 저질러야 하는데 선의의 주인공이 이타적인 목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타의 게임과는 반대의 방향이기에 어릴 때 이 게임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 같다.


 어릴 때 이 게임을 하면서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결국 '완전범죄 게임'은 일종의 평행세계론에 기반한 오락물이다. 독자의 순간순간 선택에 따라 수십, 수백가지 세상이 존재하게 된다. 한 세계에서 나는 한심한 알리바이 조작이 들통나 경찰에게 잡혀가는 살인범이며 다른 세계에서는 경찰과 세상 사람들을 비웃으며 조용히 어딘가로 탈출해 여생을 즐기는 극악한 완전범죄자이다. 그리고 모든 선택은 다른 선택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 게임을 반복하면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모든 것이 진행되기에 폐쇄적인 구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현실세계 또한 시간과 능력이 제약되어 있기에 '완전범죄 게임'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메타포는 아니다.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완전범죄 게임'의 경우, 특정 선택지에 대한 단서가 전혀 생뚱 맞거나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것들도 있는데 이것도 현실에 대한 은유가 되지 않을까. 인생은 게임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단서는 극히 미약하고 우리의 목표 또한 언제나 '완전범죄'처럼 불가능하거나 공허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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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지만...그 많던 게임북...어쩌자고 그걸 다 버렸는지 모르겠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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