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혈의 누
2005, 김대승(각색, 연출)
배를 타고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입고 있는 관복과 들고 있는 무기로 보아 그들은 관군이다. 어떤 섬을 향해 가고 있는 그들 중 수사관인 이원규(차승원)는 약간은 긴장한 듯 하면서도 냉정한 시선으로 바다 건너를 바라본다. 섬이란 매우 특이한 공간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진 매우 개방적인 곳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폐쇄적이다. 아무나 쉽게 들어갈 수 없고 마찬가지로 아무나 쉽게 나올 수 없다. 이원규의 표정은 낯설고 폐쇄적인 그들의 목적지에 대한 자세를 대변하는지도 모른다. 배안에서 그들의 우두머리인 차사(최종원)은 배멀미로 계속해서 구토를 한다. 마치 함부로 이곳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경고처럼 보인다.
그들의 목적지는 작은 섬으로 임금에게 진상할 정도로 질이 좋은 종이를 주로 만드는 곳이다. 진상할 종이를 가득 실은 배가 불타버렸다.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그들은 그곳에 도착해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다. 배의 화재사건을 조사하러 왔지만, 하루에 한명씩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살해된다. 연쇄살인사건을 두고 웅성거리는 마을주민들의 모습은 그들의 원죄와 공포를 보여준다. 사실 몇년전 이 섬에서는 유력한 신흥상인 장객주가 천주교도로 몰려 처형당한 일이 있었다. 그 사건을 조사한 토포사는 장객주의 다섯 가족을 모두 다른 방식으로 처형했는데, 이 마을의 다섯 명이 발고하여 벌어진 이 처형은 모함이었다. 그리고 지금 살해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섯 발고자들이었다. 이원규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는 마지막 발고자를 찾으려 애를 쓴다.
이야기가 그려지는 1808년이라는 때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미묘한 시간이다. 조선 역사상 가장 개혁적이었던 군주 정조가 군림했고, 그의 후원 아래 자생적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이들에 의해 실학이 만들어지고 현실에 적용되려 했던 시기이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들이 결국은 실패로 돌아갔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두 중세와 근대가 충돌했던 그 시기의 갈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새로운 생각과 가치를 대변하는 천주교와 상공업을 대표하는 인물로 장객주가 그려지고 마을의 지주 김치성과 다섯 발고자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기존 기득권을 표현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이원규는 표면적으로는 장객주와 가까운 캐릭터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 대하여 혼란을 느끼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신문물을 상징하는 망원경과 안경, 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수사에 참여하면서 연쇄살인이 죽은 이의 망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려 애를 쓴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장객주를 추포하여 가족들을 처형한 장본인이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확인하고 충격에 빠진다. 장객주는 거열형(능지처참)을 당했는데, 영화는 이 거열 장면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사람의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은 바로 장객주가 대표하는 근대라는 가치와 정 반대편에 서있는 극단의 모습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강조했던 유교적 가치관에 충실히 살아왔던 이원규였지만, 이 섬에 들어와 겪은 일들을 통해 그것이 모두 전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에 범인이 밝혀지고 결국 죽어버렸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마을사람들에 의해 다섯번째 발고자가 공개처형된 후 하늘에서 내리는 혈우를 보며 이원규는 극심한 혼란 속에 빠진다.
모든 것이 끝나고 차사와 이원규 일행은 섬을 떠난다. 이원규는 올때와 비슷하지만 슬픈듯한 표정으로 섬을 바라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섬에서 증거품으로 얻었던 물건 하나를 바다에 빠뜨린다. 마치 이 섬에서 보고들은 모든 것들은 바닷속에 남겨두고 오려는 듯이. 차사도 마찬가지로 구토만 하고 있다. 작은 섬에서 일어난 몇가지 사건들에 관한 내용이지만 이 영화는 실패해버린 조선의 근대화에 대한 초상화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장객주의 망령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장객주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믿어 버렸다. 혈우를 맞으며 그때 외면했던 자신들을 탓하며 장객주에게 용서를 빌었다. 이원규는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모든 게 중간에 끝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