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의 독립운동 지사를 찾아서.......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munkihun입니다.

늦은 밤임에도 열대야가 보통이 아닙니다.
PC가 설치된 방은 에어컨도 없어서 그야말로 사우나가 따로 없고, 회원분들께 하나만 소개해 드리고서 빨리 씻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

먼저 사진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위 사진은 제가 정리한 문서는 아니고 일제 강점기 내포지역 선각자인 수은 선생(文鍾龜)께서 면천에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남산가숙을 세우고 지방의 자강교육과 독립운동을 하시던 과정에서 남겨진 유품입니다.

사실 그 분이 저와 전혀 무관한 분은 아니고, 제 고조부입니다.

그 분과 관련한 사료는 향토사학에서 연구된 극히 일부분과 지자체의 사료, 그리고 제자들의 증언, 수은 선생 친필과 제자들이 십시일반 모금하여 공동 편찬한 수은집(睡隱集) 정도이고, 국가기관에서 행해진 성과는 전혀 없어 그 평가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자손들조차도 그 이상을 알 지를 못하는데, 그 이유는 독자(獨子)인 증조부께서 6세때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통이 단절되었고, 그 이후의 생활또한 녹록지 않아 돌아볼 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역사책에 나온 독립운동 사례가 전부가 아니라, 어쩌면 그보다도 더 위대한 분들과 독립운동 사례들이 국가와 후손들의 무능함으로 이와 유사하게 묻혀버린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조부께서는 성균관 박사 생활을 하시다 당시 이름높은 한학자인 이남규 문하에서 수학하며 당시 함께 수학하던 신채호, 장지연 등과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이후 일제의 침탈이 현실화 되자 관직의 뜻을 버리고 내포지역으로 내려와 지방의 자강 교육에 힘쓰고 독립운동에 각별히 애쓰신 인물로 전해집니다.
수은집을 보면 을사조약 이전 이등박문과 조우한 장면과 이등박문의 행차 장면을 보고 서울에서 내포까지 걸어 내려오며 느꼈던 비애가 고스란히 들어나 있는데, 실상 번역본 만드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제가 향토사학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도 제가 그분의 직계자손이든 아니든, 후손된 도리로 그 업적과 고귀한 뜻은 세상에 알려 국가와 사회가 정확한 평가를 해 주어야 옳으며 그게 바로 사회적 정의라고 믿고 있고, 그것 때문에 시작된 일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범위가 넓어 지더군요.... 이런 평가작업이 제대로 되는 나라가 바로 나라다운 나라 아닐까요?

내포지역은 윤봉길, 한용운, 심훈, 박인호, 김복한, 이남규, 김좌진, 문종구 등 유난히 애국지사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업적을 정리하며 그 의의를 하나씩 하나씩 찾아나갈 계획인데, 그 중 한 분이 바로 수은 선생( 文鍾龜)이며, 위 사진 자료가 바로 당시 가계 자료 및 친필 메모 등으로서 우선적으로 분석해야할 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성과가 나는대로 스팀잇 회원 여러분들께 정리해서 먼저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도 애국이라고 생각하오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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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건 애국지사들이 갖었던 자신의 안위 보단 국가 존립을 위한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 분들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 모습은 전혀 달랐을지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남기신 자료와 글 잘 보았습니다. 응원하고 갑니다^^

의미있는 작업에 감사드립니다.

응원합니다.
훌륭한조상님을 두셨네요
풀보팅 하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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