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기행- 서해의 독도라고 불리는 풍도를 가다.

in #kr9 years ago (edited)

스팀잇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즘 많이 더우시죠? 스팀잇 왕초보 @munkihun입니다.

지난번엔 당진에 있는 행담도에 얽힌 이야기와 망객산과 관련한 김복선 설화에 대하여 살펴봤는데, 이어 오늘은 당진 석문면에 있는 도비도항으로 가서 배로 약 10여분 거리에 있는 야생화의 천국이자 체험과 힐링 나들이 장소로 알려진 풍도로 가볼까 합니다. 행정구역상 예전에는 당진에 속했으나 현재는 안산시 단원구에 속해 있습니다.

제가 풍도에 관하여 소개하고자 하는 내용은 여행의 관점이 아니라, 풍도의 들어나지 않은 숨겨진 역사에 대한 것이며, 여행의 관점은 다른 분들이 많이 다루실 것 같아 따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설화를 중심으로만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나라 지정학적으로 서해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는 아산만입니다. 이 아산만 입구에서 길목을 지키는 섬이 바로 풍도입니다. 동해에 독도가 있다면, 서해에는 풍도가 있습니다.
따라서 풍도는 역사적으로 외부의 세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섬 중의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풍도는 1894년 청일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풍도해전으로 유명하고, 이 전쟁에서 청나라 해군은 일본의 기습 공격으로 함선이 격침되고 1,000여명이 사망하여 대패를 당하게 되죠.
이때 청나라 해군의 시체가 풍도 해안으로 산더미처럼 떠밀려 오고, 이에 풍도 주민들이 많은 시체를 수습하여 산 계곡에 뭍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일본은 서해상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를 발판으로 러일전쟁 당시 서해안을 거슬러 인천항과 여순항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이 풍도해전은 당시 동아시아 세력균형을 완전히 깨트리고 조선,청,일본 등 동아시아 3국에 대격변을 가져왔으며, 결과적으로 앞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운명의 길이 결정된 일대 큰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역사책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이 풍도해전을, 우리로 말하면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 내세우듯 역사에 대단하게 기술하고 있답니다.

(침몰하는 청나라 군함- 출처 : 문화재청)

그리고 풍도에는 수령이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조선 중기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한양에서 공주로 파천할 때 머무른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이괄의 난은 인조가 반정을 명분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지만,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인데, 이괄이 한양 도성이 점령하자 인조는 피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건 사실로 보기 어렵습니다. 특별히 인조가 이 섬을 거쳐 피난을 갔어야 할 불가피한 이유가 없고,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그 여정이 나와 있답니다. .
즉, 인조 2년(1624년) 음력 2월8일 도성을 떠나 이튿날 수원에 이르렀고, 11일 천안에 도착했으며, 공주로 향한 때는 13일, 난 진압 후 18일 공주를 떠나 도성에 돌아온 때는 22일이라고 기록되어 있죠. 따라서 인조는 요즘말로 속칭 경부라인인 육로를 통해 피난을 한 것이지 배를 타고 풍도를 거쳐 피난한 것이 아니며, 또 난리통에 왕이 기념식수를 심어 가면서 피난하지는 않았겠죠.

(500년 된 은행나무)

풍도 설화와 관련해서는 당나라 소정방 설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제 의자왕을 치기 위해 나당연합군을 결성하고, 이때 소정방은 13만명의 당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산둥반도에서 출발해 서해를 건너서 덕적도에 도착해 신라군과 작전계획을 세우고 해안을 따라 백제로 들어가는 중간에 풍도에 머무르게 됐는데, 이때 제단을 쌓고 불을 피워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천도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북동풍이 불면서 우박이 내리고 제단에 불이 꺼졌다고 하죠. 군사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책사 복환은 대장군이 급사할 징조로 예견하고, 소정방의 부하 만주와 경식이라는 장수는 이를 불길하다 하여 기벌포에서의 싸움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다가 전세를 보고 합류하자고 했으나 소정방은 귀담아 듣지 않았죠.

(소정방 군대가 해안가에 배를 정박하고 숙영했을 것으로 전해지는 장소)

어쨌든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는 멸망을 했고, 점령군으로서 백제 정림사지 5층석탑에 “백제를 평정했다”는 낙서질까지 했는데, 이때만 해도 소정방은 기세등등했고, 부하들의 불길한 예견은 한낫 기우였다고 생각하고 잊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소정방은 중국 역사에서 불명예스럽게 기록된 채 역사속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급살을 한 것이죠.
이에 대하여는 신라 김유신이 소정방을 독살하고 당나라 군사들과 함께 상주에 있는 당교라는 다리 밑에 파묻어 버렸다라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이와 관련해 풍도에서는 불귀의 전설이 내려옵니다. 전쟁을 하고 돌아와야 할 사람이 돌아 오지않는 불귀, 그 사람은 바로 소정방이요, 숙영지에 남아 소정방을 기다리며 풍도 어민이 된 나머지 당나라 군사에 의해 전래된 전설이죠. 풍도는 소정방에게 이미 엄중한 경고를 한 것이 아닐까요?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다른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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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재미있게 써주셔서 항상 잘읽고있습니다^^

늘 흥미롭고 쉽게 들을수 없는 역사 이야기 잘보고 있어요.
다음이야기도 기대가되네요 ^^

어느 작은 섬에 불과할 수 있는 풍도가 이리 설명을
해 주시니

kr-join은 가입인사 태그입니다.

수정부탁드립니다.

새로운 역사를 하나 알고가네요 ㅎㅎ

헉.. 이 풍도에 인조 때부터 얽힌 이야기가 있다니.. 역사도 깊고 그리고 역사적인 에피소드도 많이 얽혀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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