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에, 산티아고2] 돌아갈까? 산티아고 걷기도 전에 포기할 뻔한 사연

in #kr6 years ago (edited)

청춘이란 무엇일까요? 정의를 보면, 만물이 푸른 봄철 또는 그런 시기라고 돼 있습니다. 만물이 푸른 봄철에 주위를 둘러보면 '어머,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여러분은 청춘에 살고 있습니까? 주위는 푸르른데 내가 느끼는 법을 까먹은 게 아니냐는 생각에 이르게 됐을 때, 무작정 산티아고로 향했습니다. - 기자 말


생일을 공항에서 맞을줄이야! 멀고도 험했던 '까미노 데 생장 피에드포르'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파묻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체력은 문제가 아니었다. 팔, 다리 멀쩡했고, 믿을 건 몸뚱어리 하나였다. 걷는 건 자신 있었다. 문제는 정신력이었다. 한 달여 간 쉬지 않고 걸을 수 있을까? 정말? 갑작스럽게 결정한 만큼 마음의 준비가 덜 돼 있었다.

공항에서 맞은 생일

"출발이 지연되어 죄송합니다, 비행기 결함으로…"

출발을 기다리며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기내 안내방송이 나왔다. 연료를 충분히 채우지 못했단다. 여기저기 승객들의 탄성이 들렸다.

"도착해서 한 시간 안에 다음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데, 어떻게 되는 거죠?"
"다음 비행기는 당연히 잡아둘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승무원에게 물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두 번 세 번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를 들렀다가 파리로 가는 비행편이었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출발해 키예프 보리스필 공항에 도착했을 땐, 모든 환승 편은 이미 떠나있었다. 런던으로, 암스테르담으로, 파리로 갔어야 할 승객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걱정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키던 승무원은 보이지 않았고, 공항에서 근무하던 승무원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승객들에게 다음 비행기 표를 끊어줬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였다.


▲ 뒤바뀐 내 비행기 표 꼼짝없이 14시간 넘게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야했다

"헉, 내일 생일이세요?"

내 여권을 본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네, 생일을 파리에서 맞을 줄 알았는데, 공항에서 맞게 생겼네요.'라는 말 대신 웃음을 지어 보이기로 했다. 웃음은 썼다.

"혹시, 잠은 어디 서자요?"
"음… 공항에서 알아서 자야… 이 티켓을 들고 가면 제 동료직원이 음식을 제공할 거예요"
"여기 라운지 같은 데는 없어요?"
"어… 아니요, 의자에서 자야 할 거예요"

되는 일이 없었다. 난 왜 항상 이러지? 정말 '멘탈'이 무너지려 했다.

줄줄이 움직이는 다른 승객들을 따라 어디론가 올라갔다. 표를 새로 끊어주던 직원이 말한 동료직원은 없었다. 성난 승객들은 항공사 직원이 아닌, 애먼 공항 직원에게 항의하다가 지쳐 하나둘씩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의자를 하나 잡고 누웠다. 한숨이 나도 모르게 푹 나왔다.

"미리 생일 축하해요, 앞으로 세 시간 남았네요."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표를 새로 받을 때 있던 스페인 여자였다. 직원이 내게 생일이냐고 묻는 소리를 들었나 보다.

"지금이 최악이라고 여겨진다면 너무 낙담하지 마요, 이제 최고의 일이 생기겠죠."
"고마워요"

멋진 말을 남기고, 그녀는 돌아누워 담요를 덮고 의자 등받이에 코를 박았다. 그녀 덕분에 간신히 파리 구경이나 하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이렇게 된 거 좋게 생각하자. 그래, 잘됐다. 급하게 오느라 산티아고에 대해서 공부를 못했었는데, 공부할 시간을 번 셈이었다. 더 좋은 길이 되려고 이러나 보다.

스물여섯 번 째 생일은 춥고 어둡게 그리고 날 시험하며 찾아왔다.

꿈의 도시, 파리

옷이 전부 가방에 있었다. 잘 때 덮을 게 없어서 오들오들 떨면서 잤다.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해 가방을 찾고 보니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어쨌든 나는 생일날 파리에 있는 게 아닌가.

평소 생일을 특별하게 여기진 않았지만 파리는 좀 남달랐다. 왜인지는 잘 몰라도 스무 살 때부터 파리는 내게 꿈의 도시였다. 특별한 날에 특별한 사람과 오고 싶은 특별한 곳이었다.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영국 리버풀에서 머물 때도 파리는 아껴뒀었다. 벼르고 벼르던 곳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 에펠탑으로 가는 길, 지하철 안을 걸으며 파리에 도착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에펠탑 보려면 어디로 가면 돼요?"

출구를 나오자마자 청소부가 보였다. 청소부를 붙잡고 물었다. 촌스럽지만 파리하면 에펠탑 아닌가.

"에펠탑을 어떻게 보고 싶은데?"
"네?"

에펠탑을 어떻게 보고 싶냐고? 당황했다.

"에펠탑은 파리 시내 어디서든 보여."

에펠탑을 사랑하는 청소부인 듯했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에펠탑으로 가고 싶으면 RER B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서 Champ de Mars Tour Effel 지하철역을 찾아가면 된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니 잡상인들이 장난감부터 삼성 이어폰까지 기념품을 거리에 깔아두고 팔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왔다 싶었다. 관광객으로 모이는 무리를 따라 한참을 앞만 보고 걸었다. 두리번거렸지만 에펠탑 코빼기도 안 보였다.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았을 때, 저 멀리 에펠탑이 보였다.

"너냐? 반갑다."

에펠탑을 실제로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이 많아서 사실 기대치를 낮추고 있었다. 유선형 철조 구조물 위로 고운 직선이 시원하게 솟아 있는 모습은 신비하게 다가왔다. 볕이 쨍쨍해서 그런지 에펠탑은 검은색보다 갈색에 가까웠다. 웃음이 흘렀다. 만족스러웠다.


▲ 에펠탑을 올려다보며 파리에 직접 와서 에펠탑을 본다는 건, 에펠탑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에펠탑 아래에 서서 한참을 올려다봤다. 괜히 짜릿했다. 다음은 꿈꿔온 장면을 이룰 차례였다. 에펠탑 광장의 잔디밭에 누워 샌드위치 먹기! 핫도그를 하나 사서 광장에 들어가려는 데, 아차, 경비원이 날 붙잡았다. 에펠탑에 짐 검색대가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19kg짜리 배낭을 메고 있었다.

경비원이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큰 배낭을 메고 에펠탑에 온 사람은 없었다. 이게 다, 우크라이나 항공사 때문에 일정이 꼬여서 그랬다.

"못 들어가요?"

울 것 같은 눈으로 물었더니, 경비원은 보안 담당자를 불러 상의했다.

"들어갈 순 있어, 대신 네 짐을 다 열어봐야 할 거 같은데, 괜찮아?"

포기하기로 했다. 내 뒤로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어 기다리고 있었고, 가방 안의 물건을 다 꺼내서 보여주고 다시 집어넣을 자신이 없었다. 그 시간에 파리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핫도그를 광장에서 먹진 못했지만 울적하지 않았다. 에펠탑을 등지고 걷는데 오히려 자꾸 웃음이 셌다.

루브르 박물관과 노트르담 대성당을 들른 뒤에, 파리 시내를 걸었다. 걸었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질리지 않았다. 유럽의 다른 도시에 비해 특별할 게 없었는데도 파리는 어떤 도시보다 아름다웠다. 파리가 내 꿈의 도시라서 그런 걸까?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 바를 찾아 들어갔다. 스프릿츠(Spritz) 한 잔을 내 자신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 해가 뉘엿뉘엿 고생한 내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시간이었다.

밤늦게 바욘(Bayonne)으로 가는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12시간짜리였다. 피곤했다. 머리를 대고 잠에 들려고 하는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왤까? 파리가 참 이쁘게 느껴진 이유가? 파리는 대도시라 복잡했고, 다른 유럽에 비해 뛰어난 건축 양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파리에서 느꼈던 기쁨은 전에 맛보지 못한 어떤 것이었다.


▲ 파리 시내 일상이 아름답게 다가올 때, 비로소 여행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신분이 달라서

눈을 뜨니 바욘이었다. 이제 생장 피에드포르까지는 기차로 한 시간이었다. 기차는 세 시간쯤 뒤에 있었다. '멘탈'을 부여잡고 바욘까지 잘 온 내가 기특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평소에 에스프레소는커녕 아메리카노도 잘 마시지 않지만, 프랑스에 왔는데, 에스프레소 한 잔 정도 마셔줘야 하지 않겠나? 바에 가서 호기롭게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사약을 앞둔 사람처럼 긴장됐다.

"혹시 바욘 대성당 어떻게 가요?"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반대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여자에게 길을 물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여자였다. 우리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옆자리에 앉아서 파리에서부터 함께 왔다.

"저쪽으로 가서, 오른쪽으로 꺾은 뒤에, 쭉 걸어가서, 오른쪽에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성당이 보일 거예요."

여자는 긴 팔을 쭉쭉 뻗어가며 길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알아들었느냐는 듯 눈을 치켜뜨며 내 얼굴을 살폈다. 필시 내 얼굴엔 멍청함과 난감함이 함께 묻어났으리라.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이따가 데려다줄게요."

여자는 오렌지 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건배하듯 들어 보였다. 나도 그사이 나온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넘겼다. 쓰지 않았고 부드러웠다. 프랑스 여자의 친절 때문인지 남다른 커피의 풍미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 바욘, 마을과 도시 사이 시내는 알록달록하고 오밀조밀했다.

"스페인어 할 줄 알아요? 엄마가 스페인 사람이라 영어는 잘 못 해도 스페인어는 잘해요."
"아뇨, 영어만 조금... 그럼 3개국어를 해요?"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바스크어 이렇게 4개 해요."
"바스크어요?"
"네, 여기가 예전 나바라 왕국이에요, 아직 학교에선 바스크어를 배워요."

여자는 바욘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옛 왕국의 언어를 여전히 배운다는 건 어떤 걸까? 흥미로운 동시에, 스페인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곧 걷는구나!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심장이 쿵쾅 거렸다. 여자는 날 성당까지 데려다주고서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과 함께 발길을 돌려 멀어졌다. 여자의 미소가 참 깨끗했다.


▲ 바욘 대성당 작은 마을에 있는 성당치고는 상당히 웅장하다.


▲ 바욘 대성당 여태껏 가본 성당 중 으뜸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고.

"순례자예요?"

바욘 대성당에 매료돼 한참 고개를 휘적거리고 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돌아보니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햇빛에 얼마나 그슬렸을까, 피부는 새까맿고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 있었지만, 그녀의 초록빛 눈에서는 단단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네"
"다녀오는 길이에요? 끝났어요?"
"아뇨, 이제 시작해요"
"아, 그래요? 저는 이제 막 끝났거든요."

여자는 날 성당 한쪽에 마련된 책상으로 이끌었다. 까르덴시알(순례자 여권, Caredencial)에 도장을 찍는 곳이었다.


▲ 바욘 대성당 안 성당 안은 천장이 높고, 화려하지만 차분한 기운이 느껴졌다.

"저는 이렇게 갔다가 이렇게 돌아왔어요"
"네??"

잠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자는 까르덴시알에 도장을 찍더니, 옆에 있는 지도를 보며 자신이 다녀온 길을 알려줬다. 지도 위 여자의 손가락이 생장 피에르포드에서 프랑스길(Camino de Frances)을 따라 산티아고로 가서 멈췄다가, 산티아고에서 북쪽길(Camino de Norte)을 따라 바욘으로 돌아왔다. 1,600km를 넘게 걸은 셈이었다. 그만큼 걸은 사람치곤 너무 담담하게 자신이 다녀온 경로를 말했다. 내공이 얼마나 쌓인 걸까?

벌어진 입을 다물고 정신을 차렸다. 기차 시간에 늦을까 봐 먼저 자리를 뜨기로 했다. 여자는 교회 밖까지 나와 내게 손을 들어 보였다.

"부옌 까미노"

'좋은 길 되세요' 모든 걸 내려놓은 듯 차분한 목소리였다. 어색하지만 "부옌 까미노"라고 따라 인사했다. 옅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그녀의 기운을 받아 잘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은 기차표를 샀다. 여유를 가지고 바욘에 조금 더 있기로 했다.

초코맛 마카롱을 사서 니브강으로 갔다. 가방을 내려놓고 나무 그늘 아래 기다란 의자에 앉았다. 니브강 너머로 보이는 알록달록, 오밀조밀한 바욘의 모습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큰 개 한 마리가 주인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킁킁거리며 마카롱을 탐냈다. 평온했다. 순간을 느끼고 싶어 눈을 감았다. 다른 세계에 온 듯 행복했다. 이틀 전만 해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서 괴로워하던 나였다.

작은 누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누나, 프랑스 나한테 잘 맞는 갑다, 되게 좋은데?"
"뭐가 좋은데?"
"어… 그걸 모르겠다, 내가 봤던 유럽이랑 그리 다를 건 없는데, 그냥 좋은데?"
"니 신분이 달라서 그런 거 아니가ㅋㅋㅋ"
"어, 그런가ㅋㅋㅋ"

그제야 이해가 됐다. 파리에서부터 가져왔던 의문이 조금 풀렸다. '왜 이렇게 좋은가?' 나는 온전한 여행자였다. 영어 공부에 스트레스받을 필요도 없었고, 일 때문에 피곤해 찌들지 않아도 되는 내 신분은 여행자였다.

무엇에 쫓기지 않으니 여유가 생겼다. 간단했다. 원인은 내 마음에 있었다. 다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생장에!



▲ 드디어 생장 기차역에 도착! 순례자들의 발걸을에서 들뜬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Go!

기차역에 내려 사람들을 따라 얼마간 걸으니 마을이 나왔다. 드디어 생장이었다. 걸으러 오는데 진이 다 빠졌다.

순례자 사무실을 먼저 들러 까르덴시알(순례자 여권, Caredencial)을 만들고, 자원봉사자에게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Albergue)를 소개받았다. 5유로를 기부하고 챙긴 조개껍데기를 가방에 달았다. 이로써 정말 순례자가 됐다.



▲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 안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자원봉사자에게 걸을 때 필요한 조언을 얻는다.

샤워가 급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샤워실로 향했다. 베트남에서부터 묵은 기름기를 씻어내니 살 것 같았다. 방에 들어와 가방을 정리하는데 아무래도 무거웠다.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짐이 자신의 몸무게의 15%가 적당 선이고, 20%를 넘어가면 무리라고 일러줬다. 내 몸무게가 75kg이고 짐은 19kg이니까, 이미 20% 훌쩍 넘어 있었다.

필요 없는 짐을 골라냈다. 신발, 책, 여분의 옷가지들, 3.5kg 정도를 덜어내서 산티아고로 보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찾을 수 있다. 뿌듯했다. 가방은 15.5kg으로 여전히 무거웠지만 괜찮았다. 난 젊으니까.



▲ 순례자 메뉴 각 식당마다 '순례자 메뉴'라는 이름으로 코스요리(전채, 메인, 후식)를 판다.

바욘에서 생장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봤던 한국인 아저씨 두 명과 저녁을 먹었다. 순례자가 된 만큼 순례자 메뉴를 시켰다. 한 명은 40대 중반, 한 명은 30대 후반이었다. 형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저씨라고 부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했다. 형님들과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었다. '어우' 신음이 절로 나왔다. 몸이 노곤해지자 생장에 오기까지 삼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성에서 내려다 본 마을 우리나라 였다면 이미 높다란 호텔이 들어서 있지 않았을까?

키예프에 있을 때만 해도 포기하고 싶었는데 결국 생장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만족스러웠다. 훈련소에서 훈련병 딱지 뗀 마냥, 홀가분했다. 다 끝난 기분이었다. 이제 시작인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2017년 5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걸어서 산티아고를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은 가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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