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훈련

in #kr7 years ago (edited)

그동안 소홀했다. 알량한 사무실에 박혀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었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난 아들렘은 나를 보고 번쩍 정신을 차려 나에게 다가왔다. 훈련의 시작이었다.

머리맡에 두고 잔 공룡, 킹콩, 사자 장난감 중에서 하나씩 골라잡고 대결을 펼쳤다.
"사자랑 공룡이랑 싸워보자"
아들이 사자를 잡았다.
나는 하찮은 공룡을 잡았다.
나중에 알게 된거지만 사자가 제일 짱 쎈 동물인거처럼 아들렘이 보는 동화책에 나와있었다. 동화 삽화에는 사자가 코끼리보다 컸다.
괜찮다. 난 사실 굳이 이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여러번 싸워서 전패하고
느닷없이 태클이 들어온다.
케인 벨라스케즈가 주도산에게 하던 스타일의 태클과 클린치.
머리로 내 가슴팍을 밀면서 벽으로 몰아부치는 그 UFC에서 많이 보던 몸싸움.
이녀석이 이런걸 어디서?
유일한 용의자는 나다. 내가 가르쳤던것 같다.
나는 코미어가 댄핸더슨에게 하던 그 딱지치기를 하며 빠져나온다.
그러자 아들렘은 나를 꾸짖는다.
"레슬링 하면 안돼"
"이녀석아 니가 하는 것도 레슬링이야"
"아니야!"
우기기 앞에 이길순 없다.
침실에 매트리스가 두개가 있다.
하나는 한쪽벽에, 하나는 다른쪽 벽에 붙어있다.
그 사이엔 내가 간신히 들어가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남는다.
아들렘은 나를 굴려 거기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베개를 쌓아 묻는다.
그 위에 이불을 덮고 마침내 그 은신처 안으로 직접 들어와 함께 몸을 숨기면서 말을한다.
"아빠, 엄마 불러"
불렀다.
왔다.
하나, 둘, 셋 하고 느닷없이 이불을 걷으며 모습을 드러내면
애엄마는 꺄아 하고 놀랜다. 이곳에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같은 초식을 수백번 반복했던거 같긴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보니 이걸 오늘만 열번쯤 했던것 같다.
목마도 태워주고
누워있을 때 배위에 올라 뛰게도 하고
그동안 소홀했던 미안함에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낮시간에 잠이 솔솔 왔다.
아들렘 녀석도 졸려보였다.
"아빠 쫌만 잘께"
"여기서 자"
푹신한 침대가 아닌 거실의 딱딱한 바닥을 가리킨다.
그거라도 어디냐 하고 가서 누웠다. 너무 졸음이 와서...
1분도 안돼서 공룡인형이 내 바로옆에 날아왔다.
까르르르르
안일어나면 이번엔 더 딱딱하고 무거운 킹콩인형이 날아와서 얼굴을 강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빠 이제 다잤다. 이제 안졸려"
정말이었다.

하루종일 루틴을 반복했다. 5~6세트 이상을 했다.
졸린거 뻔히 보이는데도 좀처럼 자려 하지 않았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결국 해질무렵 낮잠한번 안잔녀석은 잠이 들고 말았다.
나는 맥주 한캔을 반주삼아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출근하였다.
이제 코인계 소식을 본다. 지옥훈련을 마치고 살아돌아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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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하찮은 공룡ㅋㅋㅋㅋ 대체 무슨 동화길래 사자가 짱을 먹죠ㅋㅋㅋ

확실히 사자가 크긴 큰데... 코끼리가 작은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아니 이런ㅜㅜ 저 장난감 공룡이 너무 가냘프게 만들어졌네요! 사자는 너무 튼실하고요! 저러면 누가 봐도 사자가 강해보이잖아요ㅜㅜ 공룡이 킹왕짱이어야 하는데 마음이 아픕니다...

큔스파크리사이즈.gif 가족과 소중한시간을 보내셨군요

아 임대해주신 파워는 소중히 사용하고있습니다. 너무너무감사합니다.

Good work,good post.

엄청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어릴 적에 공룡을 좋아했는데 아드님께서는 사자를 제일 좋아하는군요. 당연히 공룡이 킹왕짱 젤 쎄야 하는데 사자에게 져줘야 한다니 그점이 조금 아쉽네요ㅎㅎㅎ

사자가 이겨요!(진지)

역시 사자죠...
(저승)사자...
혹은 (쌀 때)사자

눈 앞에 그려지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몸으로 비행기를 태워주셨던게 기억나네요ㅎㅎ 아마 나중에 저처럼 추억으로 기억하겠죠?

조카와 3일간 있어봤는데
아이를 지치게...(?)하는건
제 생각보다 너~~무힘들더라구요
그러나 그시간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ㅎㅎ...

이런 모습을 보면 얼른 결혼해서 저 닮은 아들래미랑 이런 유쾌한(하지만 피곤하기도 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ㅋㅋ
화목한 모습 잘 읽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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