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날ㅡby.구오징
글 없는 그림책이지만 그림만으로 충분하다. 112장에 담긴 몽환적인 그림은 아이가 느끼는 외로움과 위로, 슬픔, 감동을 전하며 빠르게 지나간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는 목울대가 먹먹해진다. 외로움을 위로한 사슴과 이별을 할 수 밖에 없는 아이의 슬픔이 고스란히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올해의 베스트 그림책
혼자가 아닌 날
구오징 지음
2016 미국 도서관 협회에서 주목할 도서로 선정하고 뉴욕타임스는 올해의 베스트 그림책으로, 워싱턴 포스트는 새해를 알리는 어린이책 Top3로 선정했다. 그것이 가능한 건 주 소개가 인종과 문화와 관계없이 모두가 공감할만한 외로움과 환상적인 위로이기 때문이다.
아침 7시에 눈을 뜬 아이를 지키는 건 토끼 인형과 사슴 인형이다. 늘 그렇듯 직장으로 향한 엄마의 빈 자리만큼이나 닫힌 문은 너무나 크고 막막하다. 엄마가 없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뭘 하면서 보낼까?
문득 '섬집아이' 노래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4학년 '즐거운 생활' 음악 교과서에서 배운 이 노래는 누군가가 나를 보고 만든 곡이 아닐까? 싶어서 흠칫 놀래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그랬다.
나는 작은 섬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나는 늘 외로웠다. 아니 외롭다기 보다는 지루하고 심심하고 늘 무료했다.
엄마 아빠는 늘 바다에서 하루를 다 보내고 집에 들어오셨다.
언젠가 한번 엄마 아빠를 따라 바다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배 위에서 싸간 점심을 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데 바다위로 반짝반짝 은빛으로 일렁이는 물결이 어찌나 인상깊었는지
집 마당에서조차 그 은빛 물결이 일렁이는 착각이 참 오래도 갔던 기억이 난다.
그 물결에 취해 억지로 낮잠을 청하여 무료한 시간의 몇 시간을 소비하고 그러고도 엄마 아빠가 오지 않으면
동생 손을 잡고 선착장으로 향한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한참을 기다리다 보면 엄마 아빠가 타고 나갔던 배의 엔진소리가 가까워온다.
엄마는 위험한데 또 나와있다고 우리를 나무라지만
아빠는 나와 동생을 차례로 목마 태워 그렇게 집까지 우리 네 식구가 터벅터벅 걸어서 왔었지.
어떻게 후각은 기억력이 그렇게도 좋을 수가 있을까.
나는 아직도 그때 아빠에게서 났던 짠 소금내음과 땀내음을 기억한다.
눈물이 난다.
닫힌 문을 마주한 아이 앞에서 나는 잊고 있었던 나의 6살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벌써부터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이는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고 소꿉놀이를 한다.
그리고 가족앨범을 꺼내어 할머니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되짚본다.
그러다 문득 내다 본 창문 밖에는 눈이 내리고 공장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난다.
엄마는 저기에 계실까?
서둘러 뭔가 메모를 하고
옷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선다.
혼자서 괜찮을까?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까 왠지 엄마마중 이라는 책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겨울은 어떤 색을 입혀 꾸며도 기다림을 너무도 쓸쓸하고 외롭게 만드는 것 같다.
버스에 오른 아이는 깜빡 잠이 들고 낯선 숲에서 눈을 뜬다.
바퀴자국을 남기며 떠나는 버스가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할머니 만나러 감'
엄마를 만나러 가는 건 줄 알았는데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거였네.
혼자 남은 아이는 엉엉 울며 서 있고 저만치서 사슴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를 찾아 헤메는 엄마 아빠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나는 왠지 아이와 사슴이 멋진 여행을 시작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앞서는 사슴을 따라 아이는 강을 건너고 사슴의 등에 올라타 뿌리를 잡고 선다.
두근거리는 여행은 이때부터 펼쳐진다. 아이는 사슴과 구름계단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근엄해 보이던 사슴은 아이에게 기꺼이 코도 입도 수염도 내어주고
아이가 보는 것, 만지는 것, 만나는 모든 것에 그저 소리없이 반응해준다.
고래의 뱃속에까지 빨려들어간 아이와 사슴과 비버를 닮은 이름 모를 친구는 그 안에서도 모험을 즐길 줄 아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비버를 닮은 친구는 엄마가 데리러와 함께 떠나고
이제 아이는 엄마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보내야 할 때가 된 것을 아는 사슴은 아이를 등에 업고 구름을 지나
아이의 집에 데려다 준다.
'갈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 구절이 떠오른다.
서로를 바라보는 아이와 사슴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늘 혼자였던 자신에게 '혼자가 아닌 날'을 선물한 사슴과의 이별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글 없는 그림책은 내게 참 힘든 책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책은 흑백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깊이가 어마어마하다.
어린 시절 저는 비록 외로운 아이였지만 그 경험을 통해 외로움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늘 외로운 친구들이 있다면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었지요. 그리고 제가 어린 시절 겪은 일처럼, 어려운 일에 처하더라도 해결해 나갈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했답니다.
책의 서문에 지은이 구오징 작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이 책의 주제와 상통하는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작가의 다음 책도 너무 기대가 된다.
좋은 책을 알게 되어 너무나 행복하고 감동스러운 시간이었다.
좋은 책이네요. 찾아 봐야겠어요.^^
흑백의 그림들이 잔잔하면서 마음 따뜻해질거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