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의 인문학 강의 [001] : 인문학은 세 개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in #kr6 years ago

[001] 머리말: 인문학은 세 개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다들 인문학은 어떤 학문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인문학이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무척 허망하지요. 하나마나한 말이 될 수 있으니까요. 초점을 잡아서 간단하게 설명하면 좀 달라집니다.

인문학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그 질문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언젠가 했고, 하게 되는 질문과 답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말을 배우면 주변의 사물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잖아요. 잘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가 속한 환경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학습본능은 생존본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질문은 ‘내가 살아가는 환경은 어떤 곳인가?’가 됩니다. 이에 대한 답은 주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 질문을 하게 되지요.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비교를 통해서 답을 찾아갑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이 세상에 여자만 있다면 여자라는 단어는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인간이라는 낱말만 있겠지요. 여자와 비교되는 남자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와 남자라는, 구별되는 단어가 필요했던 겁니다. 마찬가지로 타인이 있기 때문에 나라는 말이 필요하고 타인과 내가 비슷하면서도 다르기 때문에 구별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타인과 비교할 때 쉽게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하고, 확장하면 ‘우리는 누구인가?’ 또는 ‘그들은 누구인가?’가 됩니다. 더 나아가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되겠지요. 그 질문에 대해서는 주로 문학과 역사, 철학이 답합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또다시 누구나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지요. 가끔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도 자신과 아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면서 절망하기도 합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아주 다른 의견을 말할 뿐 아니라 같은 책을 읽고도 독후감이 다릅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인식하는 걸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인지과학과 언어학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인간은 이성을 통해 답합니다. 그러나 이성으로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다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 부족한 부분은 직관으로 보충됩니다. 그 직관의 결과가 예술입니다. 그래서 인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과 미술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주제는 역사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언제나 과거의 결과물입니다. 현재의 결과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정밀하게 따지면 ‘현재’란 순수한 개념일 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연구도, 어떤 학문이나 이론도 당대의 관심과 가능성,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서 다양한 이론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메타 학문, 즉 학문에 대한 학문입니다.

맨 먼저 이런 인문학에 대한 개관과 세계사적인 감각을 펼쳐 보여드릴 겁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가 사용하는 소통도구인 언어학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할 겁니다. 그러고 또 하나의 문학적 기호인 미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겁니다. 그런 다음에 과학으로 넘어갑니다. 본성과 양육의 과학의 내용에는 생물학에 사회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심리학은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현대의 과학입니다. 사회학과 다른 점은 ‘개인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지만 평균적인 개인을 상정한 것일 뿐 특별한 개인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것이 아주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발터 벤야민의 논문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겁니다. 그렇다고 벤야민을 다루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동시대의 예술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근대 이후에 시작된 오래된 ‘미술’과 상당히 다릅니다. 그 정도의 차이가 너무 커서 종류의 차이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예술을 다룹니다.

이 모든 주제가 인문학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됩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왜 이렇게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호사가의 호기심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당연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인 겁니다.

이 연재 글을 통해 여러분들이 스스로 위의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야기 순서는 거꾸로가 될 겁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저 세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은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제 이야기는 여러분의 생각과 비슷한 점도 있겠지만 다른 점도 많을 겁니다. 그걸 먼저 짚어보자는 것이지요.

차례는 대충 다음과 같을 겁니다.


차례

들어가는 말 : 우리 머릿속의 세 유령

1 역사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

2 모든 말과 글은 예언이다
-- 왜 언어학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3 문학의 죽음에 대한 몇 가지 소문들
-- 자본의 작가, 프롤레타리아 독자, 혁명의 비평가

4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니다
--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다른 방법으로 보기

5 거울을 통과하는 자아의 탄생
-- 동시대의 철학으로 내딛는 첫걸음

6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 한 몸으로 태어난 접착쌍둥이도 서로 다르다

7 프로이트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몽상가
--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심리학에 대한 오해

8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의 아우라


“우리 머릿속에 사는 세 유령”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유령들을 이해하고 극복하지 않으면 위 세 가지 질문의 핵심에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먼저 이 유령들에 대해서 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C) 강창래, 2018

다음 글
▶ [002] 들어가는 말 : 우리 머릿속의 세 유령 1

첫 글부터 정주행
▲ [000] 강의 소개

Sort:  

마나마인을 항상 응원합니다.

기대가 됩니다. ^^

기대되는 글이네요~ 자주 보러오겠습니당:)

인문학은 알아도 알아도 어려워요. 다음 글 기대할게요. ㅎ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18
TRX 0.13
JST 0.028
BTC 56924.47
ETH 3086.51
USDT 1.00
SBD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