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의 인문학 강의[003]: 우리 머릿속의 세 유령 2

in #kr6 years ago

[003] 들어가는 말 : 우리 머릿속의 세 유령 2


■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두 번째 유령


안다고 해서 다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지향점이 분명해야 보입니다. 그림(이미지 2)을 보세요. 수많은 점들이 찍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이미지2


퍼뜩 보면 이게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는 게 없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달마티안Dalmatian을 찾아보라고 하면 대개는 금방 보인다고 합니다. 물론 달마티안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절대로 보이지 않겠지요.

이 그림은 잘 아는 것이라고 해도 그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머릿속에 있는 유령을 통해 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이 유령은 ‘잘 아는 것’이라고 해도 전혀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들에게 집안 어딘가에 있는 물건을 가져다 달라고 해본 주부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 겁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 하기 일쑵니다. 특히 부엌에서 쓰는 물건이라면 까막눈도 그런 까막눈이 없습니다. 커다란 물건이 아주 잘 보이는 자리에 있는데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부가 부엌에 가서 ‘여기 있잖아’라고 하면 당사자도 어처구니없어 합니다. 바로 앞에 있는 그 커다란 물건이 어째서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 자기도 알 수가 없으니까요.

아무리 잘 아는 것이라 해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면(지향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에 잠겨 있으면 바로 옆에서 큰소리로 외쳐도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습니다. 비슷한 현상입니다. 거꾸로 많은 사람들이 대화하고 있는 시끄러운 곳에서도 나와 관계된 이야기는 잘만 들립니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기 때문입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심을 가진 분야의 지식은 쉽게 이해되고 기억됩니다. 관심이 없는 분야의 지식은 어렵기만 하고 잘 기억되지도 않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그런 태도는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편견에 갇히게 될 테니까요.

누구의 말이든(글이든) 비판적으로 잘 독해하려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유령(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합니다.

아마 제 강의에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많을 겁니다. 머릿속에 사는 유령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기 때문에(고정관념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몰라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자주 들춰낼 겁니다. 대개의 경우 여러분이 몰랐던 것이 아닐 겁니다. 전혀 모르는 것이라면 제가 아무리 애써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이런 말도 있지요.

“설명이 필요하다면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다.”

너무 매정한 말이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그림(이미지 3)을 하나를 볼까요? 좀 밑도 끝도 없는 도형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의미 있는 형체를 찾을 수 있나요?



이미지 3


THE라는 글자를 보았나요? 보았다면 영어 알파벳을 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보지 못했다고 해도 답을 알고 보면 보일 겁니다. 알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지요. 만일 영어 알파벳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설명해 주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원래 몰랐던 것이기 때문에 깨우쳐 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설사 잘 아는 것이라고 해도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을 겁니다.
세 번째 유령을 소개하기 전에 조금 어려운 용어를 하나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 강의가 다 끝난 뒤 여러분이 스스로 ‘어려운 인문학 책’을 읽어나가려면 용어에 익숙해져야 할 테니까요.
우리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 해석이라는 유령을 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모든 표현은 ‘이차적으로 모델링된 체계’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 생각하는 것, 표현하는 것은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해석이라는 뜻이지요. 여기에서 일차적인 것은 사실 그 자체이고, 이차적인 것은 보고 느낀 해석입니다. 이차적으로 모델링된 체계라는 말뜻은 사람이 만든 표현(언어나 이미지 또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모든 몸짓까지도)이라면 어떤 것이든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해석에 바탕해서 만들어진(모델링한) 결과물이라는 뜻이지요. 해석은 사실에 바탕한 것이지만 언제나 다른 것입니다.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이는 세 번째 유령”으로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C) 강창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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