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린's 100] 인생은 어떻게 미끄러지는가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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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을 마치고 신체검사를 받고 입대 신청을 했습니다. 전공이 행정학이었던 터라 동기, 선배들 대부분 행정병으로 군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군 생활이 그렇게 힘들진 않겠군, 내심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입대 영장이 나왔습니다. 논산 훈련소입니다. 이게 웬일, 아마도 춘천이나 의정부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논산이라..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논산 훈련소는 대부분 후방으로 자대배치를 받습니다. 아싸~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입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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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훈련소 신병훈련은 나름 받을 만 했습니다. 뭐, 악마조교들은 그곳에도 있었지만 핑크빛 자대생활을 꿈꾸며 견딜 만 했습니다. 훈련소의 임시 병과 분류에서도 행정병과가 나왔습니다. 예상했던 결과. 군 생활 풀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행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수에서 카투사 (KATUSA: 주한 미군에 파견 근무하는 한국군) 차출을 한다는 것입니다. 중대 별로 카투사 시험 볼 훈련병들을 선별해서 시험에 합격하면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운 좋은(?) 저는 당연히 중대 선발인원에 뽑혔고 각 중대에서 뽑혀온 300여 명 중 70여 명을 선발하는 시험자격이 주어졌습니다.

2번의 시험을 보는데 1교시는 영어, 2교시는 국사, 국민윤리입니다. 1교시에서 300명 중 절반을 떨어뜨리고 2교시에서 남은 150명 중 절반을 떨어뜨려 총 70여명을 선발한답니다. ‘영어라..’ 1교시가 시작되고 문제지가 주어집니다. 근대 이런 지문은 없고 4지선다만 있습니다. 50문제 전체가 듣기 평가였던 겁니다.

‘틀렸다. 쩝..’
‘운명이면 되겠지..’

그래도 제겐 행정병이 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듣기 평가에 임합니다. 쏼라쏼라.. 군대에서 듣는 English..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찍어 봅니다. 시험이 끝나고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채점 결과가 나옵니다.

붙었습니다.

‘아.. 이렇게 내 군 생활은 하늘을 향해 가는가’ 밖에서 학원까지 다녀가며 준비한다는 카투사인데.. 이런 식으로도 인생이 풀리는가. 역시 운 좋은 놈이 제일입니다.

그리고 2교시. 국사, 국민윤리는 껌입니다. 국사 선생님의 수제자로 불렸던 적이 있을 만큼.. 국민윤리는 착한 답 쓰면 되고.. 이미 마음은 카투사에 가있습니다. 문제도 쉽습니다. 일찌감치 OMR 답안지 마킹을 끝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검토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중간쯤 답안을 마킹 안 하고 건너뛴 사실을 발견합니다. 순간.. 당황.. ‘아.. 이를 어쩌지.. 답안지를 바꿔달라고 해야 하는 데..’ 시험감독관 얼굴을 쳐다봅니다. 계급장이 소령입니다. ‘무슨 감독을 소령이 해.’ 이등병에게 소령, 하늘 같습니다. 감히 바꿔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바꿔 줄지, 안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얼차려나 받는 거 아닐까..’ 망설입니다. 또 망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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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니 누군가 답안지를 바꿔달라고 손을 드는 것 같습니다. 감독관이 다가가 뭐라고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바꿔주는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고개를 돌렸다가 컨닝으로 간주될까 두렵습니다. 이내 한쪽 마음이 말합니다.

'뭐.. 어차피 행정병 갈 텐데..'
'그래 운명이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시험시간은 종료되고 당연히 결과는 탈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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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제 군 생활은 꼬이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될 줄 알았던 ‘행정병’. 훈련소, 같은 중대 대부분이 꿀 보직을 받아 주특기 교육부대로 이동하는데 중대 인원 중 5%만이 간다는 90mm ‘무반동총’을 병과로 받습니다. 조교가 병과를 알려주며 불쌍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전반기 훈련을 마치고 다른 전우들은 버스 타고 주특기 교육부대로 이동하는데 저는 운 없는(?) 놈들과 함께 오리걸음으로 인근 주특기 교육대대로 이동합니다. 빡 세기 그지없습니다. 조교들 눈빛부터 다릅니다. 90mm 이렇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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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보병들이 20kg 군장을 메는데 이 병기는 13kg입니다. 군장 메고 이 병기도 같이 짊어져야 합니다. 4인 1조로 교대하긴 하지만 상병, 병장이 들겠습니까. 쉽게 말해 군인이 소지하는 가장 무거운 병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산을 타고 강을 건넙니다. 탱크 잡는 무기이니 높은 데 올라가야 합니다.

후방으로 갈 수만 있다면..

이를 악물고 주특기 교육을 받습니다. 그래도 후방에 갈 수만 있다면.. 조교 말에 의하면 주특기 교육인원 중 5%만 전방에 배치를 받는답니다. 그 얘기에 희망을 걸어 봅니다. 후방부대는 전방만큼 훈련이 없을 테니..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퇴소식. 눈물의 면회시간을 뒤로하고 자대 배치를 받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일단 논산역에서 기차에 오릅니다. 장병들을 마중하는 조교들. 손을 흔들며 착잡한 마음으로 어디에 내리게 될지, 어느 노선으로 갈아타게 될지 주시합니다.

기차가 대전에 섭니다. 많은 인원들이 하차합니다. 경상도나 전라도 배치 인원들입니다. 제가 탄 칸은 요지부동입니다. 내리라는 소리가 없습니다. 부러운 마음으로 이동 중인 장병들을 바라봅니다. 다음은 어디인가.. 수원에 정차한 열차. 일부 인원이 또 하차합니다. 이번에도 아닙니다. 점점 불안해지는 마음..

기차가 서울에 들어서고 용산에 섭니다. 아.. 서울인가? 육본(육군본부) 인가? 제발.. 한참을 서있습니다. 내리라는 말이 없습니다. 덜컹.. 다시 움직입니다.

이런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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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간다던 전방. 운명은 그리로 향하고 있습니다.

전체 중의 5%, 그 5% 중의 또 5%.. 그게 제 군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기차는 성북역에 들어섭니다. 내리랍니다. 반은 전철 쪽으로 움직이고 반은 다시 대기. 1월 한겨울 추운 새벽 기차역에 서서 앞으로 몰아칠 군 생활의 생고생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경춘선 열차가 들어옵니다. 춘천 가는 기차.. 제길.. 아니겠지. 아니겠지 했는데 역시 강원도행이었습니다.

여기서 멈추길..
여기서 멈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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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102 보충대에 대기하며 희망은 자꾸 낮아집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상급부대에 남길 희망해 봅니다. 군대는 사단-대대-중대-소대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데 하급부대로 갈수록 훈련이 많아집니다. 상급부대 훈련까지 다 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뭐 이미 미끄러지기 시작한 운명은 제 군 생활을 가혹하게 몰아붙이기 시작합니다. 사단에서 대대로, 다시 중대로 소대로.. 우연히 바로 옆 중대에 저보다 먼저 입대한 과 동기를 만납니다. 그는 행정병이었습니다. 안됐다는 듯 대대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 뽑아 줍니다. 4월의 강원도 화천.. 잔뜩 긴장한 채로 내무반을 향해 가는 연병장 위로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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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가르는 선택

단 한 번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냥 손들고 ‘답안지 바꿔 주십시오’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기합을 받아도, 영창에 가더라도..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연병장 100바퀴라도 돌았을 겁니다. 훈련 마치는 날까지 불침번 말뚝이라도 섰을 겁니다. 그걸 하지 못한 건, 대충 잘 되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 때문입니다. ‘그놈의 행정병..’ 어설프게 기댈 데가 있다고 생각한 부주의한 마음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더 큰 실수만 바란 어처구니없는 기대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선택은 매우 허접한 정보와 어설픈 기대로 결정하고, 별것 아닌 선택에 온갖 에너지를 쏟습니다. 콩나물 한 봉지, 채소 하나를 사면서는 유통기한이니 품질이니 청결상태니 온갖 것을 살핍니다. 휴대폰, 가전제품, 디지털 기기 하나를 사려고 온갖 리뷰 사이트와 가격비교 사이트를 뒤집니다. 화장품 하나를 바꾸려고 해도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입니다. 고르고 고르고 또 고릅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이성과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족들은 어떤 사람 인지 제대로 고려해 보지도 않은 채 덥석 결혼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나는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 고민도 안하고 그저 붙여만 달라며, 평생 헌신하겠다며 100군데도 넘는 회사에 지원합니다. 그리고 어디 지원했는지도 까먹습니다. 아이가 왜 우는지, 왜 젖을 먹여야 하는지, 한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수고가 드는지 계산도 안 해보고 덥석덥석 애를 낳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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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는 훈련

정해진 대로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줄 알고, 중요한 인생의 결정들을 부모에게, 남들에게, 사회에게 맡긴 채 덜덜 실려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이라고는 문방구에서 스티커 고르는 일, 오락실에서 게임 캐릭터 선정하는 일, 적은 용돈으로 영화 보고 떡볶이 사 먹는 일.. 그 정도 규모의 선택만 해 봤기에 규모가 커진 선택에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반복합니다. 식당에서 1인분 추가하는 건 덜덜 떨며 아까워하면서 수 백 만원 짜리 노트북은 싸게 산다며 인터넷 공구를 뒤지다가 사기 당합니다. 차비 아까워 택시도 못 타고 지하철, 버스, 마을버스만 반복하면서 홈쇼핑에서 강원도 어디 이름도 못 들어본 신규 콘도 이용권을 할인해서 구입했다고 수 백만 원을 지출했다가 1년에 2번도 못 가보고 그냥 썩힙니다. 품질 좋은 고급 의류는 간이 작아 못 사고 대신 싸다는 이유만으로 세일 상품은 수도 없이 사들입니다. 1년에 1번도 입지 않는 싸구려를, 다 계산해 보면 그 돈이 그 돈 인대, 그게 옷장 가득 쌓여 있습니다. 버리지도 못하는.. 그래서 같이 늘어나는 건 싸구려 수납함입니다. 방이 옷으로 가득해집니다. 연예인도 아닌데.. 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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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과 연습이 없으면 좋은 선택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합리적인 줄 알고 있는 우리 선택의 대부분은 지나고 보면 매우 비효율적인 선택들이었습니다. 후회만 남고 물건만 쌓입니다. 이사라도 한 번 할라치면 좁은 집에서 끝도 없이 물건이 쏟아집니다. 이삿짐 아저씨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선택의 훈련.. 쉽지 않습니다.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책임이 두려워, 선택을 자꾸 미룹니다. 뒤로.. 누군가에게.. 그리고 단지 ‘내가 안 그랬어..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그 말을 하려고 남의 선택으로 내 인생을 낭비하고 좀 먹습니다. 어느 시점에 뒤돌아 보면, 대신 선택해 준 누군 가들은 아무도 주위에 없고 결국 나 홀로 그 책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뭐라 할 수도 없고, 뭐라 할 사람도 사라졌으니,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후회를 담아 담배나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공허하니 발걸음은 맨날 세일하는 마트로, 아울렛으로 향합니다. 또 입지도 않을걸, 쓰지도 않을 걸 사들이고 사들입니다. 다음 달 카드 명세서에 당황할 거면서..

뒤늦은 후회지만, 그때 용기 있게 손을 들고 답안지를 바꿔 달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군 생활, 지나고 나면 안 힘든 보직이 없고 괴롭지 않은 부대가 없지만 영어는 좀 했겠네요. 미군이랑 만나 결혼을 했을지도 모르고 이민을 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라크에 파병 되어 전사했을 라나요? 아마도 제 인생에 처음으로 경험 한 가장 큰 선택의 순간이었고, 가장 쓰고 후회되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때까지는 남들처럼 컨베이어 벨트가 데려다주는 대로 살고 있었거든요. 후회할 것 없습니다. 평소에 선택하는 훈련, 연습이 되어있지 않았던 당연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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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보험은 오로지 운전자 한정

스스로 하는 선택, 온전히 스스로 책임지는 선택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을 성숙시킵니다. 실패하면 어떤가요? 경험 하나를 얻었는데 경우의 수 하나를 줄였는데 말이죠. 용기 하나를 얻었는데 말이죠. 책임, 까짓 거 지면 됩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고 내가 책임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억울한 건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내 책임으로 자꾸 돌아오는 현실입니다.

니 인생을 왜 남에게 맡깁니까. 자기 차는 자기가 운전해야지요. 인생보험은 타인 운전은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부모도, 배우자도, 자식도, 친구도, 선생도, 누구도 타인이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게 해선 안됩니다. 바다에 빠져 죽고 건물이 무너져 죽습니다. 한순간에 거지가 되고 인생이 망가집니다.

내가 해야 합니다. 선택.. 내 인생이니까요.

훈련소 시절, 어쨌든 행정병, 후방부대에 갈 거란 희망으로 40km 야간행군을 버텼습니다. 당시 저는 ‘봉와직염’으로 발가락이 부어 고름이 나오고 있었는데, 맨 앞에 서서 힘차게 걸었습니다. 어차피 행정병, 후방에 갈 테니 이런 고생은 이번뿐이다 하구요.

행군을 무사히 마치고 동기 한 명이 와서 저에게 고맙다고 하더군요. 행군이 너무 힘들었는데 그 발을 하고도 행군을 버텨내는 저를 보고 걸었다네요. 그런 저였는데.. 자대 배치받고 나간 첫 행군. 긴 코스도 아니었는데 반도 못 가서 낙오해 버렸습니다. 군대에서 이등병이 낙오를 하다니 다녀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주홍글씨가 박히는 일입니다. 고문관으로..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의지를 상실한 것입니다. 암울해 보이는 군 생활에 각오를 놓아 버린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앰뷸런스에서 수액을 맞고 있더군요.

쓸쓸하게 홀로 내무반에 앉아 있으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동이 트자, 행군을 마치고 복귀하는 병사들이 보입니다. 큰 훈련이었던 터라, 부대입구에 군악대가 환영가를 연주하고 있고 그 옆으로는 막걸리와 안주들이 차려져 있습니다. 부대원들의 환영 속에 복귀하는 전우들을 보며 한없이 초라해진.. 한없이 쪼그라든.. 제 자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그때 속으로 다짐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참함을 감당하며 비켜나 있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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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질 비난과 고참들의 얼차려가 두려웠던 게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못난 스스로를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 일 이후, 저는 카투사 따위, 군 생활의 요행 따위 깨끗이 잊고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제 인생의 운전대를 맡기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을 훈련하고 연습하고 있습니다. 실수도 많고 실패도 많았지만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제가 한 선택의 결과이니까요. 그 모든 선택이 오로지 제 자신이니까요.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 운명적 선택이 있습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심지어 어떤 선택은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셋 세는 동안 대답해’ 하고 ‘하나, 둘, 셋, 끝!’ 해버립니다. 그러한 선택이 쌓여 그날따라 일찍 일어나게 하고, 버스 대신 지하철을 타게 하고, 무너지는 다리를 피하게 합니다. 성수대교가 붕괴되던 날. 비슷한 시각, 저는 바로 옆 한남대교를 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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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철없던 말 선택 하나로 20년 동안 골방에 갇혀 군만두만 먹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평생, 선택은 미룬 채 책임만 지다 가는 게 대부분의 인생입니다. 내 인생의 선택권을 남에게 넘길 때 내 인생은 이미 미끄러지기 시작한 겁니다.

운명과 선택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운명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운명을 살고 자기가 선택했다고 착각하는 지도 모릅니다. 바꿀 수 없는 운명, 그런 걸 숙명이라 하고 숙명은 무의식에 의존합니다.

의식적 선택.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자유의지입니다.

무의식적 선택은 랜덤하게 타인에 의해서 결정 되어지고 이것은 숙명적입니다. 내 선택은 끼어들 틈이 없으니 남들의 선택의 결과에 얹혀져 이리저리 쓸려 다닙니다. 이건 운명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그냥 다른 이들의 운명적 선택에 따라오는 의미 없는 결과이니까요.

의식적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비로소 운명이 됩니다. 내가 한 선택이니 내가 책임지고 결국 내 삶이 되니까요. 뒤돌아 보면 운명이었다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카투사가 되지 못한 건 숙명적 결과였습니다. 다른 이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답안지를 수정하지 않았는데도, 카투사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죠. 저 대신 용기 있게 답안지를 바꾼 누군가가 카투사가 되었다면 그의 인생에서 카투사는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택을 포기하면 운명은 멈춥니다. 그 뒤론 랜덤 한 뒤죽박죽 인생만 펼쳐집니다. 남들의 선택에 의해, 따라오는 결과만 계속 감당해야 하는 뒤처리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용기 있는 선택은 운명을 좌지우지합니다. 내 선택에 따라 사회, 국가, 지구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에 따르는 책임뿐 만 아니라 그에 따르는 열매 또한 온전한 내 것이 됩니다.

50대 50의 확률. 세상의 모든 확률은 50대 50입니다. 되거나 안되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복권에 당첨될 확률 또한 50대 50입니다. 여러 장을 산다고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게 아닙니다. 그건 단지 숫자놀음일 뿐입니다. 당첨이 되거나 안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50대 50. 그래서 원숭이의 주식투자 승률이 애널리스트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겁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입니다. 승부를 걸어볼 만 합니다. 선택합시다. 결과가 무엇이든 내 인생을 내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이긴 게임입니다. 연습, 훈련합시다. 결과가 쌓일수록 승률은 높아지고 내 인생은 완성되어 갑니다.

휘리릭~







[INTRO]
마법사입니다. 그렇다구요.
마법의 열차는 불시 도착, 정시 발차

[Post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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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죠. ^^

선택이 곧 그 사람이죠. 이토록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대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도 선택다운 선택을 해볼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정해진
길로만 왔으니까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은 가지 않도록 은연중에 길들여졌잖아요. 이건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아야 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20대 초반에 했어야 할 고민을 30이 되어서야 시작하는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다는 나라의 답답한 현실이죠..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스로도 생각하곤 하는 문제인데...선택을 하기 위한 올바른 판단력을 훈련할 수는 없을까 하는...
덩케르크에서처럼 사소한 선택, 작은 우연들이 모여 생과 사를 가르는 결과가 나올 때 "이런 경험치들을 모아보니 이렇게 하는게 제일 살아남을 확률이 높더라"를 모아서 만들어진 필드매뉴얼. 인생에는 어디 없을까요.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선택학'이라고..

글 재밌게 잘봤습니다
답안지 바꿔달라고 하시지
안타깝네요

와.... 순식간에 다 읽었습니다 ^^ ;;
재밌는 글이네요 ^^

어떻게 승률을 높이느냐....그것이 문제입니다^^

지독하게 잘 쓴 글이네요
리스팀합니다 ㅋㅋ

점점 삶이 팍팍해지면서 실패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실패하면 안된다는 강박이 선택을 망치곤하지요. 쉽지 않네요. (음 화천이면 15ㅅ... 반갑습;;;)

선택이 정말 중요한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글이네요. 답안지 하나때문에 그 극악의 확률을 뚫고 가시다니ㅠㅠ선택하는 것도 연습해서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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