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사교육

in #kr7 years ago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교육을 중요시한다. 너무나도 중요시한 나머지 교육이 전부라고, 인생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그 교육이 배움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이상한 곳으로 목적이 새어 버리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 문제의 사례들 중 하나가 현 대한민국 사회이다.

‘학교’ 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일정한 목적ㆍ교과 과정ㆍ설비ㆍ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교사가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 다음엔 ‘교육’ 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 결국 학교라는 곳은 일정한 목적이나 법규에 의해 교사가 지속적으로 학생에게 지식이나 기술, 인격을 가르치는 곳이다. 과연 이 말이 학교를 제대로 정의하고 있는 걸까?

대한민국을 들여다보면 많은 아이들이 교육열에 시달린다. 빈민층과 사회적 약자들이 가득한 저소득층부터 떵떵거리며 호위호식 하는 상위층 등 수능이라는 초대장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그리고 이 수능은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인생을 나타내는, 그런 시험이다. 수능 점수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점수가 표현된다. 물론 가난하지만 불행하지 않아요 같은 경우도 존재한다. 소박한 삶을 찾아 하루하루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넓디 넓은 집에서, 매일 매일 고급음식을 먹으며 원하는 걸 다하고 살 수 있다면 그런 소박한 행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질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더욱 더 편리하고, 빠른 삶을 원하니까. 수능 시험은 점수를 통해 그 사람의 미래 삶을 보여준다. 그것이 항상 행복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높은 질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총 12년에 걸쳐 수능을 준비한다. 12년간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시작하는 학생일수록 성공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부모님의 재력이나 관심에도 성공률이 높아진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교육에 관심이 많고, 좋은 점수를 얻어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곳에서 난 의문을 하나 제기하겠다. 만약.. 이 길이 올바르지 않은 길이라면? 만약.. 대한민국의 사람들 전부가 공부라는 잘못된 길에 속고 있다면? 상황은 여기서부터 급반전된다.

A라는 학생이 있다. A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능시험까지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았다. A는 대학을 졸업하고 결심한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기도 했던 과목이 수학이고, 미래가 보장되는 직업을 찾아보다가 수학자가 눈에 띄어서 수학자가 되겠다고. 이번엔 B라는 학생이 있다. B는 초등학교 때는 국어, 과학 등의 다른 과목들을 공부하다가 중학교에 들어서 부턴 수학만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른 과목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수학에 관련된 서적과 문제풀이 만을 했다. B는 수능에서 수학 한과목만 빼고 나머지는 5등급 밖으로 밀려 났다. B 또한 수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두 학생은 둘 다 수학자가 되었다. 아니, 되려고 했다. 하지만 B는 수학자가 되지 못하였다. A는 수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리 유명한 수학자는 되지 못하였다. 별다른 업적이나 명성 없이 자신이 원하던 수학자의 평균적인 삶을 살다가 갔다. 이 둘의 수학실력은 누가 더 높았을까? 단연코 B가 훨씬 더 높았다. 하지만 B는 직시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수능이라는 관문이다. 대한민국사회에서 보는 것은 수능이 첫 번째라는 것, B는 이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B는 게임에서 졌다는 것이다. 무언가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는가? 직업은 흥미와 적성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우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언가 심히 이상하다. 분명 다른 과목까지 병행한 A는 B보다 수학실력이 월등히 낮았을 텐데 무슨 수로 A만 수학자가 된 것일까? 시험주의 사회의 붕괴가 시작된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학교시절의 성적을 통해 그 사람의 성실성을 볼 수 있다고. 학벌을 통해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번엔 내가 묻겠다. 우리는 12년이라는 인생의 유년기를 그 좆만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 허비해야 하는 것인가? 결국 수능이라는 관문은 그 좆만한 기준의 평가장이고, 12년 인생을 누가 더 잘 허비했는가를 보는 곳인가? ‘배움’ 이라는 것은 교육에 의해 지식과 기술, 인격 따위를 습득하는 것이라고 했다. 초 중 고 학교의 진급은 그 배움의 단계를 향상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배움의 본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 자신을 나타내는 껍데기, 그 자체이다. 회사에서 사원을 뽑거나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대학이라는 것이 그 기준이 된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하면, 그 대학이라는 곳을 갈 때 보는 수능 시험이 잘못 되었다는 것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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