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비예술의 경계

in #kr7 years ago

주제는 예술과 비예술을 나누는 경계가 무엇인가이다. 독립 미술가 협회의 심사위원이었던 마르셀 뒤샹은 Mutt라는 이름으로(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소변기를 독립 미술가 협회에 제출한 바가 있다. 작품의 이름은 ‘샘’이었다. 뒤샹은 자신의 작품이 전시회에 전시되지 않자 ‘샘’은 엄연히 예술 작품이라며 협회에 전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가 ‘샘’을 예술 작품이라고 주장했던 근거는 이러하다.

첫째, ‘샘’은 소변기로서의 본래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샘’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소변기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에 힘입어 결국 뒤샹의 ‘샘’은 전시된다. 이 사건은 미술사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의 개념과 범주를 확장시킨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뒤샹은 왜 소변기를 두고 제목을 하필 ‘샘’으로 지었을까? 일상적으로 변기는 우리에게 불결한 느낌을 준다. 뒤샹은 불결하다고 인식되는 변기에 ‘샘’이라는 고결한 제목을 붙여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 도전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변기는 정화의 기능을 갖는다.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 그간 예술계에 판치던 고정관념을 정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뒤샹의 이러한 기행은 우리로 하여금 미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고, 미술계에 새로운 장르인 오브제(레디메이드)를 제시했으며, 예술계의 편협한 사고방식에 대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뒤샹이 ‘샘’을 전시한지 약 80년 후인 1999년, 트레이시 에민이라는 여성 화가는 ‘나의 침대’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참고로 에민은 자기가 쓰던 침대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전시했다. 갤러리에 전시되었단 이유 하나로도 그녀의 침대는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만하다는 것이다. 또, 앤디 워홀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을 그대로 전시하거나 나열하고 조합해서 작품을 만든 예술가이다.

에민과 워홀의 작품들은 뒤샹의 것보다 더 획기적이라 평가받기도 한다. 뒤샹은 소변기에 ‘샘’이라는 나름의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지만, 에민과 워홀은 사물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했다. 이것도 과연 예술 작품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이라면 이 세상에 예술이 아닌 것이 없게 된다. 미술관에 전시되기만 하면 모든 사물이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나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을 감상하며 우리는 감동, 숙연함, 애잔함 등 온갖 다채로운 감정들을 느낀다. 그렇다면 뒤샹, 에민, 워홀의 작품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뒤샹은 색다른 제목을 붙임으로써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사고와 관점을 확장시켜주었다. 그러나 에민과 워홀은 그러한 작업조차 거치지 않았다.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현재까지도 예술의 범위는 확장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뒤샹, 에민, 워홀과 같은 선구자들은 우리에게 예술과 비예술의 차이는 무엇인지, 또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1. <샘>이라는 작품을 보고 느낀 점을 적으시오.
    제목을 알기 전까지는 더럽고 부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오물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샘’이라는 제목을 보고 샘과 소변기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고, 샘과 소변기가 ‘정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지루하고 불쾌한 소재가 될 수 있는 좌변기에 ‘샘’이라는 새 이름을 붙인 것만으로 새 생명을 준 뒤샹의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2. 예술작품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나는 예술작품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특별히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별 것도 아닌 것이 남에게는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으며, 남들이 무관심한 것이 나에게는 소중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반드시 모두에게 감동을 주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윤리에 어긋나는 것만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단 한사람에게라도 마음의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술작품이다.

  3. 훌륭한 예술작품이라면, 예술전문가의 설명 없이도 누구나 예술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을까?
    한 예술작품에 대한 어떠한 해석도 모두를 납득시킬 수는 없다.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술전문가의 설명은 관점의 차이로 인해 다채로워질 수 있는 해석을 획일화시키는 부정적인 작용을 한다. 예술은 감상과 해석의 학문이다. 나의 해석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훌륭한 예술작품이라면 전문가의 해석 없이 누구나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즉,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면 그 무엇이든 훌륭한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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