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일하는 남자가 멋있어 보이는 이유

in #kr8 years ago (edited)

남편이 집에 있을 때의 모습은

내가 보기에는 그닥 존경할만한 구석(?)이

없어 보인다.

항상 컴퓨터를 향해 등을 보이고 있거나

쇼파와 한몸이 되어 아이패드는 그냥 그의 손의 일부다.

뭘 하는고 하니,

역시나 남자들이 죽고 못 사는 게임인데

(여자들이 드라마나 수다에 죽고 못 사는 것처럼)

그 게임도 고난이도의 그런 게임은 아니었나보다.

한번은,

남편이 나를 불러 이 한국어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들여다보니 거기에 쓰여진 한국어는......

"똥머리"

ㅡㅡ .......

이건 초등학교 고학년도 아니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저학년이 쓰는

자기 수준에서는 최고 남을 비난하는 욕이다.

ㅎㅎㅎㅎ

남편이 하는 그 게임은 팀을 이뤄 하는 모양인데

남편과 다른 중국 어른들(?)이 한 팀을 이뤘고

다른 팀 중 한국 팀이 있는데 그 팀의 일원이

중국 팀의 플레이에 화가 난 나머지

"똥머리"를, 그토록 심한 어휘를 날린 것이다.ㅋ

똥머리를 통역해서 알려주자 신랑도 풉 하고 뿜었다.

이렇듯 집에서는 똥머리를 날리는 저학년들과

죽자 사자 아이패드를 손에 붙이고 누워있는 남편이

샤방샤방 빛이 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은 바로

"밖에서 만날 때"이다.

항상 집에서 패드 붙잡고 누워

저학년들이랑 게임이나 하는 남편이

밖에서 만나는 모습은 사뭇 다르다.

간혹 남편 회사 근처에서 약속을 잡아

같이 밥을 먹을 때가 있는데

회사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샤방샤방 하다.

프로페셔널한 분위기에

(도대체 뭐가 프로페셔널한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포스가 넘친다.

남편을 안지 십년이 넘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때만)

아침에 회사로 나가는 모습을

분명 보았건만, 그건 계속 누워있다 나가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ㅋ 별 감흥이 없는데

밖에서 보는 그의 모습은 집에서의 그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다.

외모 뿐만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뭔가 존경할만한 구석이 이때만큼은 보인다.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집에서 며칠동안 안 감은 머리로

위 아래 신랑 회사에서 나눠준 신랑 회사 로고가

박힌 커다란 운동복을 입은 채로

신랑을 맞이할 때는

신랑의 동공에는 일련의 움직임도 없다.(=_=)

하지만 내가 면접을 보러 나갈 때

나의 갖춰진 옷차림과 약간의 진지함과 긴장과

설레임이 섞인 나를 볼 때의 그의 눈은

내가 밖에서 그를 볼 때의 그 눈과 비슷하다.

나를 다르게 보는 것이다.

윤홍균의 '자존감 수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많은 역할 정체성이 있는데 이 중에서

어떤 것에서는 자존감이 낮고 어떤 것에서는

자존감이 높을 수 있다.

어차피 모든 역할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니 어떤 한 가지 정체성에서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자신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직장인인 내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나 전체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

며느리로서 내가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직장인으로서의 나까지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한 곳에서 존재감을 확인받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의 문제로 확대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종종

하나의 정체성을 너무나 강조한다.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훼손되면

우리 삶 전체가, 우리의 존재 자체가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하며,

며느리로서 인정받지 못하면

내 존재와 능력에 대해 회의를 갖는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역할이 주어지며

이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이기도 하다.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역할을 다 잘 해낼 수 없다.

직장인으로서는 자존감이 좀 낮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동호회에서는

자존감이 높을 수도 있고,

직장인으로서는 자존감이 높지만

가정에서는 자존감이 낮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도 없다.

그저 자신의 인생 가치관에 따라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곳에

자신의 에너지를 더 쏟아 부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느 한 역할에서 인정 받지 못한다고 해서

인생에 회의를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자존감이 좀 낮지만

내가 좋아하는 어떤 부분에서는 자존감이 높을 수 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말 주변이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친구 앞에서는

갑자기 수다쟁이가 되고

내 아이 앞에서는

갑자기 코메디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

하고 쉽게 단정내릴 수도 없고

내 자신도 쉽게 단정내려선 안된다.

우리는 여러가지 역할이 있고

우리의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는

그런 역할들에 우리의 에너지를

더 쏟아 부으면 될 일이다.

그 외의 나머지 역할들은

그저 옵션이다.

나에게는 아직도 많은 역할들이 있고

그 역할들은 나에게는 모두 기회이며

우리는 모두를 잘 할 수 없으며

우리의 가치관에 따라

나의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고

설사 어느 부분에서 자존감이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직도 많은 역할들이

우리를 인정해주는 많은 기회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했으면 좋겠다.

아예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백프로 쓸모 있는 사람도 없다.

마음을 조금 더 편하게 갖자.

어딘가는.

분명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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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싫어해도,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와도 일맥상통하는 것같아요. 저느 고등학교 때 막연히 저를 싫어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뒤에서 욕하는 그룹이 있었는데, 저를 좋아하고 저와 어울리는 그룹친구들도 있더라구요. 저를 싫어하는 애한테 가서, 뒤에서 욕할꺼면 앞에서하라고 했더니 뻘쭘해 하더라구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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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거지만 글을 참 찰지게 잘 쓰세요~그것도 능력인데 부럽습니다~^^

부족한 글에 이렇게 과찬을 해주시니 너무나 기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올리겠습니다~~~^^

빠져듭니다......................................

제 글을 좋아해주시니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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