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megaspore (69)in #kr • 8 years ago (edited)

처음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이 없다가
지날수록 존재감이 커지는 사람들이 있다.

무한도전 안에서의 정형돈이 그런 케이스인 것 같다.
정형돈은 개그맨이지만 처음에 무한도전 안에서는
"웃기는 것 빼곤 다 잘 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비록 다른 재능도 많고 열심히 하지만
개그로서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는 확연히 떨어졌던 것이다.

그는 무도 안에서 재미없는 뚱보 캐릭터로 한참을 버티더니
어느 순간 무도 내에서 유재석 박명수 노홍철을 능가하는
가장 핫한 개그맨으로 자리매김했다.
나도 코미디 프로를 볼 때는 웃음에 인색(?)한 편이지만
그 당시 정형돈은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아도 뭘 해도 웃겨보였다.

무도 내 나름 패셔니스타(?)였으며
형돈이와 대준이로 노래로서도 인정 받았고
무도 가요제에서도 정형돈이 가장 돋보였던 것 같다.
웃기면서도 재능까지 엿보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불안장애라는 마음의 병을 얻어
무도를 일시 탈퇴하게 되었는데
정말로 말 그대로 가장 화려한 전성기에
(무도 외에 맡은 정형돈이 주도하는 프로그램도 대부분 다 인기가 있었다)
갑자기 잠정 중단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의 잠정 연예계 생활 중단 보도를 보고
순간 그 전에 유재석이 정형돈에 대해 말 했던 게 생각났다.

유재석은 예전에 정형돈이 장이 안 좋아 화장실에 자주 가고
화장실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질 않는다고
그게 불만이라고 말하는게 방송에 나온적이 있었다.

그 방송을 볼 당시에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정형돈의 방송 잠정 중단 보도를 보고 나서는
그때 유재석이 말했던 정형돈이 장이 안 좋아
화장실을 자주 간다고 말했던게 다르게 보였다.

수잔 케인의 '콰이어트'에서는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들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그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떤 유명한 교수는 강의를 할 때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그래서 겉보기에는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는 내성적인 사람이라 강의가 끝나면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잠시라도 가지고 나야 그제서야 다시 에너지를 회복하고
다시 사람들과 교류할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보통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로 외향적인 활동을 하고
그래서 밖에서 보이는 그는 외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나 원래 내성적이야 하면 그의 지인들은 믿지 못할 정도로
자신이 외향적으로 보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확신할 수 없지만
처음 무도 내에서의 그의 존재감을 생각해보면
그는 내성적인 성향을 더 많이 지닌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다른 멤버들과 달리 그는 첨부터 개그맨 지망생이 아닌
삼성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다른 재능이 많았던 그는 노력을 통해 개그에도 재능을 점점 키워갔으며
나중에는 그 노력이 빛을 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중간중간 자신의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화장실에서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자주 필요했으리라.
(물론 장문제도 진짜 있었겠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주된 원인이 아닐 수 있다)

그렇게 노력으로 승승장구하여
유재석보다 더 빛을 발하던 그 전성기에 그는 모든 것을 그만두었으며
그것은 아마 그를 좋아하던 시청자들에게는 충격이고 의외였을것이다.

종종
가장 밝은 빛 뒤에는
가장 어두운 그림자가 숨어있는 것 같다.
그의 그림자가 있기에 밝음이 더 극명히 드러났으리라.

우리가 가장 잘 나갈 때,
혹은 누군가가 가장 빛나보일 때,
그 속에는 누구도 모를 그림자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존재는
자신조차도 모를 수 있다.

누구를 잘 안다고,
설사 나 자신도 잘 안다고,
우리는 단언할 수 있을까.

SNS에서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보인다.

너무 부러워하지 말자.

어둠이 있기에
그 빛이 더 밝아보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우리의 방황과 절망은
분명 화려한 빛의 가능성을 숨기고 있다.

그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