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둔다는 것, 추억

in #kr8 years ago

대부분의 애기 엄마들이 그렇듯이
나도 나의 2세가 태어난 그 날을
바로 나의 인생의 가장 최고의 날,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하고 있다.

다행히 시대가 좋아져서
우리 엄마 시대 때에 우리가 태어난
사진이나 동영상이 남겨진 경우가
거의 없지만, 우리는 이제
출산 후의 소중한 그 순간들을
모두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고 있다.

나도 역시나 출산 후 감격스러운 그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는데 사실 내 심정은
그저 기쁘고 그저 얼떨떨할뿐
그외에 딱히 생각나는 말도
하고 싶은 말도 없었으나,

영상에 남겨진다는 생각에 조금은 어색하게
"어머 아빠랑 똑같네..."라고 말을 했다 ㅎㅎㅎ
사진에서는 진짜 기쁜 것도 맞았지만
카메라를 보며 더더욱 환하게 웃고 있다...
이것이 모두 꾸민 것은 아니지만
사진과 영상에서의 나의, 이 엄마의 모습이
더 잘 보여지길 바라며
약간의 연출이 들어갔던 것 같다.

(뭐, 인생에서 살면서 연출과 화장 좀 하면 어떠겠는가. 다만 페르조나가 너무 심해서 진짜 내가 가려지지 않을 정도면 오히려 생활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내가 남겨둘걸 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은,
아기가 출산 이틀 후 퇴원할 때
아기엄마한테만 수유실에서
아기의 몸이 정상인지 아닌지
보여주는 과정이 있었는데
(수유실에서 하기 때문에
아기 아빠는 보지 못 한다)
처음으로 아기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얇고 가느다란,
그래서 아주 길게 보이는 손가락과 발가락.
역시나 뼈밖에 없는듯 보이는 가느다란,
그래서 아주 길게 보이는 팔과
엄마 뱃속에서 계속 구부리고 있었던 탓에
잘 피지 못 하는 얇고 기다란 다리.

꽁꽁 싸맸던 배냇 저고리를 풀어놓자
눈을 감은 채로 가느다란 팔과 다리를 발버둥쳐보더니 몸이 휑했는지 갑자기 앵하고 얼굴이 빨개지며 울던 나의 딸.

그 감동적인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놨다면
참 좋았을텐데 왜 간호사한테 영상으로 찍어놔도 되냐고 물어보지 않았을까
혼자 후회도 잠깐 해보고.
(간호사가 못 찍게 할 거 같아서 아예 물어보지도 못했다.. 거절 당할 것 같으면 아예 시도도 못 해보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그런 감동적인 순간을
이름 모를 간호사와 나만 함께 했고
나 혼자만 그 순간을 내 기억 속에서
회상할 수 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그 순간이 떠올랐는데
기억을 더듬어 그 아름답던, 감동적이던 순간을 영상으로 담아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

오히려 내 머릿속에만 있기에 이것이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핸드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모든 순간들을 남겨둘 수 있는 지금.

그래서 우리는 어디를 가나,
무엇을 먹나,
이 순간이 소중하다 싶으면
핸드폰으로, 사진으로 남겨두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막상 그 순간,
눈깜짝할 새에 지나버리는
그 순간은 느낄 새가 없다.
그리고서는 안심한다.

느끼지 못했어도 괜찮아.
남는 건 사진 뿐이야.
하며.

그런데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갔던 곳이 분명 끝내주게 멋진 곳이었는데 사진으로 다시 보니 별 감흥이 없던 경우
말이다.

우리는 참 조바심을 낸다.
이 순간이 지나가버리는 게 아쉬워서,
모든 걸 남겨두고 싶다.
그래서 어딜 가나
내가 그 순간을 느껴보기도 전에
나의 핸드폰에 매 순간을 남겨둔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이 있기에,
다 남겨져 있기에
그 순간을,
미치도록 그리운 그 순간을
눈물겹게
느껴보려고 하지 않는다.

언제나 또 볼 수 있기에
이제 그 소중한 순간은
그 의미를 퇴색한다.

언제나 다수의 널린 것보다는,
다시는 오지 않을 단 하나의 것이 가치가 있다.

우리 개개인이 이토록 가치 있는 이유는
우리는 모두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이 이토록 가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인생이 단 한번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금 이 순간이
눈물겹도록 소중한 이유는
이 순간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으로 느껴보자.

따뜻한 커피,
사랑하는 사람과의 포옹,
서로 바라보는 그 눈빛.

모두 눈물겹도록
감동적으로 그 순간을 느껴 보자.

한번 뿐이다.

다신 오지 않는다.

오늘이 어제와 '같은 하루'라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가장 큰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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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블록체인에 글로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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