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의 사랑도 받는 이유, 그리도 가진 사람이 되려 했던 이유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아기와 함께 빗길을 산책했다.
빗방울에 젖은 나뭇잎을 아기의 손에 쥐어 주고, 촉촉한 빗방울을 아기의 볼에 묻혀 본다.
비가 오면 비를 즐기게 해주고 싶고,
맑으면 공원에 주저앉아 햇빛을 쬐게 해주고 싶다.
비에 젖은 작은 나뭇잎들을 찬찬히 보는데,
급한 마음으로 무엇을 향해 헐레벌떡 지나갈 땐 그저 초록색 무더기의 똑같은 나뭇잎으로 보이더니, 자세히 보니 나뭇잎 모양도 가지각색이었다. 완전히 똑같기만 한 나뭇잎은 없었으며, 모양은 똑같더라도 크기는 제각기 달랐다.
빗물에 촉촉히 젖은 작은 나뭇잎들이 새삼 귀엽게, 상큼하게 보였다.(목욕하고 촉촉히 젖은 피부의 내가 갑자기 이뻐보이듯이)
비 오는데 나뭇잎을 살펴보는 사람은 나 뿐이었고, 우산을 쓰고 (아기띠를 하고) 굳이 빗길에 서 있는 사람도 나 뿐이었다. (우리 아파트에는 정류장처럼 비를 막을수 있는 통로가 있기 때문에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않아도 된다)
옆에는 커다란 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고,
나는 화단에 있는 작은 풀잎들을 만져보았다.
나는 그때 우리 대부분이 작은 풀잎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이 천천히 우리를 알려 하지 않고 급하게 우리를 지나치며 볼 때는 우리는 그저 한무더기의 초록 풀잎이다. 별 특징도 없으며 화려하지도 않고 매력도 없으며 어디서나 볼 수 있어 그 곳에 시간을 투자해 찬찬히 살펴볼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반면,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는 급하게 지나가도 쉽게 눈에 띈다. 그래서 한번쯤은 관심을 갖게 되며,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감탄하고 좋아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무는 원래 장대하고 크기 때문에 멋있고 바라볼 가치가 있으며,
눈에 띄지도 않는 작고 평범한 풀잎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 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그토록
성취나 지위, 돈에 매달렸던 이유는 어쩌면
그래야만 우리는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걸으면 박수 받았고 상을 받으면 이쁨 받았다)
그토록 눈에 보이는 성취를 추구했던 이유는, 장대한 큰 나무가 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진실한 관심,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사랑을 받기 위해 큰 나무가 될 필요가 없다. 우리의 본연의 풀잎 같은 소박한 모습으로도 사랑받고 이쁨 받을 수 있다.
타인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건 왜일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보게 되면
우리는 그제서야 저 사람의 존재를, 저 사람의 가치를 살펴 보게 된다. (저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는 뭔가 특별한게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자기 사는데 바빠 자세히 알아볼 여유가 없으며 그래서 누군가를 그냥 한무더기의 풀잎으로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도 나를 그냥 별볼일 없는 흔한 나뭇잎으로만 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타인은 우리의 가치를 알려 하고 우리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우리가 가치가 없어서, 너무 작아서, 그래서 사랑을 못 받는게 아니다.
단지 사람들은 우리를 아직 발견 못 했을 뿐이다.
나를 좀 알아 달라고,
나를 좀 더 사랑해 달라고,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더 높은 지위를,
더 많은 성취를,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질 필요는 없으며
내가 나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그때 사람들은 빗방울에 젖은 나의 촉촉한 소박한 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나를 찾을 것이고,
나의 아름다움을 알아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초라한 존재가 아니며
혼자 고독하게 비를 맞고 있지 않아도 된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촉촉히 젖은 작은 풀잎처럼,
자세히 살펴 보면,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