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부제: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명칭이 갖는 힘, 그리고 악순환)

in #kr8 years ago

우리는 누군가를 생각할 때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의 명칭을 떠올린다
.
예를 들면, 엄마, 언니, 시어머니, 남편, 친구 , 동료, 사장님, 교수님 등등.

이 명칭은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람을 떠올릴때 마다 우리의 관계에 얽힌 그 사람의 역할, 나의 역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기대, 나에 대한 그 사람의 기대를 같이 떠올리게 한다.

예를 들면, 엄마란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는 먼저 우리의 관계에 얽힌 엄마라는 사람의 역할 (나에게 헌신하여 돌보아 주는 존재)를 자연스레 떠올리며, 또한 나의 역할 (효도해야 하며 그 분을 기쁘게 해드려야 함)을 떠올린다.

시어머니란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시어머니의 역할 혹은 편견 (시어머니는 친정엄마와 달리 나에게 불만을 갖고 있을 것이다.)이 떠오르며 나에게 주어진 역할( 시어머니에게는 엄마처럼 편하게 대해서는 안되고 예의를 갖춰 대해야만 한다.)

친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친구에 대한 나의 기대 (내가 힘들 때는 친구는 나의 위로가 되어주어야 한다.)가 떠오르며,

동료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역시나 그에 대한 편견 (동료와는 너무 가까워져서 좋을 것이 없다. 딱 일하는 그 관계로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등

나의 머릿속에 분류된 사람들의 나와의 관계에 얽힌 명칭들은 그 사람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그 명칭에 얽힌 그 사람이 나에게 거는 기대, 내가 그 사람에게 거는 기대, 서로의 역할, 또는 편견 등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리하여 그 떠오른 기대와 역할, 편견 등에 맞춰 나는 그 사람에게 할 행동을 정하게 된다.

예를 들면,
엄마와 있으면 나는 엄마는 나에게 헌신하는 존재로 규정했기 때문에 엄마 앞에서는 온갖 짜증을 부리게 된다. 마음 속으로 엄마는 그런 나를 받아줘야만 나에게 헌신해야 하는 존재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조심할 짜증도 엄마에게는 조심하지 않는다. 짜증이 짜증을 부르고 나중엔 그게 습관처럼 된다.

시어머니와 있을 때는, 시어머니는 보통 자기 아들을 뺏아간 며느리에게 질투를 느껴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어디서 들은 것이 많고 바퀴벌레 박멸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고부간의 갈등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나는 시어머니가 한마디 할때마다 그것은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을거야.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 한 말일거야. 등등 원래의 의미와 행동에 나의 추측을 추가한다.

그리하여 추측은 추측을 낳고 불신은 불신을 낳고 결국에는 모든 행동이 정말 못마땅하게 보인다.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이쁠리가 없다. 결국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은 추측에서 정말 서로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는 사실이 된다.

내 머릿속에서 친구라고 분류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기대가 떠오른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을 떠올리며, 그 사람에게 털어놓고 만일 그 사람이 나의 힘든 점을 잘 몰라준다거나 시큰둥한(내가 느끼기에) 태도를 보였을시, 나는 그 사람에게 크게 실망한다. 친구면서 어떻게 이럴수있어. 하며 분노하고 그 친구로 인해 슬펐던 마음은 한층 더 슬퍼진다. 그 사람에게 친구라는 뺏지를 내가 채워놓고 그 뺏지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그 친구로서는 가끔 부담스럽지 않을리가 없다.

남편이라고 분류된 사람에게는, 자연스레 남편에게 주어진 역할이 떠오르는데, 예를 들면, 남편은 한 가정의 가장이니 성실히 돈을 잘 벌어와야 하고, 나의 남편이니 나의 외로움 투정 등도 다정히 들어줘야 하며, 아이의 아빠니 퇴근 후 아이와도 천진난만하게 놀아줘야 한다. 왜 그러냐. 그건 그 사람의 명칭이 남편이고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한 인간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며 또 그 요구를 받게된 인간은 부담감에 점점 어깨가 처진다.

그리고 요구를 하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요구하면서도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것은 그의 명칭에 따라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 내 자신으로 돌아가보자.

그 명칭에 걸맞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는
나는 나의 역할에 맞는 행동과 말을 하려 노력하게 된다.

예를 들면,
엄마와 있을 때는 나는 엄마를 기쁘게 해드려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슬픈 모습은 최대한 감추고 기쁨의 가면을 쓰고 엄마를 대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진실한 교류의 기회는 사라진다.

시어머니와 있을 때는 나는 며느리의 역할을 떠올리게 되어 가끔은 딸 같은 모습으로 편하게 대할수도 있을텐데 항상 긴장한 상태로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며 내 몸과 마음을 릴랙스 하지 못한다.
내가 본인때문에 이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시어머니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둘 다 서로에게 원치 않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셈이다. 서로의 머릿속에 서로의 관계에 얽힌 역할 기대 편견이 가득차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면 또 어떤가.
원래는 사랑해서 같이 살기로 한 사람.
영원히 같이 보고 죽기 전까지도 볼 수 있는 사람. 보고 싶었던 사람.
그래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실상은 그게 왠말인가.
남편이 들어오면 내 머릿속에서는
"밥은 먹고 들어왔나? 설마 안 먹고 들어온건 아니겠지? 밥 차려야 하나?"
혼자 아기를 잘 보고 있다가도 남편이 들어오면 "애한테 왜 관심을 안 주지? 애는 나 혼자 만들었나? "
갑자기 없던 불평이 막 생기기 시작한다.

모두 그 사람을 보는 순간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 얽힌 명칭을 떠올린 탓이다.

앞으로 어떤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을 볼 때
습관적으로 떠올리던 관계의 명칭을 떠올리기 전에 그 사람의 객관적인 모습을 먼저 떠올려보면 어떨까.

예를 들면, 엄마를 떠올릴 때
환갑이 넘은 연세에도 자신의 가게에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하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한 여자. 한평생 자식 뒷바라지 하며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자식들은 다 먼곳에 있고 홀로 열심히 일을 끝낸 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외로운 한 나이든 여자.

시어머니를 떠올릴때도, 습관적으로 시어머니란 명칭을 떠오르기 전에 객관적인 시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삽십년 넘게 그 작은 시골에서 아들 하나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온 환갑 연세의 한 나이든 여자. 아들을 더 잘 되기 하기 위해 도시로 유학보내기 위해 아들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척집에 전전하게 하며 좋은 교육을 시켜주려고 그 목표로 열심히 달려온 한 여자.
세월은 쏜살같아 아들은 장성했고 가정을 이뤘고 이제 드디어 한숨 돌리고 아들과 함께 이 순간을 누리고 싶은 나이든 한 여자.

남편을 떠올려보면,
예민한 성격, 약한 체력에도 항상 성실하게 출퇴근 하는 가정적인 남자. 술도 약하고 게임 외에 다른 밖에서 하는 취미도 없어 퇴근 후에는 집에 와서 아내가 따라주는 물과 깍아준 과일 먹으며 게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 남자. 아기를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지만 아기를 바라볼때 너무나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한 가장. 한 여자의 성실한 남편.

이렇듯,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다들 살아가는 애환이 있고, 꽤 괜찮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의 관계에 얽힌 기대에 따라 그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불평이 시작된다.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다른 걸 다 떠나서
내 자신이 괴로워진다.
내 자신이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불평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이다.

내 자신을 바라볼 때도
어떤 기대와 편견 나의 사회적 역할에 기대서 나를 바라보지 말고
정말 객관적인 눈으로 나를 한번 바라보자.
정말 남을 바라보듯이 나를 한번 바라보아 주자.
예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배가 나왔고 후줄근한 어떤 아줌마가
서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바라봐보자.

나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나의 역사를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아 보자.
어떤가.
무언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무언가에 상처받고 울고 있는 모습.
사랑을 받고 기뻐하는 웃고 있는 나의 모습.

어떤가.
이 사람을 나는 지금까지 너무 몰아세운 것은 아닌가.

이 사람도 사실 안쓰럽고 애처로운 사람이다.

조금 더 토닥여주자.

남한테 위로를 건네듯이
나한테도 위로를 말을 건네주자.

지금까지 꽤 잘해왔네.
너 헛 산거 아니야.
너 꽤 괜찮은 사람이야.

토닥토닥.

우리 자신에게
너무 모질게 굴지 말자.

우리 자신은 잘 하려고 애쓰고 있다.
우리라도 그걸 알아주자.

"너 꽤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알아."

라고.

토닥토닥.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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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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