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는 모습, 진실
예전에는
표면에 드러나는 모습을 많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나를 보고 자주 웃는 사람은 호의적이고 예의가 바르고 좋은 사람이다. 나를 보고 무표정인 사람은 나에게 좋은 감정이 없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이 아니다. 등등 표면에 드러나는 것을 진심으로 많이 믿었던 것 같다.
근데 요즘 들어서는 나에게 지속적으로 무표정인 사람(웃어줘야 할 상황에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무표정인 사람)이나 주위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개기는(?)사람이 오히려 예사롭지 않고 심지어 대단하게 보인다.
예전같으면 그냥 부지런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주위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것을 알기에 그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예전에 나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저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내게 다른 눈이 또 하나 생긴 것이다.
게다가,
사람을 그냥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내 자신도 어느 날은 그럭저럭 봐줄만 하고,
어느날은 참 괜찮은 사람 같더니 어느 날은
진짜 이렇게 어색하고 어리석고 이상한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남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어느날은 그 좋았던 점이 참 오지랖처럼 보여 그 사람이 좀 이상한 사람 귀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사람은 변한게 없을텐데 나 혼자 이랬다 저랬다 좋아했다 싫어했다 난리를 치는 것이다.
남들도 마찬가지다. 나를 좋아했다 싫어했다 난리친다.
"태연한 인생"이라는 책을 사놓고 아직 읽지를 못했다. 제목이 참 맘에 든다.
태연한 인생... 전혀 태연하지 않은데 항상
태연한 척 하고 있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엄청 보통 사람인척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은 하지 말자
결심했지만
사람들만 만나면 바로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는 엄청난 과장된 액션을 취한다는 것이 이제는 내 스스로 느껴진다.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워워 하며 예전보다는 자제하려 한다.
나는 이러 이러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이러 이러하니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이상하다는 기준이 도대체 뭔가.
주위 몇몇 사람과 다르면 나는 이상하다고
결론 짓는다.
그 사람들이 이상한걸지도 모른다.
억지로 웃음 짓는게 힘들다고 느껴질 땐
요즘엔 한템포 쉰다.
억지로 꾸며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진짜로 우러나오는 얘기만 하고 싶을 때가 많다.
감사하지도 않는데 죄송하지도 않는데
잘 보이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게 싫어질 때가 많다.
맨날 웃는다고
또 맨날 웃는게 힘들어서
맨날 무표정 하고 있는다고
행복한 것은 아닐테다.
모든 적당해야 한다.
그저 내가 무엇을 원하는 건지
나를 탐색하는 것은 정말 평생을 걸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평생의 탐구과제 같다.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게 힘들다고 생각하는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그렇지만 이게 사람들의 잘못이 아닌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에 내가 아는 누구 누구가 문제다 라고 얘기 할 수도 없고 문제라면 내가 자꾸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오버액션을 한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내 마음을 따라 살아야
바로 내가 어떻게 된다고 해도
최소 땅을 치고 후회하진 않을 것이다.
마음을 따르고
그 나의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하여 탐구해야 할 것 같다.
나를 탐구하기에도 인생이 짧다.
타인만 신경쓰며 살 시간은 더더욱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