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자기소개, 그리고 10년 전의 나

in #kr7 years ago

스팀잇을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네요. 그동안 블로그에 글을 두 개 썼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수십 개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스팀잇엔 과거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엔 없던 문화가 있더군요. 자기소개입니다. 많은 분들이 자기소개로 스팀잇의 첫 글을 장식하셨습니다. 저도 더 늦기 전에 소개글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오늘, 날 잡았습니다.

그런데 자기소개글을 마지막으로 쓴 게 10여 년 전입니다. 그러니까 입사시험을 준비하며 썼던 자기소개서가 저의 마지막 자기소개글이었습니다. 아마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소개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고 보니 그 시절 내가 나를 어떻게 소개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외장하드를 뒤적여 그때 썼던 자기소개서를 찾아봤습니다. 10여 년이 흘렀고 세상이 변한 만큼 저도 변했겠지만 그때만큼 절박하게 저를 소개했던 때는 없었으니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나와 크게 멀어지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2007년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백수로 지내던 저는 여러 차례 입사시험에서 떨어졌고, 그 때마다 자기소개서를 다시 썼습니다. 회사마다 요구하는 형식과 내용이 다르기도 했고요, 또 뭐든 고치고 다시 쓰면 더 좋아질 거란 믿음이 있기도 했습니다. 2007년 봄에 썼던 자소서엔 이런 내용이 나오더군요.

꿈 많은 회의주의자, 비판적 낙관주의자. 나를 설명할 때 늘 쓰는 말이다. 회의주의자인 이유는 삶의 유한함을 알고 항상 죽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짧고 허무한 삶 가운데서도 절망치 않고 항상 새로운 내일을 꿈꾸기에 난 ‘꿈 많은 회의주의자’다. 낙관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긍정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 없는 낙관주의는 무책임하다고 느끼기에 난 ‘비판적 낙관주의자’로 남길 바란다.

하... 손발이 오글거립니다만, 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무척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인류의 진보를 믿고 기술발전이 가져올 희망적인 미래를 꿈꿉니다. 비록 현실은 똥밭이더라도 더 나은 내일이 올 거란 믿음을 갖는다고 손해 볼 건 없다는 생각이죠. 다음은 2007년 여름에 쓴 자소서입니다.

처음 버스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잡았던 날을 생각한다. 멀게만 보이던 손잡이가 손에 닿았을 때 느낀 성취감. 그 성취는 신체적 성장의 결과일 뿐이었지만 무언가를 움켜쥔다는 짜릿한 기분과 함께 다음 목표를 둘러보게 할 힘을 내게 주었다. 그 이후의 삶은 목적을 차근차근 이루어 가는 과정이었다. 반에서 1등을 하고 미술 대회와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타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인생은 도전과 응전의 반복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잡았던 손잡이를 다시 생각한다. 항상 외부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그 손잡이는 누군가와의 소통과 도움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홀로 있지만 외부를 향해 열려있는 손잡이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며 즐거워할 줄 알고, 함께 가슴아파할 줄 아는 사람의 향기가 난다. 나 역시 누군가가 잡고 의지할 수 있는 소통의 통로로서 손잡이의 삶을 살고 싶다.

이후 10년 동안, 나는 누군가 뻗은 손을 잡아주었을까? 아니면 도전과 응전이라도 반복했나...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 시절 6년 동안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단지 편하고 빨랐기 때문이었다. 요즘 부쩍 자전거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자전거 예찬론자의 말에 따르면 자전거 타기는 백 마디 말 이상의 환경운동이다. 그렇다면 나는 단지 등하교만으로 수년 동안 환경운동을 해 온 것이다. 대학은 너무 멀어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없었지만 지금도 가까운 곳에 갈 때는 자전거를 애용한다. 실천하지 않는 도덕과 윤리는 아무 의미 없다고 믿는다.
오늘날 공적영역에서 물의를 일으키는 모든 행위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 갇혔다. 이젠 법 밖에 있으면서도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사회적으로 권장되어야 하는 것, 곧 지구윤리가 중요한 시대다. 자전거는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송수단이다. 자전거로 지구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이 순진함이 내가 법을 떠나 도덕과 윤리를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전거가 나의 도덕이다.

저의 도덕이었던 자전거는 입사 후 차를 사면서 멀어졌습니다. 자전거로는 왕복 40킬로미터의 출퇴근 거리를 감당할 수 없었죠. 하지만 저는 지금도 가능하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려 합니다. 운전은 흥미로운 일이긴 해도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스팀잇을 보는 게 더 즐겁습니다. 70Kg에 불과한 제 몸뚱이 하나를 옮기겠다고 1톤이 넘는 쇳덩어리를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에너지 낭비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든 지금은 자전거가 지구를 구하는 것보다는 자율주행차가 이 별을 더욱 살기 좋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 편입니다. 아, 그래도 자전거는 좋은 이동수단입니다.

“세 사람이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나는 논어의 이 말씀을 믿는다. 어디서든 배우고자 하는 맘이 간절하다. 대학시절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스승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도 모르게 사로잡혀 있던 편견에서 풀려났다. 나는 나의 ‘다름’도 나의 ‘틀림’도 두렵지 않다. 누구에게나 배우고 성장한다. 유난히 호기심이 많은 내게 세상은 여전히 좋은 스승과의 만남을 허락한다.

그동안 제가 잃은 것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부분인 것 같습니다. 네, 지난 10년 동안 일에 치이며 저는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었습니다. 책도 읽지 못했고 글을 쓰지도 못했습니다.(전혀는 아니고 많이 못했다는 겁니다) 지금은 "세 스티미언이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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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제야 가입인사 쓰신거에요 ? ㄷㄷ

제가 좀 게을러서요 ㅋㅋㅋ

아직 안한 저는 얼마나 게으른건가요 ㅋㅋ

아니..그러면서 이제야 쓰냐고 물으신 겁니까ㅋㅋㅋㅋㅋㅋ

10년 전에 정말 멋진 생각을 하셨네요. 저도 요즘 스팀잇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글을 보니 멋진분이라 생각되어서 팔로우하고갑니다 !

감사합니다. 맞팔합니다. 저도 요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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