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의 리더십 : 리쿠르고스 (8)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리쿠르고스 (8)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와 조선왕조의 흥선 대원군은
극단적인 쇄국정책을 고집했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을 띠었다.
초대 원로원 의원으로는 리쿠르고스를 도와 무혈 쿠데타를 성공시킨 인사들이 지명되었다. 이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자 60세 이상의 남자 가운데 현명한 사람들이 선출되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원로원 의원들은 삶과 죽음, 영예와 치욕 등 중대한 문제를 푸는 일에서 주재자 역할을 했는데, 이 현명함이라는 요소는 암송이나 투창 같은 기술들과는 달리 측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자질이었다.
스파르타에서는 한 인간의 현명함을 대중이 보내는 함성소리의 크기로 쟀다. 원로원 의석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들이 제비뽑기로 결정된 순서대로 대중들 앞을 말없이 지나가면 후보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격리된 공간에 있는 심사위원들이 운집한 군중들로부터 들리는 환호와 박수갈채의 크고 작음을 서판에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스파르타에서는 삶에 뒤지지 않는 중요성이 죽음에 부여되었다. 리쿠르고스가 사망한 원로원 의원의 장례 절차에 관해 세세한 법규를 제정해놓은 이유였다. 그는 스파르타의 제의에 세 가지 혁신적 조치를 취했다.
첫 번째는 성곽 안에 시신의 매장을 허락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미신적 두려움을 일소한 일이다. 이는 스파르타 사람들이 시체를 무서워하지 않게 함으로써 전쟁터에서 더욱더 용맹스럽게 싸우도록 하려는 심모원려가 깔려 있었다.
두 번째는 순장과 과도한 부장품을 금지한 일이다. 그는 고인을 땅에 묻을 때 시신을 덮는 진홍색 겉옷과 올리브 나뭇잎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사자와 같이 매장하지 못하게 했다.
세 번째는 장례기간을 단축시킨 일이다. 리쿠르고스는 공식적 애도기간을 사후 11일이 넘지 못하게끔 했다. 다음날인 12일째에는 데메테르 신에게 제를 올리고 추념의 의식을 멈춰야만 했다.
모든 측면에 세세하게 개입했다는 점에서 리쿠르고스가 이뤄놓은 스파르타는 전형적 전체주의 사회였다. 리쿠르고스는 삶의 필수적 항목들에 대하여 올바른 길을 추천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를 그치게 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질서와 규율을 존중하는 복종적 모범시민들로 가득 찬 이상사회를 만들려 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시민들이 나라 밖으로 나가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낯선 사람들이 스파르타의 땅을 함부로 배회하지 못하도록 철통같은 단속이 실시됐다. 리쿠르고스는 외국인들이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새로운 사고습관과 행동방식은 기존 정치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방의 문물은 전염병 같은 해로운 존재로 간주되었다. 스파르타는 개방을 지향한 아테네와는 판이하게 폐쇄와 고립의 길로 오랫동안 나아가게 됐고, 이 전체주의 사회를 둘러싼 고대의 철의 장막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계기로 해서야 서서히 균열이 가게 된다.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리쿠르고스 (8)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와 조선왕조의 흥선 대원군은
극단적인 쇄국정책을 고집했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을 띠었다.
초대 원로원 의원으로는 리쿠르고스를 도와 무혈 쿠데타를 성공시킨 인사들이 지명되었다. 이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자 60세 이상의 남자 가운데 현명한 사람들이 선출되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원로원 의원들은 삶과 죽음, 영예와 치욕 등 중대한 문제를 푸는 일에서 주재자 역할을 했는데, 이 현명함이라는 요소는 암송이나 투창 같은 기술들과는 달리 측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자질이었다.
스파르타에서는 한 인간의 현명함을 대중이 보내는 함성소리의 크기로 쟀다. 원로원 의석을 놓고 다투는 경쟁자들이 제비뽑기로 결정된 순서대로 대중들 앞을 말없이 지나가면 후보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격리된 공간에 있는 심사위원들이 운집한 군중들로부터 들리는 환호와 박수갈채의 크고 작음을 서판에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스파르타에서는 삶에 뒤지지 않는 중요성이 죽음에 부여되었다. 리쿠르고스가 사망한 원로원 의원의 장례 절차에 관해 세세한 법규를 제정해놓은 이유였다. 그는 스파르타의 제의에 세 가지 혁신적 조치를 취했다.
첫 번째는 성곽 안에 시신의 매장을 허락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미신적 두려움을 일소한 일이다. 이는 스파르타 사람들이 시체를 무서워하지 않게 함으로써 전쟁터에서 더욱더 용맹스럽게 싸우도록 하려는 심모원려가 깔려 있었다.
두 번째는 순장과 과도한 부장품을 금지한 일이다. 그는 고인을 땅에 묻을 때 시신을 덮는 진홍색 겉옷과 올리브 나뭇잎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사자와 같이 매장하지 못하게 했다.
세 번째는 장례기간을 단축시킨 일이다. 리쿠르고스는 공식적 애도기간을 사후 11일이 넘지 못하게끔 했다. 다음날인 12일째에는 데메테르 신에게 제를 올리고 추념의 의식을 멈춰야만 했다.
모든 측면에 세세하게 개입했다는 점에서 리쿠르고스가 이뤄놓은 스파르타는 전형적 전체주의 사회였다. 리쿠르고스는 삶의 필수적 항목들에 대하여 올바른 길을 추천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를 그치게 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질서와 규율을 존중하는 복종적 모범시민들로 가득 찬 이상사회를 만들려 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시민들이 나라 밖으로 나가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낯선 사람들이 스파르타의 땅을 함부로 배회하지 못하도록 철통같은 단속이 실시됐다. 리쿠르고스는 외국인들이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새로운 사고습관과 행동방식은 기존 정치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방의 문물은 전염병 같은 해로운 존재로 간주되었다. 스파르타는 개방을 지향한 아테네와는 판이하게 폐쇄와 고립의 길로 오랫동안 나아가게 됐고, 이 전체주의 사회를 둘러싼 고대의 철의 장막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계기로 해서야 서서히 균열이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