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3)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3)
카밀루스가 활동하던 당시의 로마 공화국에도
IMF 체제 때의 한국 같은 금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궁지에 몰린 카밀루스는 전리품을 신들에게 바치겠다는 약속을 난리통에 그만 잊어버렸다는 군색한 변명을 둘러댐으로써 일단 급한 불을 껐다. 그는 각자의 몫으로 가져간 전리품을 반환할 것을 지시했고, 입이 남산만 하게 튀어나온 병사들은 투덜거리며 반납 장소에 나타났다.
반환을 거부하거나, 전리품을 생활비 용도로 이미 써버린 병사들이 적지 않았던 터라 모인 물건들은 카밀루스가 원래 원로원에 약속한 양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자 여인들이 나서서 로마판 금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몸에 지니고 있던 패물들을 자진해서 내놨다. 원로원은 병사들이 반환한 전리품에 더해 여인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장신구까지 싹싹 긁어모아 이것들을 황금으로 바꾼 다음 화려하게 장식한 군함에 실어 사절단과 함께 델포이로 보냈다. 나라의 체면을 살리는 데 크게 기여한 여인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졌다. 원로원은 그때까지 죽은 남성에게만 허락되던 추모 연설을 고인이 된 여성들을 위해서도 할 수 있도록 투표를 통해 결의했다.
카밀루스에 대한 여론의 악화는 평민 호민관들이 로마시를 둘로 나누는 법안을 다시금 밀어붙일 수 있는 명분과 동력을 제공했다. 그런데 카밀루스에게 예상치 못한 호재가 생겼다. 팔리스키 족과의 전쟁이 그것이었다. 전쟁과 같은 국가 비상사태는 검증된 경륜과 역량의 소유자를 필요로 했고, 이러한 사태 전개는 카밀루스의 숨통을 터주었다.
여성 명의 군사 호민관들 가운데 하나로 선출된 카밀루스는 지체 없이 전선으로 떠났다. 그가 이끄는 군대는 팔레스키 족의 도시인 팔레리이를 이윽고 포위했다. 팔레리이는 함락시키기가 쉽지 않은 도시였다. 그럼에도 카밀루스는 팔레리아 포위전이 장기전이 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로마인들이 전쟁에 힘쓰느라 무책임한 선동가들의 궤변에 당분간은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울 터였기 때문이다. 로마는 외환으로 내우를 다스리는 데 도통한 나라였다.
팔레리이는 성벽이 높고 튼튼할 뿐만 아니라 성내에 비축된 보급품의 양도 풍부했다. 성벽을 지키는 군인들을 제외한 일반 주민들은 평상시의 삶과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해나갔다. 아이들의 교육 또한 마찬가지였다. 팔리스키인들은 그리스를 본떠서 모든 남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명의 교사에게 맡겼는데, 이 교사는 성을 포위한 로마군에게 학생들을 포로로 팔아넘기면 큰돈을 만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교사는 아이들을 성벽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산책을 시켰다. 그는 산보를 나가는 거리를 매일매일 차츰차츰 늘려나가다가 성을 방어하는 수비병들이 일행을 추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아이들을 이끌고 로마군의 전초부대로 투항했다. 못된 선생의 검은 속내를 뒤늦게 알아차린 팔레리이 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학부모들은 먼발치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렸다. 다시는 자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어떤 엄마들은 성벽 위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성으로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만 돌아오고 있지는 않았다. 못된 스승 또한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이 몹쓸 반역자는 옷이 모두 벗겨지고 양손은 등 뒤로 결박당한 비참한 몰골을 하고서 힘겹게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팔레리이의 교사 한 명이 학생들을 유괴해 귀순했다는 소식을 듣자 카밀루스는 비열한 자들의 편의를 봐주면서까지 이기고 싶지는 않다며 교사를 결박시킨 다음 아이들과 함께 돌려보냈다. 그는 제자들을 팔아먹으려고 한 신의 없는 스승을 매질하라면서 심지어 아이들의 손에 몽둥이와 회초리를 쥐어주기까지 했다. 성으로 무사히 돌아온 아이들은 카밀루스를 한입으로 칭송했고, 카밀로스의 정의로움과 대범함에 감동한 팔레리이 주민들은 로마군의 영채로 긴급히 사절단을 보내 무조건 항복할 뜻임을 알렸다. 그들은 로마의 힘이 아니라 덕에 굴복했다며 항전을 포기한 이유를 밝혔다.
카밀루스는 원로원과의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했다가 크게 곤욕을 치른 적이 있는지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본국에 물었다. 원로원으로부터 전권을 위임한다는 훈령이 오자 카밀루스는 로마가 약간의 전쟁 배상금을 받는 조건으로 팔리스키 족 전체와 동맹조약을 체결했다. 카밀루스의 지혜로우면서도 관대한 결정 하나가 수만 명의 대병을 동원해도 해내기 어려웠던 일을 이뤄낸 것이다. 그는 적의 마음을 점령해 적의 영토를 취했다.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팔레리이를 약탈해 한몫 단단히 잡으려던 병사들에게 이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결말이었다. 그들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이게 다 카밀루스 때문이다!”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고, 평민 호민관들은 이번에야말로 로마 분할 법안을 반드시 관철시고야 말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그러나 법안은 투표에서 예상 밖으로 부결되었다. 그러자 법안 부결에 앞장섰던 카밀루스는 로마인들의 공적이 되다시피 했다.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3)
카밀루스가 활동하던 당시의 로마 공화국에도
IMF 체제 때의 한국 같은 금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궁지에 몰린 카밀루스는 전리품을 신들에게 바치겠다는 약속을 난리통에 그만 잊어버렸다는 군색한 변명을 둘러댐으로써 일단 급한 불을 껐다. 그는 각자의 몫으로 가져간 전리품을 반환할 것을 지시했고, 입이 남산만 하게 튀어나온 병사들은 투덜거리며 반납 장소에 나타났다.
반환을 거부하거나, 전리품을 생활비 용도로 이미 써버린 병사들이 적지 않았던 터라 모인 물건들은 카밀루스가 원래 원로원에 약속한 양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자 여인들이 나서서 로마판 금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몸에 지니고 있던 패물들을 자진해서 내놨다. 원로원은 병사들이 반환한 전리품에 더해 여인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장신구까지 싹싹 긁어모아 이것들을 황금으로 바꾼 다음 화려하게 장식한 군함에 실어 사절단과 함께 델포이로 보냈다. 나라의 체면을 살리는 데 크게 기여한 여인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졌다. 원로원은 그때까지 죽은 남성에게만 허락되던 추모 연설을 고인이 된 여성들을 위해서도 할 수 있도록 투표를 통해 결의했다.
카밀루스에 대한 여론의 악화는 평민 호민관들이 로마시를 둘로 나누는 법안을 다시금 밀어붙일 수 있는 명분과 동력을 제공했다. 그런데 카밀루스에게 예상치 못한 호재가 생겼다. 팔리스키 족과의 전쟁이 그것이었다. 전쟁과 같은 국가 비상사태는 검증된 경륜과 역량의 소유자를 필요로 했고, 이러한 사태 전개는 카밀루스의 숨통을 터주었다.
여성 명의 군사 호민관들 가운데 하나로 선출된 카밀루스는 지체 없이 전선으로 떠났다. 그가 이끄는 군대는 팔레스키 족의 도시인 팔레리이를 이윽고 포위했다. 팔레리이는 함락시키기가 쉽지 않은 도시였다. 그럼에도 카밀루스는 팔레리아 포위전이 장기전이 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로마인들이 전쟁에 힘쓰느라 무책임한 선동가들의 궤변에 당분간은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울 터였기 때문이다. 로마는 외환으로 내우를 다스리는 데 도통한 나라였다.
팔레리이는 성벽이 높고 튼튼할 뿐만 아니라 성내에 비축된 보급품의 양도 풍부했다. 성벽을 지키는 군인들을 제외한 일반 주민들은 평상시의 삶과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해나갔다. 아이들의 교육 또한 마찬가지였다. 팔리스키인들은 그리스를 본떠서 모든 남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명의 교사에게 맡겼는데, 이 교사는 성을 포위한 로마군에게 학생들을 포로로 팔아넘기면 큰돈을 만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교사는 아이들을 성벽 밖으로 데리고 나가 산책을 시켰다. 그는 산보를 나가는 거리를 매일매일 차츰차츰 늘려나가다가 성을 방어하는 수비병들이 일행을 추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아이들을 이끌고 로마군의 전초부대로 투항했다. 못된 선생의 검은 속내를 뒤늦게 알아차린 팔레리이 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학부모들은 먼발치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렸다. 다시는 자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어떤 엄마들은 성벽 위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성으로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만 돌아오고 있지는 않았다. 못된 스승 또한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이 몹쓸 반역자는 옷이 모두 벗겨지고 양손은 등 뒤로 결박당한 비참한 몰골을 하고서 힘겹게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팔레리이의 교사 한 명이 학생들을 유괴해 귀순했다는 소식을 듣자 카밀루스는 비열한 자들의 편의를 봐주면서까지 이기고 싶지는 않다며 교사를 결박시킨 다음 아이들과 함께 돌려보냈다. 그는 제자들을 팔아먹으려고 한 신의 없는 스승을 매질하라면서 심지어 아이들의 손에 몽둥이와 회초리를 쥐어주기까지 했다. 성으로 무사히 돌아온 아이들은 카밀루스를 한입으로 칭송했고, 카밀로스의 정의로움과 대범함에 감동한 팔레리이 주민들은 로마군의 영채로 긴급히 사절단을 보내 무조건 항복할 뜻임을 알렸다. 그들은 로마의 힘이 아니라 덕에 굴복했다며 항전을 포기한 이유를 밝혔다.
카밀루스는 원로원과의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했다가 크게 곤욕을 치른 적이 있는지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본국에 물었다. 원로원으로부터 전권을 위임한다는 훈령이 오자 카밀루스는 로마가 약간의 전쟁 배상금을 받는 조건으로 팔리스키 족 전체와 동맹조약을 체결했다. 카밀루스의 지혜로우면서도 관대한 결정 하나가 수만 명의 대병을 동원해도 해내기 어려웠던 일을 이뤄낸 것이다. 그는 적의 마음을 점령해 적의 영토를 취했다.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팔레리이를 약탈해 한몫 단단히 잡으려던 병사들에게 이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결말이었다. 그들 입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이게 다 카밀루스 때문이다!”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고, 평민 호민관들은 이번에야말로 로마 분할 법안을 반드시 관철시고야 말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그러나 법안은 투표에서 예상 밖으로 부결되었다. 그러자 법안 부결에 앞장섰던 카밀루스는 로마인들의 공적이 되다시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