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카이사르 (4)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카이사르 (4)
카이사르는 마누라를 버릴 순 있어도 민심을 버릴 수는 없다고 믿었다.
키케로의 우려가 괜한 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며칠 후 카이사르가 원로원 회의장에서 반대파들의 십자포화를 맞아 고전중이라는 소식이 거리로 퍼지자 수많은 시민들이 원로원 건물 주위를 구름처럼 에워싸고는 카이사르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효과적인 민심수습책이 너무 늦지 않게 나와야만 했다. 카토는 원로원들 설득해 한 달 치 분량의 곡물을 민중에게 공짜로 나눠주게 했다. 이 무상배급 조치를 시행하는 데 1년에 750만 탈란톤의 비용이 들었다. 예산은 팽창했지만, 원로원 안에 팽배해 있던 불안감은 비록 잠시 동안이나마 사그라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키케로는 민중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서는 카이사르의 적수가 도저히 될 수 없었다. 카이사르가 얼마나 대중영합적 인물이었는지는 그가 법무관으로 재임하던 시절 발생한 클로디우스 사건이 잘 보여준다.
클로디우스는 당대의 대표적 불한당이었다. 허나 얼굴에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이 나이어린 불한당은 돈도 많았던 데다 더욱이 달변에 미남이기까지 했다. 문제는 하필이면 카이사르의 아내 폼페이아와 이 천하의 날건달이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서로 잠시도 못 보면 발병이라도 나는 사이었는지 카이사르의 집에까지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쳐들어왔다. 여인들끼리만 집안에 모여 치르는 보나 여신을 기리는 축제가 그에게는 주인 없는 생선가게로 여겨진 까닭에서였다.
외모는 여자처럼 바꿀 수 있었지만 변성기를 지난 청년의 목소리는 감출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 아우렐리아의 시녀에게 정체가 들킨 클로디우스는 당장 문 밖으로 쫓겨났고, 여인들은 심야의 불청객 때문에 빚어진 소동의 전말을 남편과 아버지, 형제들과 아들들에게 소상히 알렸다. 즉시 민중 호민관이 클로디우스를 불경죄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클로디우스는 무죄판결을 받고 당당히 걸어 나왔다. 민중이 한데 뭉쳐 그를 옹호하자 겁을 집어먹은 배심원들이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판결문을 작성한 덕분이었다.
그런데 클로디우스의 무죄방면보다도 더 황당했던 건 피해자라고 불러야 마땅할 카이사르의 반응이었다. 그는 클로디우스와 폼페이아 간에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없었는데 왜 아내와 이혼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카이사르의 아내는 의심조차도 사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태연히 답했다. 그는 아내는 버릴 수 있어도, 민심을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나름 투철한 직업의식을 소유한 정치인이었다.
-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카이사르 (4)
카이사르는 마누라를 버릴 순 있어도 민심을 버릴 수는 없다고 믿었다.
키케로의 우려가 괜한 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며칠 후 카이사르가 원로원 회의장에서 반대파들의 십자포화를 맞아 고전중이라는 소식이 거리로 퍼지자 수많은 시민들이 원로원 건물 주위를 구름처럼 에워싸고는 카이사르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효과적인 민심수습책이 너무 늦지 않게 나와야만 했다. 카토는 원로원들 설득해 한 달 치 분량의 곡물을 민중에게 공짜로 나눠주게 했다. 이 무상배급 조치를 시행하는 데 1년에 750만 탈란톤의 비용이 들었다. 예산은 팽창했지만, 원로원 안에 팽배해 있던 불안감은 비록 잠시 동안이나마 사그라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키케로는 민중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서는 카이사르의 적수가 도저히 될 수 없었다. 카이사르가 얼마나 대중영합적 인물이었는지는 그가 법무관으로 재임하던 시절 발생한 클로디우스 사건이 잘 보여준다.
클로디우스는 당대의 대표적 불한당이었다. 허나 얼굴에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이 나이어린 불한당은 돈도 많았던 데다 더욱이 달변에 미남이기까지 했다. 문제는 하필이면 카이사르의 아내 폼페이아와 이 천하의 날건달이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서로 잠시도 못 보면 발병이라도 나는 사이었는지 카이사르의 집에까지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쳐들어왔다. 여인들끼리만 집안에 모여 치르는 보나 여신을 기리는 축제가 그에게는 주인 없는 생선가게로 여겨진 까닭에서였다.
외모는 여자처럼 바꿀 수 있었지만 변성기를 지난 청년의 목소리는 감출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 아우렐리아의 시녀에게 정체가 들킨 클로디우스는 당장 문 밖으로 쫓겨났고, 여인들은 심야의 불청객 때문에 빚어진 소동의 전말을 남편과 아버지, 형제들과 아들들에게 소상히 알렸다. 즉시 민중 호민관이 클로디우스를 불경죄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클로디우스는 무죄판결을 받고 당당히 걸어 나왔다. 민중이 한데 뭉쳐 그를 옹호하자 겁을 집어먹은 배심원들이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판결문을 작성한 덕분이었다.
그런데 클로디우스의 무죄방면보다도 더 황당했던 건 피해자라고 불러야 마땅할 카이사르의 반응이었다. 그는 클로디우스와 폼페이아 간에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없었는데 왜 아내와 이혼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카이사르의 아내는 의심조차도 사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태연히 답했다. 그는 아내는 버릴 수 있어도, 민심을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나름 투철한 직업의식을 소유한 정치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