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페리클레스 (5)

in #kr6 years ago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인내와 믿음의 리더십 : 페리클레스 (5)


페리클레스는 그람시가 제창한 헤게모니 개념에 입각해
당대 서양의 패권국가였던 아테네를 전일적으로 지배했다.

우리 시대에도 아크로폴리스에 의연히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으로 대표되는 아테네의 공공건축에는 석재, 청동, 상아, 황금, 흑단, 편백나무 등의 수많은 자재가 투입되었다. 이것들을 옮기고 자르고 다듬고 꾸미는 데에는 재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직종의 기술자들이 요구됐다. 전문적 기술이 없는 자들도 쓸모는 있었다. 그들은 장인들이 불편함 없이 입고, 먹고, 잘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에 종사했다.

완성된 건축물들은 거대한 규모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련된 외관을 자랑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빠른 건설 속도에 있었다. 포클레인과 타워크레인 같은 현대적 중장비는 오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대였다. 그럼에도 페리클레스는 몇 세대나 걸릴 수도 있었을 공기를 자신의 집권기, 그것도 전성기 안으로 단축시켰다.

비교적 단기간에 완공된 건축물들이었지만 건물들은 한결같이 고풍스러웠다. 그렇다고 낡고 칙칙해 보인 것은 아니었다. 신축 건물 특유의 활력과 신선함으로 가득했다. 이 모든 건설 프로젝트를 실제로 현장에서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사람은 페이디아스였다. 그는 아테네에서 페이라이에우스 항구로 이어지는 장성의 건설작업도 지휘‧감독했다. 하지만 페리클레스 치세에 이뤄진 공공건축의 백미라고 할 파르테논 신전의 건설을 책임진 건축가는 칼리크라테스와 익티노스였다.

대규모 공공사업은 반대파의 비판거리가 되기 마련이다. 투키디데스 일파는 페리클레스가 건설 프로젝트에 쓸데없이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리클레스는 민회에서 지출의 적정성 여부를 민중에게 묻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들이 생각하기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공공건축 사업에 들어가고 있다면 사재를 출연해 일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단, 건축물들의 헌정비에 페리클레스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조건에서였다.

사람들은 페리클레스가 예산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대답함으로써 그를 재신임했다. 얼마 후 페리클레스는 투키디데스를 도편추방하는 것으로 정적에게 확실히 복수했다. 당파의 영수가 추방되면서 구심점을 상실한 귀족파는 곧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귀족파의 해체로 아테네에는 페리클레스에게 도전할 만한 반대세력이 더는 남지 않게 되었다. 페리클레스는 경제와 외교, 그리고 군사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대한 전일적 지배체제를 확립했다. 그리스가 지중해의 패권을 쥐었다면, 아테네는 그리스의 패권을 쥐었고, 페리클레스는 그 아테네의 패권을 쥐었다.

완전한 권력을 손에 넣은 페리클레스는 종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띠었다. 그는 민심에 무조건 순종하던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왕들이 흔히 보여주는 고압적이고 권위적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전제군주들과의 결정적 차이점은 그가 강제력에 의지하기보다는 설득과 교육을 통해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는 사실에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20세기 초반의 사회주의 사상가 그람시가 말했던 헤게모니, 환언하자면 동의에 기반한 강력한 권력을 효과적으로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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