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2)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2)
카밀루스는 조국을 위한 일이라면
어설픈 몸개그마저 사양하지 않았다.
베이이와의 전쟁이 10년째에 접어들자 원로원은 카밀루스를 독재관으로 지명하는 초강수를 띄웠다. 카밀루스는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를 기병대장으로 발탁한 다음 원로원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겠다는 표시로 전쟁에서 이기면 신들을 기리는 경기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신전까지 지어 봉헌하겠다고 엄숙히 맹세했다. 그는 팔리스키 족과 카페나 사람들을 차례로 무찔러 기세를 높인 후 베이이에 대한 포위공격을 재개했다. 그는 도시를 직접 공격하는 방식으로는 베이이를 함락시키기 어렵다는 계산 아래 성벽 밑을 관통하는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적진 한가운데로 이르는 땅굴이 드디어 완성되자 카밀루스는 수비병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에서 성벽을 향해 요란한 공격을 개시했다. 그 사이에 로마군의 주력은 땅굴을 이용해 베이이 안에 있는 유노 여신의 신전으로 향했다.
일설에 의하면 때마침 신관이 제를 마치는 사람에게 승리가 주어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으므로 신전 바닥에서 비호같이 튀어나온 로마군 병사들이 신에게 바쳐질 짐승의 내장을 카밀루스에게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짐승의 내장 모양과 색깔을 보며 점을 치는 일이 제의의 마지막 순서였기 때문이다.
베이이는 로마의 파상공세를 10년 동안이나 버텨낸 저력 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도시의 그 누구도 로마인들이 땅굴을 통해 잠입하리라고는 전연 예상하지 못했다. 허를 찔린 베이이는 순식간에 점령되었고 다음 차례는 로마인들을 위한 축제의 시간, 곧 약탈의 시간이었다.
비록 적이기는 했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온 베이이가 허망하게 몰락하는 광경을 목격한 카밀루스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만약 로마인들이 이번에 누린 과도한 행운에 대한 대가를 나중에 지불해야만 한다면 자신이 동료 로마인들을 대신해 모든 죗값을 치르겠노라고 비탄에 가득한 목소리로 신에게 용서를 구했다.
기도를 마치자 로마의 풍습대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던 카밀루스는 실수로 발을 헛디뎌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지체 없이 일어나 자세를 고쳐 잡고는 “신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셨다. 살짝 넘어지는 것으로 우리가 누린 행운에 대한 값을 치르다니”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쩌면 카밀루스는 로마인들에게 승리에 도취해 자만하지 말 것을 경고하려는 뜻에서 일종의 몸개그를 의도적으로 연출했는지도 모른다.
승리에 도취해 무리수를 둔 건 오히려 카밀루스였다. 그는 너무나 우쭐해진 나머지 지나치게 화려한 개선식을 로마 시내에서 벌였다가 시민들의 빈축을 샀다. 그는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승리를 자축했는데 이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일이었다. 네 마리의 백마가 끄는 전차를 모는 것은 오직 신들에게만 허락된 호사로 여겨진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사치와 낭비는 로마인들에게는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로마인들이 그에게 불만을 품게 된 또 다른 원인이 있었느니 그건 카밀루스가 로마의 분할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평민 호민관들은 제비뽑기를 통해 시민과 원로원 모두를 각각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로마에 머물게 하고, 나머지 절반은 새롭게 점령한 도시로 이주시키는 법을 제안해놓은 터였다. 그러면 영토는 두 배로 넓어지면서, 삶의 질은 두 배로 나아질 것이라는 점이 법안 제안의 취지였다. 이 법안은 비좁은 주거환경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던 민중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대다수의 원로원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카밀루스 또한 이러한 발상을 옳지 않다고 보았다. 카밀루스는 도시의 인위적 분할은 당장의 편리만을 근시안적으로 염두에 두었을 뿐, 궁극적으로는 로마를 두 개로 분열시켜 나라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 분명한 대중영합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법안의 통과를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며 차일피일 미뤘고, 민중은 카밀루스를 인민의 정당한 권익을 침해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간주했다.
하지만 대중이 그를 싫어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역시나 물질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카밀루스는 베이이를 점령하면 전리품의 10분의 1을 델포이 신전에 봉헌하겠다고 서약했다. 하지만 베이이를 막상 차지하게 되자 병사들이 전리품을 전부 갖도록 눈감아주었다. 오랜 싸움에 다치고 지친 장병들의 노고를 아마도 위로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자고이래로 후방에서 입으로 전쟁을 하는 자들은 전방에서 몸으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좀처럼 헤아려주지 않는 법이다. 원로원은 카밀루스가 약속을 파기했다고 비난하면서 병사들이 가져간 전리품을 국고로 귀속시키라고 명령했다. 병사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평민들이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서도 싸웠지만, 가족을 위해서도 열심히 싸웠다. 윗선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된 전리품 환수 조치는 병사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카밀루스 (2)
카밀루스는 조국을 위한 일이라면
어설픈 몸개그마저 사양하지 않았다.
베이이와의 전쟁이 10년째에 접어들자 원로원은 카밀루스를 독재관으로 지명하는 초강수를 띄웠다. 카밀루스는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를 기병대장으로 발탁한 다음 원로원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겠다는 표시로 전쟁에서 이기면 신들을 기리는 경기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신전까지 지어 봉헌하겠다고 엄숙히 맹세했다. 그는 팔리스키 족과 카페나 사람들을 차례로 무찔러 기세를 높인 후 베이이에 대한 포위공격을 재개했다. 그는 도시를 직접 공격하는 방식으로는 베이이를 함락시키기 어렵다는 계산 아래 성벽 밑을 관통하는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적진 한가운데로 이르는 땅굴이 드디어 완성되자 카밀루스는 수비병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에서 성벽을 향해 요란한 공격을 개시했다. 그 사이에 로마군의 주력은 땅굴을 이용해 베이이 안에 있는 유노 여신의 신전으로 향했다.
일설에 의하면 때마침 신관이 제를 마치는 사람에게 승리가 주어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으므로 신전 바닥에서 비호같이 튀어나온 로마군 병사들이 신에게 바쳐질 짐승의 내장을 카밀루스에게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짐승의 내장 모양과 색깔을 보며 점을 치는 일이 제의의 마지막 순서였기 때문이다.
베이이는 로마의 파상공세를 10년 동안이나 버텨낸 저력 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도시의 그 누구도 로마인들이 땅굴을 통해 잠입하리라고는 전연 예상하지 못했다. 허를 찔린 베이이는 순식간에 점령되었고 다음 차례는 로마인들을 위한 축제의 시간, 곧 약탈의 시간이었다.
비록 적이기는 했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온 베이이가 허망하게 몰락하는 광경을 목격한 카밀루스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만약 로마인들이 이번에 누린 과도한 행운에 대한 대가를 나중에 지불해야만 한다면 자신이 동료 로마인들을 대신해 모든 죗값을 치르겠노라고 비탄에 가득한 목소리로 신에게 용서를 구했다.
기도를 마치자 로마의 풍습대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던 카밀루스는 실수로 발을 헛디뎌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지체 없이 일어나 자세를 고쳐 잡고는 “신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셨다. 살짝 넘어지는 것으로 우리가 누린 행운에 대한 값을 치르다니”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쩌면 카밀루스는 로마인들에게 승리에 도취해 자만하지 말 것을 경고하려는 뜻에서 일종의 몸개그를 의도적으로 연출했는지도 모른다.
승리에 도취해 무리수를 둔 건 오히려 카밀루스였다. 그는 너무나 우쭐해진 나머지 지나치게 화려한 개선식을 로마 시내에서 벌였다가 시민들의 빈축을 샀다. 그는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전차를 타고 승리를 자축했는데 이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일이었다. 네 마리의 백마가 끄는 전차를 모는 것은 오직 신들에게만 허락된 호사로 여겨진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사치와 낭비는 로마인들에게는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로마인들이 그에게 불만을 품게 된 또 다른 원인이 있었느니 그건 카밀루스가 로마의 분할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평민 호민관들은 제비뽑기를 통해 시민과 원로원 모두를 각각 반으로 나누어 절반은 로마에 머물게 하고, 나머지 절반은 새롭게 점령한 도시로 이주시키는 법을 제안해놓은 터였다. 그러면 영토는 두 배로 넓어지면서, 삶의 질은 두 배로 나아질 것이라는 점이 법안 제안의 취지였다. 이 법안은 비좁은 주거환경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던 민중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대다수의 원로원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카밀루스 또한 이러한 발상을 옳지 않다고 보았다. 카밀루스는 도시의 인위적 분할은 당장의 편리만을 근시안적으로 염두에 두었을 뿐, 궁극적으로는 로마를 두 개로 분열시켜 나라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 분명한 대중영합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법안의 통과를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며 차일피일 미뤘고, 민중은 카밀루스를 인민의 정당한 권익을 침해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간주했다.
하지만 대중이 그를 싫어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역시나 물질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카밀루스는 베이이를 점령하면 전리품의 10분의 1을 델포이 신전에 봉헌하겠다고 서약했다. 하지만 베이이를 막상 차지하게 되자 병사들이 전리품을 전부 갖도록 눈감아주었다. 오랜 싸움에 다치고 지친 장병들의 노고를 아마도 위로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자고이래로 후방에서 입으로 전쟁을 하는 자들은 전방에서 몸으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좀처럼 헤아려주지 않는 법이다. 원로원은 카밀루스가 약속을 파기했다고 비난하면서 병사들이 가져간 전리품을 국고로 귀속시키라고 명령했다. 병사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평민들이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서도 싸웠지만, 가족을 위해서도 열심히 싸웠다. 윗선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된 전리품 환수 조치는 병사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