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알렉산드로스 (18)
□ 이기는 리더, 승리하는 리더십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알렉산드로스 (18)
알렉산드로스의 거침없는 질주는 갠지스 강가에서 정지신호를 만난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알렉산드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해온 동지 둘을 인디아 원정 중에 잃었다. 하나는 애마 부케팔라스였다. 부케팔라스는 벌써 30년을 넘게 살아오고 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고령의 노인이었다.
부케팔라스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는 사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전연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는 왕과 같이 전장을 누비며 한 시대를 풍미한 명마를 기리려는 뜻에서 휘다스페스 강변에 애마의 이름을 딴 부케팔리아라는 도시를 세웠다.
애마가 죽었다는 비보에 뒤이어 애견이 숨을 거뒀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그가 몸소 키우고 아꼈던 개 페리타스가 죽었을 때도 개의 이름을 딴 도시를 건설하는 것으로 상실감을 달랬다.
딱 여기까지였다. 마케도니아 장병들의 불퇴전의 의지와 대담한 정복욕은 포로스와의 싸움을 계기로 완전히 방전되었다. 생각해보면 강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까지 전진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포로스는 이제껏 싸워온 모든 적들 중에서도 제일 적은 병력을 가진 축에 속했다. 보병 2만에 기병 2만이 전부였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상대했던 역대 어느 적들과 비교해 이보다 적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의 어느 적들보다도 죽기 살기로 싸워 마케도니아 병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바다처럼 넓고 깊은 갠지스강 건너편에는 이렇게 사즉생의 각오로 싸우는 적군이 보병만 무려 20만 명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8만의 기병과 8천 대의 전차와 6천 마리의 전투용 코끼리가 이들 20만 대군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갠지스강을 건너기를 고집했지만 병사들의 격렬한 반대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왕은 막사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는 식으로 병사들에 대한 불쾌감과 서운함을 표시했다. 그는 갠지스강을 건너지 못하면 기왕에 이뤄놓은 업적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전진을 멈추는 것은 곧 패배를 뜻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그를 위로하고, 병사들이 군막 앞에서 울고불고하며 아우성을 쳤으므로 알렉산드로스는 마지못해 막사 밖으로 나왔다.
알렉산드로스는 전형적인 폼생폼사의 인간이었다. 그는 진영을 철수한 일로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미지 관리를 위한 방편으로 진을 쳤던 장소에 엄청나게 큰 갑옷과 재갈과 말구유 따위를 일부러 만들어 남김으로써 마케도니아군의 위용과 강력함을 인도인들에게 과시했다.
도전과 변화의 리더십 : 알렉산드로스 (18)
알렉산드로스의 거침없는 질주는 갠지스 강가에서 정지신호를 만난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알렉산드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해온 동지 둘을 인디아 원정 중에 잃었다. 하나는 애마 부케팔라스였다. 부케팔라스는 벌써 30년을 넘게 살아오고 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고령의 노인이었다.
부케팔라스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는 사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전연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는 왕과 같이 전장을 누비며 한 시대를 풍미한 명마를 기리려는 뜻에서 휘다스페스 강변에 애마의 이름을 딴 부케팔리아라는 도시를 세웠다.
애마가 죽었다는 비보에 뒤이어 애견이 숨을 거뒀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그가 몸소 키우고 아꼈던 개 페리타스가 죽었을 때도 개의 이름을 딴 도시를 건설하는 것으로 상실감을 달랬다.
딱 여기까지였다. 마케도니아 장병들의 불퇴전의 의지와 대담한 정복욕은 포로스와의 싸움을 계기로 완전히 방전되었다. 생각해보면 강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까지 전진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포로스는 이제껏 싸워온 모든 적들 중에서도 제일 적은 병력을 가진 축에 속했다. 보병 2만에 기병 2만이 전부였다.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상대했던 역대 어느 적들과 비교해 이보다 적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의 어느 적들보다도 죽기 살기로 싸워 마케도니아 병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바다처럼 넓고 깊은 갠지스강 건너편에는 이렇게 사즉생의 각오로 싸우는 적군이 보병만 무려 20만 명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8만의 기병과 8천 대의 전차와 6천 마리의 전투용 코끼리가 이들 20만 대군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갠지스강을 건너기를 고집했지만 병사들의 격렬한 반대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왕은 막사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는 식으로 병사들에 대한 불쾌감과 서운함을 표시했다. 그는 갠지스강을 건너지 못하면 기왕에 이뤄놓은 업적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전진을 멈추는 것은 곧 패배를 뜻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그를 위로하고, 병사들이 군막 앞에서 울고불고하며 아우성을 쳤으므로 알렉산드로스는 마지못해 막사 밖으로 나왔다.
알렉산드로스는 전형적인 폼생폼사의 인간이었다. 그는 진영을 철수한 일로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미지 관리를 위한 방편으로 진을 쳤던 장소에 엄청나게 큰 갑옷과 재갈과 말구유 따위를 일부러 만들어 남김으로써 마케도니아군의 위용과 강력함을 인도인들에게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