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스뿜바 잠실 모임

in #kr7 years ago

저번 주에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이번 주는 중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이런 기세라면 다음 주엔 초등학교 동창들을, 몇 년 후에는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는 것 아닐까 기대가 됩니다.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다들 각자의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합니다. 이번 모임에선 몇 년 만에 보는 ‘문어’도 같이 보기로 했습니다. 성이 ‘문’씨라 별명이 문어인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중년이 되어서 점점 대머리가 된다면 어울릴만한 별명입니다만 예나 지금이나 제가 보기엔 인상 좋은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습니다.

저 멀리 미아에 사는 양갱도 왔습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이 친구는 ‘양’씨입니다. 요즘은 신혼 초라 알콩달콩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9시가 되기 전부터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소리를 하는걸 보면 주도권은 역시나 아내에게 있는 모양입니다. 모든 남편들이 그렇듯 결혼하고 많이 연해졌습니다. 연양갱이 된 듯 합니다.

마지막 친구는 이천에서 야근도 내일로 미루고 달려왔습니다. 오늘이 약속 날이지만 내일 만나면 되는데.. 별명만큼이나 성숙한 사람입니다. 무뚝뚝하지만 잘 챙겨주는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스타일입니다. 처음 짝꿍이 되어서 이 친구가 비틀즈 하나를 쓱 내밀었을 때 ‘이거 먹으라는 건가? 안 먹으면 해코지 당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잠시 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은 소년이었지만 얼굴은 이미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20대 후반인 지금은 제 나이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라 오히려 본명으로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어쩌다 제가 식사 장소를 정하게 되어서 몇 달 전에 맛있게 먹었던 오늘한밥이라는 식당에 갔습니다. 여러 덮밥 종류를 파는 곳인데 양도 맛도 괜찮은 곳입니다. 석촌 호수 바로 옆에 있고 인테리어도 깔끔해서 그런지 온통 연인들뿐이었습니다. 남정네 넷이 들어가기에 아주 조금 민망했지만 반평생을 함께 묵혀온 추억을 공유한 사이라고 자위하며 빠르게 먹고 후다닥 나왔습니다. 원래는 바로 옆에 ‘u dally’라는 카페를 갈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카페 디자인을 본 양갱이 “여긴 우리 넷이 갈 곳이 아니다.”라며 강력히 주장해서 결국 석촌 호수를 끼고 걸어가 설빙을 먹었습니다. 가면서 두 번의 신호를 받고 기다렸는데 무척이나 길었습니다.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설빙에 가서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간 설빙에서 좌절을 맛 봐야만 했습니다. 더운 여름 날 모두가 설빙으로 모이리라 생각 못했던 교만한 모습에 눈물이 찔끔 날 뻔 했습니다. 오다가 지나친 아무 카페나 들어갈까 하던 찰나에 손자와 함께 온 할머니께서 자리를 양보해주셨습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워 보이던지요. 손자는 아직 어려서 낙화의 정신을 잘 몰랐나 봅니다. 가면서 자신이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시원하게 물 한 컵 쏟으시고 가셨습니다. 덕분에 더 시원하게 빙수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설빙의 스테디셀러 인절미빙수만 먹을 줄 알았지 다른 빙수에게는 눈길도 안 주던 차가운 남자였지만 청포도같이 고운 자태의 메론 빙수에 마음을 빼앗겨버렸습니다. 과연 그녀는 아무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느 빙수와 달리 철옹성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단단히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던가요. 열 번의 칼질에 마침내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첫 사랑에 실패하기 전에 메론 빙수를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언제 봐도 좋은 친구들과의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살아온 이야기들을 세 시간 안에 풀어내기는 짧았지만 오늘 만남에서 나눴던 이야기들은 제 삶에 긴 여운을 남길 것 같습니다. 모두들 지금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면 “밥 한 끼 하는 건 어때?”라고 연락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편하기 때문에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우리의 모든 벗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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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냉면처럼 술술들어가는 글이네요! 재밌게 잘 보고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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