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in #kr4 years ago

친구인 A가 골프 모임에 나갔다가 홀인원을 했다고 합니다. 모임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들어 환호하고 축하 세례를 하는 와중에 딱 한 분만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고 하네요. 자세히 보니 울고 있었다는군요. 저는 자초지종을 물었죠.
"울어? 왜? 너의 홀인원에 감격해서?"
"아니, 분해서."
"분해서 울어? 무슨 LPGA 시합 나갔어?"
"그 친구가 평소에도 질투가 많아."
유치원생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녀들도 다 키운 50대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질투가 났으면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분(B)이 평소 A를 자주 견제하는데 예컨대 이런 식이랍니다.
C: "아유, 요즘 갱년기라 그런지 자꾸 배가 나와."
B: "언니, 괜찮아, 그래도 언니 배는 A보다는 안 나왔어."
이런 유치원적 심리구조가 중장년층에서 발견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이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저는 샘 멘데스의 영화 '레벌루셔너리 로드'(2008)가 떠오르더군요.
1.jpg
그 영화에서 주인공 부부(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케이트 윈슬렛)는 파리로 이주할 계획에 한껏 부풀어 있습니다. 바로 옆집의 식사 초대를 받아 참석한 길에 파리 이주 계획을 설명하죠. 이웃집 부인은 파리로 이사가는 게 꽤나 위험한 계획일지도 모르니 신중하라는 말을 되풀이 합니다.
다음 장면은 주인공 부부가 돌아간 뒤 침실에 앉아 있는 이웃집 부부입니다. 부인은 울고 있습니다. 남편이 왜 우냐고 묻죠. "몰라요.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요."
이 여자의 심리는 질투일까요? 동경일까요. 여하튼 그녀는 이웃집 부부의 파리행이 무척 부러웠던 것인데, 왜 "부럽다"는 표현 대신 "위험하다"는 식의 얘기를 한 걸까요?
요즘 많이들 얘기하는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겠죠.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채택하고 잘 풀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존감이 낮을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낮은 자존감 때문에 질투의 언행을 일삼는 것이죠.
한국 사회에서 질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성숙한 인간 관계의 미덕이 아니기에 앞서 사례로 든 B와 같은 분은 흔치 않을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타인을 깎아내리는 대신 자신을 높이는 방식, 쉽게 말해 자랑질은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자랑질에 "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라고 생각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속으로는 "븅신 지랄하네"라고 욕을 해대고 있겠죠. 인정 받기는 인간의 보편적 욕구이지만, 그건 타인에게 강제로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해주면 감사히 받는 것입니다.
요즘 펍에서 꽤 자주 보는 한 중년 남성은 남자와 여자에게 대하는 태도가 천양지차입니다. 여자에게는 자랑질을 일삼고 남자의 말은 깎아내립니다. 여자를 성적 대상화한 가운데 주변 남자들을 잠재적 적으로 여기나 봅니다. 최악입니다. 옷은 참 댄디하게 입지만 행동은 딱 발정난 수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서 어떤 의도성을 읽기는 힘듭니다. 인성입니다. 인성이 그렇게 형성되어 버리면 자신의 행동이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그러니 어쩌다 저 지경이 되었을까 측은할 따름입니다. 역시나 자존감이 낮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면, 그게 바로 공해이고 민폐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짖어댑니다. "날 좀 봐줘!" 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가급적 말을 섞으려고 하지 않으니 더 외로워 집니다. 치유책은 공부와 성찰 밖에 없습니다.

Sort: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default.jpg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3
JST 0.077
BTC 62042.63
ETH 1628.63
USDT 1.00
SBD 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