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기.

in #kr6 years ago (edited)

한국에 있을 때는 서점에 자주 갔다.
세상이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 살펴보기에는 서점만 한 곳이 또 없으니까. 습관처럼 받아들이는 휘발성의 뉴스나 데이터 쪼가리보다도 서점에 진열된 신간은 오랜 시간의 경험과 연구가 축적된 것이기에 그 울림이 더 크다고 본다. 따라서 서점 특유의 종이 냄새 안에 머물며 진지하게 책의 목차를 살피다 흥미가 생기면 일단 산다. 책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게, 일단 사두면 언젠가는 읽는다. 사두면 반드시 읽게 된다는 것을 삼십여 년간 체득하면서 책을 구입할 때 액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가끔 나중에 이렇게 비쌌었나 놀라고는 하지만, 놀랍기만 할 뿐 아깝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블록체인, 혁명일까.

내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은 책 한 권에서 비롯되었다. 돈 탭스콧의 블록체인 혁명이었는데, 이 책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서점에 들렀다 쓸어온 책 중 한 권이었다. 그때가 2017년 2월이었으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 책을 처음으로 집어 들었더라면 아마도 큰돈을 만졌을 것이다.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책은 그 해 말에나 읽게 되었고, 여전히 탄식을 하는 중이다. 제일 먼저 읽을걸.

돈 탭스콧의 서적에서 가장 공감을 했던 부분은 블록체인 기술도 아니오, 여러 암호화폐의 특징도 아니고, 이들의 비전도 아니었다. 가장 크게 고개를 끄덕였던 부분은 우리가 생산하는 데이터를 우리의 수중에서 관리하여 적정한 가치를 정당하게 누리자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세상이 올 것이니, 본인만의 콘텐츠를 지금부터라도 생산하여 관리하라는 조언에서 종종 아이디어를 찾아 골몰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생산할 수 있는 데이터, 더 나아가 contents 는 뭐가 있을까.

나는 성향이 그렇다. 궁금하면 일단 경험해보려 한다.
호기심이 생기니 살면서 전혀 시도를 해보지 않았던 나만의 콘텐츠를 평가받아보기 시작했다. 그저 눈앞에 놓인 시간이 소중해 렌즈에 담아왔던 사진들을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몇몇 사진이 게티이미지에 등록이 됐다. 사진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고 Large size $499 의 가격이 붙어 있는 것을 보자니 뿌듯했다. 물론 아직까지 단 한 장도 팔리지는 않았지만, 내 콘텐츠에 가치가 측정되어 있는 것이 신기했다. 바야흐로 콘텐츠를 축적 하라. 는 돈 탭스콧의 조언은 이 신기함과 뒤섞여 내게 더욱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콘텐츠 그리고 축적.

SNS 에는 관심 없이 살아왔었는데, 콘텐츠 그리고 축적이라는 두 단어에 골몰하다 스팀잇을 알게 됐다. 생각에도 가치가 부여되기 시작했음을 목도하자 흥분했다. 읽는 즐거움을 정해진 가격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치를 부여하고 내가 가치의 정도를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꼈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의 판단에 종속된 가치를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결정한다. 멋진 세상이 지척에 있으니, 다가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만들어라. 더 이상 종속적이지 않고 수동적이지 않음에 반가운 우리인데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당시 스팀잇 글에는 제각각 형태나 주제는 다르지만 우리가 만들어 나가면 된다는 자부심과 포부가 가득 차 있었다. 갓 뉴비로 들어와서 구경했던 여러 싸움들 속에서도 여긴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구역이야라는 데는 암묵적 동의가 분명히 있었다. 사람이 그렇다.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기에 날 선 글이 오가는 중에서도 개척정신으로 충만한 자부심과 포부는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콘텐츠를 쌓아나가면 분명 만족할만한 대가가 따르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남들이 다루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찾아봤고, 나름 틈새를 찾아 묵묵히 쌓아가는 중이다. 흩어져 있으면 의미 없으나 모이고 쌓이면 힘이 생긴다는 신념에 따라 그저 쌓아가는 중이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둘씩 외부 유입이 생기는 것을 확인하자 동기부여도 된다.

그리고 내게 동기가 부여된 만큼 많은 이들이 떠났고, 떠나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시 전쟁

많은 이들이 떠난 데는 스팀의 시세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믿고 있다. 서로 평행을 달리는 것처럼 싸웠어도, 어떻게든 접점을 찾아 스팀잇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기저에는 그래도 아직은 매력적인 스팀의 시세에 대한 계산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연결 고리가 끊겨 버린 모양이다. 천원대에서 버티던 많은 이들이 각자의 심리적 마지노 선에 다다르자 그만 결정을 내린 것 같다는 것이 내 추측이다.

이번 비트코인캐시의 해시 전쟁은 적지 않은 이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시세 하락 때문에 허탈하기도 하지만, 신뢰와 합의라는 화폐의 근본 가치가 극소수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른 수단으로 평가 절하되기에 허탈했다. 물론 소수에게 집중된 암호화폐의 한계를 모르는 이 적었으나, 실제 협박 수단이 되는 것을 생생히 접하자니 더욱 허탈했을 것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꺼이 협박 수단이 되는 암호화폐가 달러와 다를 게 무엇이길래 사토시의 비전이 인류에 공감되기를 바라야 할까.

하지만 너무 감성적으로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이, 이상은 이상일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인간이고,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니, 적응하면 되고 가능한 최선을 찾으면 된다.



다시 콘텐츠 그리고 축적

돈은 사라질 수 있으나 부는 사라지지 않고 이동한다. 스팀이나 SBD 는 사라질 수 있으나 콘텐츠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존에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치부되던 개개인의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가치를 얻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아성을 쌓은 것으로 보이는 유튜브마저도 처음에는 여타 플랫폼에 콘텐츠를 올리기 위한 부수적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 콘텐츠가 쌓이니 마침내 오늘날과 같이 기능하게 된 것이지, let there be youtube 가 아니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유튜브를 처음 이용했던 건 2000년대 초반 같다. 곡의 길이가 10분을 넘어가기에 용량이 큰 음악들을 공유하고 싶을 때만 이용했다. 당시에는 유튜브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 특정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유튜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내 하드 속의 정보가 더 많았다.

꾸역 꾸역 콘텐츠를 쌓아 놓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압도적인 인풋이 있고, 어느 순간 인풋이 임계점을 넘으면 비로소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설령 스팀이 실패한다 한들, 우리의 콘텐츠에 가치를 부여할 그 무언가는 반드시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쌓아왔던 콘텐츠 역시 잠자기 모드에서 깨어날 것이다. 스팀이 됐든 그 무언가가 됐든 축적의 과정이 없으면 플랫폼의 성공 여부와 암호화폐의 시세에 일희일비하는 악순환이 계속될지 모른다.

이쯤 되면 스팀잇과 스팀, 스달은 화폐에 지나지 않음이오, 콘텐츠는 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스파업.

잠시 스팀잇을 즐기지 못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오비이락일 테지만, 타의에 의해 4개월의 공백이 있었다 보니까 많은 변화가 눈에 띄게 감지됐다. 점점 세분화가 이루어지고, 데이터를 모으는 모습들이 보였고, 팀이 형성되어 공식적으로 블록이 만들어지는 인상을 받았다. 사족을 달자면 부정적 의견은 없다. 오히려 환영한다. 그래서 스파업을 했다. 스팀잇에 남아 있으려면 내 입장에서는 홀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했다. 그렇게 스파 임대로 그나마 기대 수익 창구를 만들어 놓고 계속 콘텐츠를 쌓아가려고 한다. 내 능력에 한계가 있으니 다소 떨어지는 퀄리티야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쌓아나가다 보면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는 해본다.

책이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게 일단 사두면 언젠가는 읽는다고 했었다.
글도 희한한 게 일단 써두면 누군가는 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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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스팀잇과 스팀, 스달은 화폐에 지나지 않음이오, 콘텐츠는 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ㅎㅎㅎ 좋은 주말, 주일 보내셨길 바랍니다. :))

그 누군가가 접니다! ㅋㅋㅋ
또 다른 시각 너무 잘 읽었어요~

콘텐츠는 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한줄요약! ㅋㅋ

한 줄만 적을 걸 왜이리 길게 적었을까요.ㅋㅋㅋㅋ
아 그나저나 광고 다는 걸 깜빡했네요. xD

공감합니다.
그렇기에 저도 이렇게
존버하면서 스팀잇에 흔적을 남기며
지내고 있죠

홧팅해보아요. :))

누군가17번 여기 추가요~ ㅎ
좋은주말 보내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셨기를 바랍니다.

뭐라도 써보려고 스팀잇을 시작했고 각종 번뇌와 고민 속에서 어느새 중독자가 되었네요.

박제된 콘텐츠는 남아있죠. machellin님 콘텐츠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그럼에도 스파업을 간간히 하고 글을 꾸준히 읽는 사람이 다음 글도 응원합니다:D

가치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냥 쌓아보려고 합니다.ㅎㅎ :))
저도 지금 정주행중인데 곧 따라 잡을 것 같습니다.ㅎㅎㅎ

누군가는 읽죠!ㅎㅎ 말씀하신대로 플랫폼 그 자체보다는 나의 컨텐츠가 쌓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시스템보다는 각자가 풀어내려고 쌓아놓은 이야기 그 자체를 플랫폼이라고 생각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모두 열심히 씨뿌려요!ㅎㅎㅎ

어느정도 쌓이면 플랫폼이 어디든, 다시 풀어놓기에도 수월할 것 같고, 쌓여있는 컨텐츠에서 가지치기도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었습니다. 물론 스팀잇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곳이다 라는 뜻은 아니구요.ㅎㅎㅎ 내 자체가 플랫폼이다는 아이디어는 멋지네요. :))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

누군가는 읽는다 그 중 하나 여기 있네요 ㅋㅋㅋ
저도 컨텐츠라는 부를 “축적” 해보고 싶어 스팀잇에 발을 들여놨다가 너무 빠져있는것 같습니다. ㅋㅋㅋ
컨텐츠가 오히려 너무 스팀잇에 특화 되어 있는것 같아 좀 변화를 줘야 하긴 할것 같은데...ㅎㅎ
제 컨텐츠야 머 컨텐츠라고 부르지 못할 수준의 그냥 막 쓰는거지만....ㅋㅋㅋ

콘텐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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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탱키님 꾸벅..ㅋㅋㅋㅋ

저도 꾸벅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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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우와.. 소리 나와야만 콘텐츠 소리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xD
오히려 어떤 dApp 이 새로 나왔을 때 본인들 알리고 싶으면 지수님 같은 분 먼저 찾지 않을까 싶은데요. :))

아이고...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네요 :)

요 며칠 쉬다가 들어왔는데, 며칠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다운 됐네요. 컨텐츠의 힘은 공감하고 갑니다. 사 놓은 책은 언젠간 읽는다는 말씀도요!

아무래도 너무 황당한 시세에 적잖이 충격들 받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팀이나 스달 갯수는 그대로일텐데 왜 시세 따라 포스팅 수가 오락가락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바로 바로 파시는 것도 아닐진데..

디클릭타고 방문했습니다:]
책은 정말 사두고 나중에 읽게 되더라구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 사는 돈은 아깝지 않더라고요.ㅎㅎㅎ
팔로우 하고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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