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0과1의 풍경 (1)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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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펜, 베타카로틴, 구연산, 루틴, 비타민B, 그 외 수 십 가지 성분이 화학 구조 모형과 함께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표시 됐다. 이것들이 합쳐진 것이 무엇인지 알기위해서는 모니터 너머를 봐야했다.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로봇 팔이 실험을 돕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팔 끝엔 다섯 손가락 대신 긴 파이프관이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에는 생체 조직으로 만들어진 혀가 달려 있었다.

마치 죽은 사람의 것 마냥 길게 늘어진 혀는 로봇 팔이 움직일 때마다 약간씩 흔들리며 움직였다. 테스트를 위해 설치된 선반엔 토마토 파스타가 놓여있었다.

“토마토가 신선하네요. 파스타도 잘 익었고요. 맛있어요.”

실험을 위해 임시로 녹음해 놓은 조교수 박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주도한 테스트가 성공한 것에 들뜬 목소리는 가이드 목소리보다 한 톤 높았다.

“혀에 부착된 센서로 음식을 분석해 내는데 현재까지 98%성공했고요. 음식에 대한 맛 표현도 계속해서 업데이트 중입니다. 인공 신경망에 접속만 무사히 끝나면 미각은 문제없을 거 같습니다.”

“2% 실패한 건?”

“아무래도 화학 성분으로만 분석을 하다보니까 착오가 생겨서요. 시각까지 더해지면 틀리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동공은 어떻게 돼가?”

“저번 테스트 때 문제 있었던 건 수정이 끝났고, 인공신경망하고 감정에 대한 싱크만 맞추면 동공은 제대로 움직일 겁니다. 그 쪽은 여유가 있는지 눈 색깔을 정하고 있던데요. 좀 더 신비스런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요.”

“디자인 부서에서 나온 컬러로 해야 된다고 해. 나중에 문제 생겨”

“예. 인공 신경망은 언제 싱크 시킬 생각이세요? 일정이 급하잖아요.”

완벽하게 조율된 시스템을 선보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회사 창립기념일에 맞춘다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피로감에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엄지와 집개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며 떨림을 느꼈다.

어젯밤 신경망 프로그램에 입력된 코드 한 줄이 한 글자씩 머릿속을 두드렸다. 삭제하는 것이 옳았다. 눈을 감고 몇 걸음을 걷는 동안, 박군은 떨어져 나갔다. 이미 자신이 할 얘기는 다 했다는 뜻이었다.

계획했던 것보다 보름이 늦어진 스케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회의가 소집되어 있었다. 5명의 이사들과 프로젝트 책임을 맡고 있는 최이사를 이해시킬 설명이 필요했다.

회의실 문을 밀고 들어가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손가락 끝이 문에 닿았다. 미묘하게 틀어진 곡선으로 내려가는 나뭇결. 목구멍에 막혀있던 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면서 침착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회의실 테이블에 이사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회의는 단도직입적으로 시작됐고,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언제 완성이 되는지에 대한 확답이었다.

“모든 관절은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현재까지 프로그램 된 언어는 15개입니다. 피부 조직 부분에서도 개선이 되어서 자극에 따른 변화까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피부 톤은 판매 나라에 따라 변화를 줄 계획입니다.”

“완료된 것들에 대한 사항은 보고서에서 이미 다 봤어요. 다만 이해가 안 되는 게,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적으론 제품이 완성 된 걸로 보이거든요.”

“인간의 지성은 뉴런의 집합체인 신경망에서 나오는데, 이걸 컴퓨터상에서 흉내 내기 위해 고안한 것이 인공신경망입니다. 인간의 사고 과정을 따라할 수 있죠.”

“박사님. 쉽게 설명해 주시죠. 모두 이해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사람으로 치면 뇌는 완성이 되어 있다는 얘깁니다. 제가 말하는 건 마음이에요.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정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오래 전이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출시된 로봇들 중 단연 앞선 기술의 휴먼로봇을 내놓자는 것이었죠. 아직도 답을 찾고 있습니다만, 개발 단계에서 확인된 것이 있어요. 100명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면 99명이 같은 답을 얘기하고, 한 명만 다르게 얘기할 수도 있거든요. 그럼 그 한 명은 왜 다르게 얘기한 걸까요? 뭔가 다르기 때문이겠죠. 우린 그 원인을 경험의 차이로 분석했어요. 즉, 충분한 개인적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개성과 자아가 있는 로봇을 만들 수 있단 거죠.”

“잠깐만요. 우린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는 걸 원해요. 99명에 속하는 로봇인 게 더 낫 단 말이에요. 개성과 자아가 소비자들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데이터베이스를 근거로 하는 로봇은 생활에 도움은 줄 수 있지만, 우릴 이해해 주진 않죠. 반면에 개발 중인 시스템은 스스로 학습하면서 창의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친구가 되어 주고, 선생님이 되어주고, 부모가 되어 줄 수도 있는 거죠. 시간이 걸리는 건, 그런 로봇을 만들기 위한 겁니다.”

“박사님 뜻은 잘 이해했어요. 했는데, 벌써 10년째에요. 회사 입장에서는 더는 미룰 수가 없어요. 예정대로 이번 주 안에 끝내세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거 외에 혹시 지연되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짧은 대답으로 회의가 끝났다.

연꽃이 핀 연못가에 세워진 정자. 지붕 위로 누운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 고목을 연상 시키는 문살. 마루를 곧게 받치고 선 돌기둥. 여름날 촬영된 사진 한 장이 연구실 가운데서 홀로그램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평면 사진을 입체적으로 구성했지만, 정보가 없는 반대편은 잘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나머지 부분 채워볼래?”

개발 중인 인공지능망 – M14는 비슷한 종류의 사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호수 위, 정자로 가기 위한 부교를 재구성해서 기존 홀로그램에 추가했다. 연못 주변에 나무를 더하고, 오후 6시의 빛을 더해 풍경을 완성했다. 원을 그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지금 입력받는 데이터는 네트워크하고 별도로 관리해.”

“예. 알겠습니다.”

풍경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입력된 데이터 사진 자료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기억을 헤집는 사진들. 동공이 마비되는 감각에 손가락이 저릿했다.

손금 사이로 스며드는 땀. 주먹을 쥐고 매만질수록 분비물이 더욱 짙게 느껴졌다. 데이터 백업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 서버의 냉각 팬 소리. 귀 주변 공기를 진동시키는 희미한 울림이 오히려 신경을 자극해 화면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시커먼 동공을 화면에서 나오는 빛이 찔러댔다. 무수한 파편들. 사고 당시 블랙박스에서 추출된 영상은 홀로그램으로 변환되어 공기 중에 떠올랐다. 허공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이 연구실 안 조명 빛이 닿아 반짝거렸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아내의 머리가 쏟아지는 빛 속으로 향하다가 반동되며 튕겼다.

평소 마른 체형에 도드라졌던 그녀의 쇄골 뼈가 위로 향했고, 몸 전체가 공중으로 뜨는가 싶더니 안전벨트에 감겨 의자 등받이에 쳐 박혔다. 생일선물로 사준 스웨터는 따뜻해 보였다. 사진이 바뀌었다. 주름진 보닛. 형체가 무너진 차. 피 묻은 앞 유리. 운전석에 누운 바람 빠진 에어백.

“박사님 생체 리듬이 좋지 않습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진행해.”

M14는 사고 관련 자료를 빠르게 정리해서 입력받았다.

“지금부터 데이터입력 작업은 모두 중단하고, 입력 받은 자료만 분석해.”

“어떤 분석을 원하시는 겁니까?”

“사고 당시 운전자의 상황, 감정, 신체적 이상, 어떤 것이든지 좋아. 계속 반복 시뮬레이션 해서 모든 가능성을 전부 테스트해줘.”

“후회라는 감정입니까?”

“맞아. 기억해 둬.”


“키스 기능에 문제가 있어요.”

점심시간 후, 급히 박군이 찾아와서 한 마디 내뱉었다. 키스 기능이라는 단어는 들을 때마다 거부감이 들었다.

“그냥 키스할 때 문제가 있다고 해. 그게 낫겠어. 무슨 문젠데?”

“입술 센서가 촉감을 느끼고 데이터 값은 뽑아내고 있는데,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데이터 값과 비슷해서 인지하도록 프로그램하기가 쉽지 않아요.”

“실제 같으려면 파스타 먹는 거하곤 달라야 할 테니까.”

“그렇죠.”

“로봇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해봐. 처음 시판될 땐 키스를 한 번도 안 해본 상태인 거야. 우리도 처음 시도할 때가 있는 거잖아.”

“이해했어요.”

“우리가 찾아야 할 건, 음식 먹을 때와 키스할 때를 구분할 수 있는 데이터 값이야. 그 다음엔 구분된 데이터 값을 따로 저장할 수 있게 방을 하나 만들어주자고.”

“점점 키스를 잘해가게 되겠네요.”

“배워가는 거지. 우리처럼.”

박군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연구실로 돌아왔을 때, M14는 이미 5213번째 분석을 진행하고 있었다. 보고서를 확인하니, 첫 번째 분석 자료를 내놓는데 걸린 시간은 0.35초였다. 진행 과정에 대한 처리 그래프를 보니, 대략 2000번째까지는 처리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가 2300번째 전후로 그래프가 변화를 보이며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현재까지 분석한 걸 얘기해 볼래?”

“83%확률로 사건 기록과 제 분석은 일치 합니다. 자동 운전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던 차가 충돌 사고를 낼 확률은 오늘 교통 통제 시스템 기준으로 0.34%입니다. 이를 근거로 판단했을 때, 운전자가 시스템을 셧다운한 상태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사고를 낸 것으로 보입니다.”

“17%는 뭐지?”

“사고 분석 자료에는 2%미만으로 측정되었지만, 시뮬레이션이 반복해서 진행될수록 자살의 확률이 낮아집니다. 사고의 원인을 찾을 수 없어 현재까지 17%의 확률의 근거를 말씀 드릴 순 없습니다.”

“확률이 올라간 이유는?”

“자살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분석입니다. 운전자의 당일 심리 분석 결과를 도입해 봤습니다.”

“띄어줘.”

M14가 화면에 아내의 사진과 스케줄, 영수증, 기타 사진들을 볼 수 있게 띄어주었다.

“사건 당일 피해자는 생일이었습니다. 12시 20분 결제 내역을 보면, 일주일에 평균 5번 정도 전화 통화를 나누는 이연수라는 분과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봉골레 파스타, 피자를 주문해서 드셨습니다. 1시 30분에 제롬이란 카페에서 두 분이 캐롯 케이크와 콜롬비아산 원두커피를 두 잔 드셨고, 헤어진 것은 CCTV영상을 근거로 봤을 때 2시 10분입니다.”

“좀 더 간단하게 말해봐. 다 말할 필요 없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야.”

“예. 알겠습니다.”

화면에 넥타이 상품 컷이 떴다.

“이건 뭐지? 처음 보는 사진인데.”

“네트워크에서 찾은 사진입니다. 피해자가 구매한 넥타이입니다. 박사님을 위해 산 것으로 95% 확신합니다.”

화면을 확대해서 넥타이를 보았다. 고급 소재로 만들어진 명품 브랜드였다.

“나머지 5%는?”

“구매 후 이동경로 분석 결과 박사님이 계셨던 장소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예상경로는 어디였는데?”

M14가 화면에 광범위한 규모의 지도를 띄었다. 각 도로를 관통하는 선들이 빠르게 정렬되며 가능성 있는 위치를 찾았다.

“78%확률도 가능성이 있는 곳은, 23구역 45번 3층입니다. 세대주는 한성식.”

“누구지?”

“화가입니다. 그림을 보시겠습니까?”

“띄어봐.”

화면에 그가 그린 그림이 떠올랐다. 손으로 허공을 짚어 차례로 넘기며 보았다. 주로 인물화를 그렸는데, 표정을 과장되게 그려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 중 여자의 그림이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라 아내라고 판단할 수 없었다.

“이 사람과 아내의 관계는?”

“네트워크에 입력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석한 결과 연인이었습니다.”

“몇 퍼센트 확률로?”

“두 사람의 감정을 확률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만 하지. M14 보안 설정. 나 외엔 아무도 못 보게 해.”

“망막 체크 하겠습니다.”

폴더를 정리해서 넣고, 망막을 스캔해서 보안설정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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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흥미진진합니다! 다음편 기다릴게요 :)

정말요? 진지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약간 진지한 sf물이라서 기대안하고 있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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