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란 이런 것, <어둠속의 댄서>

in #kr9 years ago

평소에 ‘잔인한 영화’라 하면 칼로 배를 찌르거나 손목을 긋는 등의 장면이 나오는 영화만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 속 잔인함에는 신체적인 잔인함 뿐 아니라 ‘상황적인 잔인함’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를 보면서 ‘아 저건 진짜 잔인하다’라고 느꼈던 장면이 크게 두 가지 있었다. 두 장면 모두 마지막 부분에 나왔는데 첫 번째는 셀마가 재판을 받던 도중 증인으로 올드리치 노비가 나왔던 장면이었다. 올드리치 노비는 셀마가 뮤지컬과 탭댄스에 매력을 느끼게 해줬고 또 그것을 꿈으로 만들어준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살인자가 된 셀마의 재판에 와서 진실을 증언하는 게 너무 잔혹했다. 두 번째 장면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셀마의 사형을 집행하는 장면이었다. 셀마를 사랑하는 이와 사랑했던 이가 같은 자리에 앉아 셀마의 죽음을 지켜보는 상황이 너무 슬펐다.
중간 중간 셀마가 뮤지컬 공연을 상상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영화를 볼 때는 그저 ‘노래 좋다’라고만 느꼈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나서 그것들이 참 슬픈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셀마의 상상 속 뮤지컬에서는 언제나 셀마가 바라는 내용의 가사와 행동이 이루어졌다. 빌을 죽이고 나서 셀마는 ‘네가 날 죽였지만 난 너를 용서해’라는 가사의 뮤지컬을 상상했고 재판에서 셀마는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올드리치 노비가 ‘난 언제나 널 위해 공연을 할 거야’라고 말하는 뮤지컬을 상상했다. 생각해보니 셀마의 상상 속에서 뮤지컬이 펼쳐진 때는 대부분 셀마가 ‘두려움’을 느꼈을 때였다. 영화의 끝부분에 셀마가 했던 말인 ‘뮤지컬에서는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셀마는 불안해질 때마다 언제나 밝은 일만 일어나는 뮤지컬을 상상함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이다.
영화가 지루하다는 평이 있어서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를 보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찰나의 지루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이유가 이 영화에서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인데 그것은 ‘설명적인 대사’이다.
영화 속에는 이미 앞에 나왔던 장면이나 대사를 굳이 반복해서 설명하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번역 문제인가 했는데 반복해서 나오는 걸 보고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셀마의 집에서 빌과 셀마가 대화하는 장면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는 몰입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대사가 많이 나왔다. 모르는 정보에 대한 설명을 듣는 대사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영화에서 나온 대사는 대부분 이미 보았던 상황을 굳이 나열하는 대사였다. 이러한 대사들이 중간 중간 ‘지금 내가 영화를 보고 있다’라는 사실을 강제로 일깨워주어서 영화에 집중하는데 조금 방해가 됐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영화의 맨 처음에 나오던 눈 아픈 일러스트들은 이 영화의 내용과 주인공의 삶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 같다. 그림에서 꽃으로 추정되는 어떠한 물체가 보통의 색을 띄다가 갑자기 눈부시도록 밝아졌다가 마지막에는 어두워져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데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둠속의 댄서’가 된 셀마의 일생을 보여준 것이다.
주인공이 죽는 장면,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 등의 자극적인 장면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와서 충격적이었지만 감독의 새로운 시도가 있었기에 이처럼 가슴 속 깊이 여운이 남는 걸작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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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옛날생각 나네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해요.

다른 것보다... 이 영화는 거장이라고 불리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 유럽의 노래하는 요정이라는 비요크의 조합이라서 봤다가, 감독님의 그 유명한 헨드헬드 기법. 즉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그 화면에 멀미가 났던....
당시에는 영화가 너무 우울하고, 어지럽다고 생각했지만, 두고두고 생각나는 걸 보면... 역시 걸작은 걸작이었던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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