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의 거짓말] 영아살해는 어떻게 들통나는가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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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 25일자 기사. 7년 전, 아이의 액운을 쫓는다며 굿을 하다 6개월 된 애가 죽었다. 범죄가 들통나는 게 두려웠던 엄마와 무속인은 아이의 시신을 불태운 뒤 야산에 암매장했다. 어머니 원씨는 이 사실을 7년간 숨기고 있었지만, 7살이 되도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자 이를 수상하게 여긴 기관의 조사에 의해 검거되었다.

여기서 살인사건이 들통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분명히 존재해야 하는 아이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없다. 아이의 칫솔은 있지만 칫솔에서 DNA는 검출되지 않는다. 아이의 예방접종 기록도 없고, 아이를 본 사람도 없다. 부모의 카드에서 아이 용품을 산 기록이 하나도 없다. 아이는 있는데 아이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아이가 있는 집에 아이의 지문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법의학에서는 이것을 '생활반응'이라고 한다. 사람이 살아 있다면 응당 보여야 할 반응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물리적인 증거이다. 물리적으로 있어야 할 게 없다면, 의심한다.

물리적인 증거가 있다면, 비물리적인 증거도 있다. 그것은 바로 기억이다. 가짜 증언을 하는 사람들을 추궁하면 추궁할수록 증언은 뒤흔들린다. 겪은 일이 없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상상을 하기 때문인데, 상상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아이와 갔던 곳이 어디어디인가, 주로 치료받는 병원은 어디인가,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는 무엇인가? 모든 기억은 아이가 없던 시점부터 사라진다. 허공의 다리에 모래로 길을 만들듯, 이야기는 계속 변하고 무너지며 두루뭉술하다.

과거 7년의 생활반응을 만들어 낼 수도 없고, 자신의 기억을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답을 하지 못하며 이렇게, 범죄는 들통난다.

갑자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는 건, 최근 스팀잇에서 수상한 글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글에도 지문이 있고 기억이 있다. 지문은 생활반응의 일종이다. 어떤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보인다. 그 사람이 쓰는 단어, 말버릇, 호흡, 오타, 작성자가 글을 쓸 때 집중해서 묘사 부분, 주로 그리는 관심사까지. 동아리에서 소설 쓰기를 하면 이름을 쓰지 않아도 쓴 사람을 맞출 수 있었다. 숨겨 보려고 노력하는 후배도 있었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항상 들통났다. 그만큼 글은 누가 썼는 지 맞추기 쉽다.

그리고 글에서의 생활반응. 법의학에서의 생활반응과는 차이가 있지만 나는 이걸 생활반응이라고 표현하는데 - 직접 겪은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를 빌려 쓰는 것- 혹은 상상-은 겪은 내용을 묘사하는 밀도가 다르다. 진짜로 쓴 글은 깊은 곳에서 깊고 얕은 곳에서 얕지만, 남의 이야기를 쓰거나 상상하는 사람은 항상 얕거나 항상 깊다.

'어제 아이가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갔다왔어요'

'어제 아이가 한밤중에 몸이 펄펄 끓어서 택시 불러서 강남 성모병원에 갔다왔어요.. 택시비도 택시비인데 응급진료비라고 7만6천원을 더 받더라구요.'

그리고 기억. 사람이 겪은 모든 사건은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몇살 때 어쨌고, 몇살 때 어쨌고, 몇살 때 어쨌고.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건의 위주로 흘러간다. 어디선가 봤던 사건들을 가져와 자신의 이야기처럼 속이지만, 그 안에는 자신이 언제 겪었는지 시간 정보가 없다. 겪지 않았으니 거기에 시간 정보가 들어갈 일이 없다. 그리고 기억이 항상 자극적이다. 남이 겪은 자극적인 이야기 중 자신이 공감했던 부분, 즉 더 자극적인 이야기만 빼오니 글이 항상 영화의 클라이맥스같다.

거짓말을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하거나, 겪은 이야기에 버무려 쓰거나, 앞 뒤가 맞게 써라.

커뮤니티에서 모르고 있는 것 같나? 말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다. 당신 글을 읽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의 말이 진심인 줄 알고 진지하게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그런 계정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다.

이대로 두면 커뮤니티는 더 크게 다친다. 당신이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나? 어디선가 본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가져오면 속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고 있다. 여기에서 그만 두고 커뮤니티를 떠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래.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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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팀~~ 하고 가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돈이 엮이니 사람이 참 웃겨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무서워!!!

합리적인 의심 리스팀합니다.

합리적인 리스팀 감사합니다.

다 보는 눈은 똑같구나...! 리스팀합니다

리스팀,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제목보고 들어왔다가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시간차로 저녁에 리스팀하겠습니다.

어휴 감사합니다. 예가체프 투샷이라니 아이디에서 커피향이 솔솔 나네요!!!

불행을 판다. 무섭네요.

요즘 쓰시는 글들이 묵직해지셨네요 ㅎㅎ 원래 그렇게도 쓰시는 걸 알았지만,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ㅎㅀㅎㅎㅎㅎㅎㅎ 요새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서 무거운 이야기들만 쓰고 있습니다 밝게 있을 에너지가 조금 부족해요!!! 으헝헝 ㅠ.ㅠ

여자들은 얼핏 가벼워보이지만 진지한 반전매력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죠 ㅎㅎ 아쉽게도 전 남자지만 여튼 인기 폭발이실듯요 ㅋㅋ

저도 요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네요.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제가 가끔 진심으로 공감했던 글이 다른 누군가의 글과 매우 유사해 보다보면 아 또 속았구나 라는 허탈감이 생깁니다.
본인만 모를뿐이죠.

정말로 사람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어디에서 봤던 글 봤던 내용 그런 걸 그대로 가져와서 자기 이야기인척 분신술 쓰는 거 보면 나뭇잎 마을 닌자도 아니고 참 잘도 썩어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허허 웬만하면 이런 글 안 쓰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자기 마음 털어놓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답답해가지고. 남들 공감 받아가는게 장난도 아니고 말이죠.

저도 의심하는 계정이 세 그룹 정도 있는데 그중 한 그룹은 같은 지갑 주소 쓰는 걸 확인했죠. 그런데 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군요. 저격글 쓰는 건 이제 좀 자제하고 싶고...

아, 지갑 주소. 지갑 주소! 그걸 깜빡하고 있었군요. 근데 세 그룹이나 있다구요?? 아이고 제가 모르는 곳에서 또 음지의 사람들이.... 근데 저격글이 없으면 참 ....

자제라니ㅠㅠ

저만 그렇게느낀게아니었군요. 아무생각없이 글을 읽다가도 흠칫하게되더라구요. 우연이라고 믿고싶었지만.. 역시는 역시네요.

우연이란 건 없죠 이거 어디서 봤는데 이 사람 글에서 누군가의 냄새가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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