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한밤]다정이 나를, 김경미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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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하면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다정이 나를/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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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서 '솜에도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다' 는 말이 오래도록 가슴 속에 남았었다. 상대방과 자신의 관계를 확신하지 못하면 애정에서도 상처를 받는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고 애정을 거부하며, 호의를 보이면 거북스러워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회상한다.

그러나 그저 단 하룻밤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본래이 경박하고 가식적인 익살꾼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으로 만든 방망이에도 상처를 받게 되는 법입니다. 즉, 행복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기 전에 빨리 헤어지고 싶어 안달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써 먹던 수법인 익살로 연막을 쳤습니다. p83

책을 읽으며 최근의 모임을 기억해본다. 동아리의 후배를 만나거나, 친구의 친구를 만났을 때 반가워 하는 척 익살을 떨고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 란 말을 들었지만 가면 갈 수록 할 말이 없다. 첫 만남일 때야 피상적인 이야기, 껍질의 껍질같은 이야기들로 때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누는 이야기는 내밀해지기 마련이다. 그쯤 가면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세상을 관찰하지 않는다. 주변이 어떤지 보기보다 내가 주변에 어떻게 보일지 생각한다. 애정있게 지켜보는 것이 없다. 심심풀이로 글쓰기에 열중하는 척을 하고, 평범하고 유쾌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가볍게 말을 한다. 주변 사람들을 아끼는 척 하고 친절한 사람이란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누가 내게 다정하면 죽을 것 같다. 사람들에게 다정 같은 걸 줄 순 있지만 누가 내게 주는 관심과 호의는 부담스럽다. 그냥 나를 적당히 괜찮은 사람처럼 봐 주기만 하면 충분한데, 사람들이 내게 주는 관심은 숨이 막힌다.

...아니다. 어쩌면 모든 게 주변을 너무나 사랑해서일지도 모른다. 짝사랑이 너무 커서, 상대방이 날 안 좋아하는 것이 너무나 무섭기 때문에 주변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모래 속에 고개를 쳐박고 외치고 있는 것일지도. 뒷면의 뒷면처럼, 껍질의 껍질처럼...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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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라는 표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것같네요.. 잘보고갑니다!! :)

감사합니다! 제 최애 시중의 하나에요. 종종 시를 필사하면 놀러 와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글을 읽고 난 뒤에서도 여운이 남네요. 오늘은 아마도 이 생각에 빨리 잠을 이루지 못할 듯하네요 글 잘 보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시를 읽은 날은 잠이 안 오는 경우가 꽤 있더군요. 그때는 다시 일어나 시를 필사를 하죠. 불면증 치료에도 참 좋더라구요 ㅎㅎㅎ

글씨가 마치 고슴도치 같네요. 시와 어울리는 멋진 칼리그래피입니다.

매일 쓰며 실력이 늘기를 기대하는 중입니다 ㅎㅎㅎㅎ 언젠가 남들에게 선물할 정도가 되면 스팀잇 분들께 열심히 글을 써 드리고 싶네요.

lekang 님의 감정이 의식이 잘 드러나는 글이네요! 제가 오늘 올린 책 '센서티브'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이해못할 듯 싶지만
내면을 감추며 외면으로만 소통하고 대화할 줄 밖에 모르는
이는 힘들어함을 속으로는 호소하고 있지 않나 싶네요

잘 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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