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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kr6 years ago (edited)

호흡 긴 공포, 곤지암

안녕하세요. 정말 백만년만에 영화 리뷰로 찾아뵙는 르캉입니다. 분명 10개월 전의 자기소개에는 괴담/영화리뷰/심리학/캘리그라피/시 라고 썼는데... 어라..? 생각보다 잘 하고 있네요? 성취율 50%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1987이 마지막 리뷰였으니까.. 그동안 영화관도 안 갔구(꿍얼꿍얼). 하여튼, 오늘의 영화는 곤지암입니다.

경고, 이번 리뷰는 심약자들을 위해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걸 못 보시는 분은 그냥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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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은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공포영화의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전문 방송인이 수익을 위해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가 진짜 귀신이 나오는 곳이라 모조리 죽어버리는 구성은 ‘그레이브 인카운터’와 완전히 똑같죠.

차이가 있다면 콜링우드 정신병원은 여기서 비행기로 18시간이 걸리니 귀신이 우리 옆에 찾아올 순 없지만, 곤지암은 300번 버스와 분당선을 타면 1시간 50분 내로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출발하면 귀신이 나오는 12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겠군요. 그 반대도 가능하겠구요.

그래서 곤지암은 외국 공포영화와는 다르게 정신적인 프레셔를 가합니다. 니가 갈 수 있는 거리 내에 이렇게나 무서운 곳이 있고 귀신도 나온다고! 곤지암을 본 착한 스티미언들은 가급적 10시 전에 자고 발도 꼭꼭 이불 속으로 넣고 자세요. 안 그러면 귀신이 밤중에 붙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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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친절하게 말을 해 줘도 말을 듣지 않는 꼬꼬마들은 항상 존재하고, 친구의 ‘쫄’이란 말에 ‘나는 쫄지 않았다’를 외치고 정신병원 412호 문짝을 따던 초등학생 둘이 사라졌다는 동영상을 소개하며 ‘호러 타임즈’유튜브 채널이 시작됩니다.

귀신보다 돈이 무섭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다 못 세서 발가락까지 써야 할 지경인데, 유튜브 채널 ‘호러타임즈’ 운영자는 곤지암에 가서 조회수 백만을 찍고 광고수익 1억 5천을 땡겨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꿈의 실현을 위해 곤지암 정신병원으로 향할 희생자...아니 촬영 지원자들을 모으는 유튜브 영상이 끝나고, ‘호러 타임즈’촬영팀은 곤지암 가기 이틀 전부터 녹화를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살짝 깼습니다. 1억 5천을 땡기려면 100억뷰는 나와야 하는데...곤지암 감독은 프로 인방충들이 광고 수익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보죠?)


내용을 다루기 전에, 잠시 이 영화의 시선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D-2부터 촬영은 모두 렌즈의 시선으로 이루어집니다. 고프로, 동작 감지 캠, 드론, 캠코더가 시선의 전부인데요. 캠코더는 REC, 블레어 위치, 클로버필드같은 저예산 공포영화에서 지겹게 써먹은 도구지만 아직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정신병원 안에서 귀신과 직접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거든요. 귀신한테서 도망칠 때 위와 아래로 흔들리고, 정신적으로 불안해지면 좌우로 고개를 돌립니다. 우리도 따라서 불안해집니다. 캠코더의 시선은 관객의 시선이고, 캠코더의 불안은 곧 우리의 불안이 됩니다. 공포 영화에는 잘 맞는 촬영 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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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더럽게 무섭네요)

단점은 환각 세계를 보여주기 어렵다는 점이지만, 곤지암에서는 귀신(환각계)따위는 없습니다. 귀신(물리/소리/정신지배) 특성을 달고 나온 끔찍한 귀신들밖에 없으니까요. 귀신들에게 쫓겨다니며 흔들리는 캠코더를 보면 제 마음도 빠운스 빠운스 합니다.

두 번째 시선, 고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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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광수가 헬멧에 달아서 쓰는 그 카메라요. 곤지암에서는 고프로를 사용해서 재미있는 효과들을 냈습니다.

첫째, 고프로는 우리가 배우의 표정을 턱 밑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는 공포에 질린 샬롯의 얼굴을 턱 바로 아래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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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타인의 공포를 볼 때, ‘전측 대상회피질’이 활성화됩니다. 타인의 공포에 공감하고, 나도 비슷한 반응을 하게 만드는 뇌 영역입니다. 실제로 별로 무섭지 않다고 하더라도, 무서워하는 표정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무서움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 사진을 보며 흠칫 놀라셨죠? 그게 전측 대상회피질이 작동해서 그렇습니다. 곤지암 감독님, 참 똑똑합니다. 혹시 심리학 전공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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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빵맨이 떼어주는 바로 저 부분이 전측 대상회피질입니다.)

두 번째 효과. 고프로를 가슴 앞에 고정해 놔서 캠코더처럼 흔들리지도 않고 멀미도 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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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효과. 고프로가 보는 시선의 넓이는 일반 카메라보다 훨씬 좁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낍니다. 들어오는 정보가 적으니 머릿속으로 온갖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배우가 귀신이 있는 곳에서 고개를 돌리면, 우리는 귀신을 볼 수 없습니다. 샬롯이 고개를 돌리면, 우리도 강제로 고개를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샬롯이 정신병원의 환자를 쳐다보지 않는 동안은 우리도 고개를 돌려야 하고, 카메라 너머를 상상하게 되고, 더욱 큰 공포를 느끼는 거죠.

또한 가끔씩 나오는 드론의 시점이 절묘합니다. 탑뷰-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은 불안합니다. 우리가 11m에서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감을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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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뻥 뚫린 수비가 불안해 보이지 않으십니까?)

시선의 위치는 권력입니다. 고프로는 항상 낮은 데에서 올려다보고, 귀신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봅니다. 배우가 쓰러지면 고프로는 바닥을 봅니다. 우리가 가진 힘은 바닥을 기어다닙니다. (귀신이 항상 공중에 떠다니는 이유는 우리보다 강한 위치 에너지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감독은 카메라의 시선들로 더 큰 공포를 만듭니다.


다시 내용으로 들어가 보죠.

곤지암은 맨 처음 40-50분동안 촬영 장면을 보여줍니다. 무서운 장면은 아예 나오지 않고, 긴 호흡으로 즐거운 일상을 보여줍니다. 굉장히 깁니다. 진짜로 제가 공포체험단이랑 엠티 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같이 수상 스포츠도 하고, 같이 맥주도 마셨고, 여자 체험단들의 모습을 보며 뭔가 설레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포 파트에 빠져들 때도 더 강력하게 내팽겨쳐집니다. ‘지금까지 즐거웠지? 이젠 진짜로 X되는 거야!’

정신병원 안에서 인형을 손으로 잡은 순간부터 ... 아니, 단체 치료실에서 팔뚝이 잡혔던 때부터일까요? 그 시점부터 영화는 미친 듯이 무서워지기 시작합니다. 베이스캠프의 불이 꺼졌을 때부터 모두는 악몽 속처럼 병원 안을 헤메입니다.

영화 볼 땐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알아차렸을 땐 감독이 복선을 잘 쓴다- 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맨 처음에 정전났을 때부터 베이스캠프는 헛것을 보고 있었던 거라니. 생각해 보면 유튜브 사이트의 글자들이 깨질 이유가 없고, 불이 한번 꺼졌다 켜졌는데 에러 메시지도 아예 없고... 왜 그럴까 지금 와서야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이미 곤지암에 홀려 있었던 거겠죠.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하이라이트는 래퍼귀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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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412호 라고 말하고 있는 거였더군요)

이미지 불러오기 할 때마다 정말 무서워 죽겠네요. 눈에 흰자가 아예 안보여서 너무나 낯설고 무섭게 느껴지죠. 디자인 잘 했어요 진짜. 원래 인간은 눈짓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흰자위가 발달했지만, 이 귀신은 이해 불가능성과 낯섬으로 우릴 정말 소름돋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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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은 흰자위가 거의 안보이죠? 동물들은 이래도 귀엽지만, 사람이 흰자가 없으면 진짜 무섭습니다.(너무 무서워서 귀여운 사진을 넣어봤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곤지암이무서운 이유는

–낯섬(래퍼귀신의 눈, 입으로 내는 소음)

  • 빠져 나갈 수 없는 절망감(특히 베이스캠프 간 줄 알았는데 병원 지하였던 것)
  • 갈수록 절망에 빠지는 표정(특히 바로 턱 밑에서 보여줌)
  • 저항할 수 없음(대항할 방법 없음)
  • 소통 불가능(괴상한 소음, 이해불가)

이 정도가 되겠군요. 잘 짰습니다 감독님.


다행인 건, 보고 나오면 크게 무섭지 않습니다. 일상과 완전히 격리된 공간이라서 그래요. 곤지암에 찾아가지만 않는다면 안전할 것 같죠. 주온이 무서웠던 이유는 방 이불 속에서 튀어나오니까 그런 거죠.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을 공포로 만드는 게 이거 말이나 됩니까?

그래서 곤지암은... 소개팅 인상은 최악이나 애프터 거절하면 연락하지 않는 남자같은, 그런 영화입니다. 공포영화 잘 못 보는 사람 데리고 가서 보면 재미있을 거에요!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영화에는 박근혜/박정희에 대한 비판이 몇 개 숨어있습니다. 흥미가 생기면 나중에 분석해보기로 할게요. 이번 리뷰는 공포 영화에 집중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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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못했는데... 호불호가 갈리더라구요ㅎㅎ

그러게요 재미없다는 사람도 많고 재밌다는 사람도 많구..

아이...깜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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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심야로 보러가는데.. ㅠ

잘 보셨나요? 정말 무섭지만 후유증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Yurim320이랑 봐야하나

나랑보자요

좋은 만남의 장입니다

근데.....진짜 정성스러운 리뷰네오 르캉님 글 보니까꼭 봐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

ㅋㅋㅋㅋㅋ유림님이랑 즐거운 데이트 하셔요!!! 히바님의 정성어린 댓글에 제마음도 감동...★

.............. 리뷰가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겠어 라는 호기로움으로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_^ 그치만 전 오늘 밤10시전에 자고 발도 이불속으로 꽁꽁 숨겨두고 잘거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 하아, 오늘 잠 못자겠는데요? ㅠㅠㅠㅠ

사ㅓ진들 제가 댓글쓰러 다시 들어오다가도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어우 무서워!!! 발 조심하셔도 이불 속도 조심하세용 쓰윽 나온다구요 히이이이익!!

최근에보고싶은 영화 없었는데 이건 꼭 보고싶었는데 너무무서울거같아요ㅜㅜ

그렇게까지 무섭진 않아요!!! (라고 희생자를 구한다)

래퍼귀신...ㅋㅋ
입을 빠르게 움직이며 발음했던 게 '412호'였군요..ㅎ
곤지암에서 그나마 무서웠다면 래퍼귀신 장면이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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