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밤] 정호승, 폐지(그리고 일상)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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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르캉입니다:) 오늘은 기록적인 호우가 내리고 있는데요. 며칠 전의 가뭄 걱정이 무색해지게 이제 호우주의보까지 발령이 났어요. 정말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마냥 쏟아지네요!

처마 밑에서 쏟아지는 비와 천둥 번개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외로워지곤 하죠. 이런 날 생각나는 시 하나가 있어요. 정호승 시인의 시, 폐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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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산 밑
허물어진 폐지 더미에 비 내린다
폐지에 적힌 수많은 글씨들
폭우에 젖어 사라진다
그러나 오직 단 하나
사랑이라는 글씨만은 모두
비에 젖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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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글씨들이 지워져도 사랑만은 결코 지워지리 않으리. 비가 아무리 내리고 내 모든 것을 허물어뜨린다고 해도 사랑만은 결코 쓸려내려가지 않겠다는 시에요.

여러분도 지워지지 않을 단어가 있나요?

저는 사람이란 단어가 그래요. 아무리 빗물로 씻어내려고 해도 사라지지 않죠. 심지어 ㅁ을 ㅇ처럼 흘려쓰는 사람도 있어, 사람을 사랑으로 착각한 적도 있었어요.

빗소리가 더 강해지고 있어요.

지하에서 한참 캘리그라피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갑저기 번개가 치더니 불이 다 꺼지는 거에요. 퓨즈가 나갔는지 차단기가 먹통이 됐는지 물이 새는지... 깜깜해서 제 손도 안보이더라구요. 내일 아침에나 수리가 가능할 것 같네요.

이런 망할. 아침에 할 일이 하나 더 늘었어요. 심지어 컴퓨터도 먹통이라 이거 못 고치면 진짜 심각한데요.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없다는 건 확실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내일로 미루고 자야겠어요.

빗방울이 사랑은 두고 걱정이란 글자들을 지워주길 바라요. 여러분들도요.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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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밤 음악을 들으며 시를 읽으니 감동이 두배가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시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시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시를 더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죠. 종종 찾아뵐게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릿한 느낌을 주는 시네요. 오늘 밤이랑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 비가 진짜 사랑만 남기고 모두 다 지워주길...

하지만 현실은 지하 1층 카페 침수와 차단기 나감만을 남겨버린... 아픔과 귀찮음만 남아있습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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