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기록하는 나날들

in #kr2 years ago (edited)



2022.04.12



 일상을 주로 기록하는, 힘이빠진 글을 쓰는 때가 절실했다. 그마저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엔 <코로나시대 한국의 재즈신>을 울면서 마감을 했다. 잠시 쉬자고 결심한 후, 정말 줄기차게 머리속에 담겼던 여러 단상들을 적당한 필터를 거쳐 마구잡이로 쓰던 요즘. 기고하는 글과 일상 글 환기가 필요한 글 누군가의 말을 통해야 나오는 글 또는 읽어야 쓸 수 있는 글 등 사이를 왔다갔다 널뛰기 하며 그냥 잡히는대로 글을 썼다.

 지난 주엔 교환레슨을 네 달째인가 쉬다가 다시 재개했다. 오미크론 관련 정책도 슬슬 풀리고 있는데다가 더이상 연주를 쉬면 안될 것 같다는 무의식적인 위기감을 피아니스트와 함께 느꼈기 때문이다. 아란님과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듀오로 활동해오며 코로나 시기에 시작한 팀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다양한 무대를 섭렵해왔다. 마지막 공연이 아마도 라디오 라이브 출연이었는데 반응이 좋아 유투브 채널에 올라가기도 하고, 둘이 함께 찍은 프로필 사진도 아직 여기저기 쓰이고 있다. 프로필 촬영때 에피소드도 각잡고 쓰면 원고지 열 장은 나올것 같은데 엄두를 못내고 있다. 앞으로 재개할 레슨은 주 1회로 정했다. 연주가 잡히면 리허설은 레슨시간 외로 따로 잡는다. 몇달만의 레슨에 서로 정신 못차리기는 마찬가지. 어우 얼마만에 호흡연습하는거야 숨을 못쉬겠네. 어우 얼마만에 눌러보는 건반이야 손가락아 힘을 내.

 다시 연습에 들어간 연주곡은 liberetto. 연이은 같은 자리 노트가 많은 곡이라 터치연습에 도움이 된다. 코드와 베이스가 심플할수록 (그만큼 채워야하니) 연주는 어렵지만 그만큼 집중한다면 빨리 늘 수 있고 게다가 한 번은 꼭 완곡하고 싶었기에 재개한 것이다. 동시에 바카이, 스탠다드곡 컴핑 등 총 세곡을 손에 다시 ‘익히기’를 목표로 삼았다. 기한은 다음주까지. 서걱거리는 손과 어깨와 허리는 다시 고통을 받을 예정이다.


 창문을 열어두고 있는데, 봄내음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정도의 긍정성을 품고 있는 마음이라면, 뭐든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사랑이 부족하다면 부족한대로, 쉼이 부족하다면 조금은 느린 속도로 살아내면 되니까.

전력을 다해 소진한 상태와도 같았다. 해외 출장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고, 그 도중에 전력질주해 겨우 마감을 끝냈다. 마지막 주에는 울면서 작업을 했다. 잘하고 싶은 내 자아와, 끝마쳐야 한다는-그 어느것도 놓을 수 없다는 압박감과, 실제로 기준에 차지 않는 결과물들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또 현실과 부대끼면서 혼돈의 시간을 통과했다. 한동안은 작업을 할 수 있음에, 동시에 바쁘게 사는 진취적인 시기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취해 감사하면서도 우울증 약을 다시 복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상담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약을 받기는 했지만, 복용은 하지 않았다) 겨우 작품을 완성하고 귀국한 후에는 여러 외부적인 갈등들로부터 대립해야 했고, 고민끝에 내린 결정으로 겨우 자유의 몸이 되었을때에는 창작의 불을 다시 지필 새도 없이 내 주변의 고단함에 물들어 한없이 우울한 현실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삶 속 그 어느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기운이 새롭게 솟아나기를 기다릴 수도, 그렇다고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작업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생계를 멈출 수도 없던 지점. 한 작품의 끝을 보고 난 후의 나는, 다름아닌 사랑과 회복 그리고 시간이 필요했다. 내 안의 수없이 많은 면들을 어떻게 단조롭게 드러낼 것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멈추지 않고 살아낼 방안을 찾아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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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시는 분이셨군요. 멋지시네요 ~ 음악을 잘 모르는 1인인데 .. 제가 잘 모르는 분야를 하시는 분들을 뵈면 경외감이 들더라구요 ~ ^^ . 부럽습니다. ~

코로나 시기에 연주를 잠시 쉬어야 했던 사람들 중 하나로서, 앞으로는 전망이 좀 나아지기를 바라고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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