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이르게 찾아온 것들

in #kr6 years ago (edited)

도착한지 1주가 조금 넘었는데, 마치 한 달은 지낸 듯하다.
그만큼 많은 일들이 하루에 몇 차례씩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영어가 자유롭지 않은 외국인으로서 똑똑한 미국인 친구들과 부딪치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7할의 설렘과 흥분 그리고 3할의 걱정과 어려움.
출국이 결정되고 이 곳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비율이 긍정적으로만 기울었다면,
점차 안 좋은 감정들도 생겨나고 있는 적응 과정.

오늘의 문체가 조금 차분한 이유는,
처음으로 타지 생활의 어려움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날이기 때문.

어제 저녁에는 하교 후, 이사 때문에 가구 및 집안 물건을 몽땅 다 판다는 중국인을 만났다.
굳이 거주 중인 집에 와서 집에 어울리는지 직접 확인하고 사라는 말이 처음에는 호의로 느껴졌다.

건들건들한 포즈와 제스춰로 (discriminate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영화 속 건달같은 이미지)
물건을 가지고 들어와서는 공격적인 세일즈 공세를 1시간 넘게 이어가길래,
필요하지 않지만 있으면 좋을 것들로 구입하고는 내보냈다.
아마존 최저가 기준으로 흥정은 당연히 했다.

그런데, 오늘 그 사람의 느닷없는 문자가 시작되었다.
너무 싼 가격에 준 것 같으니 돌려달라는 것.

황당하기도 했지만 수업 중이라 오후 6시까지 답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같은 문자와 전화.

오늘 하루만 열개가 넘는 문자를 받고는 불쾌함을 넘어
집에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자연히 하게 되었다.

x을 제대로 밟은 것 하하.

그런데, 오늘 나를 괴롭힌 것은 불안감이나 불쾌감이 아닌 다른 종류의 감정이었다.
걱정이 되는 마음에 한국인 동기들의 단체 채팅방에 이 이야기를 꺼낸 후의 찾아온 외로움이었다.
고작 몇 주 전부터 알게 된 사이지만 의지하고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동기들은,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상한 중국인의 협박성 문자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바로 이 것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마음을 나눈 친구들의 등을 본다는 것은
한국과 미국을 가로지르는 태평양의 거리가 문득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
그런 것

두 번째 유학일기가 이렇게 유치해질 줄은 몰랐다.
다음에는 좀 기운나고 밝은 이야기로 흥미진진하게 글을 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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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인가요, 교환학생 생활하며 손수 썼던 그때의 일기장이 이제는 어디로 간건지 찾을수가 없어요, 기억이란게 참 물러서 기록하지 않으면 모든걸 잊어버려요, 이렇게 글로 유학일기 쓰는거에 대해서 진심으로 추천드리고 귀찮아도 꾸준히 쓰셨으면 합니다. 엄청 큰 추억이 될거에요. 소소하지만 보팅 드리고 갑니다.

아이고..무서웠겠어요. 나도 모르게 의지하던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거 뭔지 알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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