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이 땅의 남자들이 불쌍해지는 이유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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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두 달 전쯤 학교에서 큰 행사가 열렸다. 외부 강사를 초청해 학부모님들을 대상으로 ‘내 아이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특강을 했다. 교사들은 행사 준비에 투입되어 자기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특강이 시작되자, 동분서주 하던 교사들은 강당 뒤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몇몇 선생님들은 자리에 함께 앉아 특강을 경청했고, 몇몇은 뒤에 서서 들었다. 난 뒤에 서 있던 한 무리의 교사 중 한명이었다.

 내 옆에는 30대 초입의 남선생님이 서 있었다. 우리는 가볍게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이내 깊은 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고민은 ‘별 하는 것 없이’ 시간이 지나가고, 아직 미혼이라 시간은 많은데 막상 뭘 하려면 귀찮고, 뭘 배우거나 시작해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허감을 느끼고, 뭘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질 못해서 초조하다는 것이 요지였다.

 또 내가 만난 어떤 교장선생님은 교장으로 발령받기 전에 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했는데, 장학사 시절에 일중독처럼 주말도 없이 일을 하다가, 교장으로 발령받아 토요일이 되어 쉬려고 하니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몰라 한달 정도를 괜히 물병을 들고 약수터만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 남자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얘기를 들을 때, 예전에 책에서 봤던 존재 확인 방식에 대한 내용이 떠올랐다.

존재 확인 방식

 일생을 살아오면서 자기 존재를 '사회적 지위'로 확인해 온 남자들은, 끊임없이 존재의 불안을 느낀다. 자기가 살아있음을,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는 매개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사회적 지위’라는 존재 확인 방식은 계속 지속되지 않는다. 그 지위가 사라지면, 그 사람에겐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남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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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존재 확인 방식 때문에 이 땅의 남자들이 불쌍해지는 것이다. 반면 건강한 삶을 사는 남자들은 나의 존재를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로 확인한다. 그런 방법으로 존재를 확인하면, 사회적인 지위가 사라지고, 내 주위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더라도 마지막 붙잡을 수 있는 존재 확인 방식이 남게 되는 것이다. (‘존재 확인 방식’은 남자로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남자로 특정한 이유는, 잘못된 존재 확인 방식에 빠져 살아가는 이의 대부분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이는 운동을 하고, 또 다른 이는 클래식을 듣고, 누군가는 글을 쓰며, 누군가는 커피를 볶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것은 단순히 ‘꿈’과는 다르고, ‘취미’와도 구별된다.

 ‘꿈’은 붙잡기 위해 달려가는, 저 멀리 있는 무엇이다. 하지만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는 나의 일상에서 수시로 시도하고, 내가 하는 일과 상관없이 골방에서, 광장에서, 공원에서, 길가에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시도하는 일이다. 물론 그것이 꿈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취미’와 다른 까닭은, ‘취미’는 수시로 바뀌고, 하다가도 그만 둘 수 있지만, 존재 확인 방식은 일생을 두고 계속된다.

 그림이 그저 취미인 사람은 내일에라도 사정이 생기면 붓을 놓을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은, 붓을 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삶의 의미를 놓쳐버린 사람처럼 실의에 빠진다. 글 쓰는 게 존재 확인 방식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운동도 음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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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일을 그저 취미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은, 그 행위가 존재 확인 방식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야, 음악 좀 쉬면 어때? 라고 쉽게 말하는 것이다. 야, 그까짓 그림, 나중에 성공해서 다시 그리면 되지! 라고 말한다. 존재 확인 방식인 사람에겐 당장 하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주인공들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발버둥 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존재 확인 방식이 다를 뿐이지, 다 한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영화들이 있는 것이다. 당장에 기억나는 영화들만 해도 손가락이 모자라지만, 내가 특히 좋아하는 3편 정도만 소개한다.

 송강호가 주연했던 <반칙왕>. 평범하고 소심한 회사원인 주인공은 퇴근하고 밤마다 (프로레슬링)을 배우러 다닌다. 프로레슬링의 세계에서 ‘반칙왕’의 캐릭터가 되지만 그는 프로레슬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한석규가 주연했던 <음란서생>. 번듯하고 평범한 선비인 주인공은 밤마다 (이야기)를 쓰는데, 그것은 ‘야설’이다. 그 야설은 저잣거리에서 엄청난 흥행을 하게 되고, 작가를 찾는 문의가 빗발친다. 주인공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하다.

 일본 영화 <쉘 위 댄스>. 평범하고 소심한 회사원인 주인공은 퇴근하고 밤마다 (사교댄스)를 배우러 다닌다. 그는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사교댄스를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쩜쩜쩜. 괄호만 바꾼 영화들이 즐비하다. 이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방해받지만, 끝내 자신이 즐거워하는 그 일들로 존재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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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초점

 앞의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시켜보자. 일이나 사회적 지위에 생의 의미를 둔 많은 이들이 어떤 일을 이루고 난 뒤에 공허감을 느끼고 삶의 흥미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그들의 소망이, ‘무엇이 되고 싶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소망대로 무엇이 되어버리면, 더 나아갈 길이 없다. 이미 되어버린 그 '무엇'을 옷처럼 입고 배회할 뿐이다. 경험해 본 적 없는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이루었는데, 이내 공허해졌던 것 말이다. (‘꿈’이라고 불리는 것을 이루기 힘든 시대에 살다 보니, 허망해져도 좋으니 그거 한 번 이루어 봤으면 좋겠네, 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 걸로 예상된다. 하지만 꿈을 이루고 나서도 공허하다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소망의 명제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무엇이 되고 싶다’ 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앞의 '무엇'은 역할이나 지위 따위를 의미한다. 뭔가를 소유할 수 있는 자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명제는 자신의 꿈을 현재 진행형이 아닌, 최종으로 결정된 자리에 둠으로써 더 나아갈 곳이 없게 만든다.

 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것은 꿈을 계속 살아있게 만든다. 쉽게 도착하기 어려운 지점임과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무엇이’ 되지 않아도 생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물리적 성취보다 영적, 정신적 성취에 가까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격과 성품의 성장도 포함한다.

 예를 들면, ‘의사가 되고 싶다.’ 와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명제의 차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 와 ‘다른 사람들에게 글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명제의 차이다. ‘화가가 되고 싶다’ 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림으로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명제의 차이인 것이다.

 이 명제 차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 앞의 명제는 작가나 화가가 되고 나면 더 나아갈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후자는 ‘무엇이’되든 되지 못했든 그 길은 끝없이 열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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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 여기에서, ‘나는 글로 타인의 마음에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명제를 품고 글을 쓰는 이상, 현재 내 꿈은 이루어지고 있으며, 훗날 내가 프로 작가가 된 후에도, 그 꿈은 변치 않고 이어질 것이다. 죽을 때까지. 펜을 놓을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내 꿈은 시들지 않고, 계속 나 자신에게 성장의 동력을 주게 된다. 설령, 프로 작가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현재 글로 타인의 마음에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므로, 삶의 의미를 품고 걸어갈 수 있게 된다.

 당신은, 꿈을 생각할 때 어떤 명제를 가슴에 품는가.

대화

 특강이 끝나고 강사님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올 때까지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난 그 선생님에게 존재 확인 방식과 소망의 명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내 꿈과 삶의 근황도 나누었다. 그 선생님은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그저 가슴에 묻어 두었던 ‘밴드’ 활동을 가슴에서 끄집어내기로 했다. 예전에 잠깐 배우다가 접은 기타를 다시 배우기로 했다.

 난 이곳의 모든 이들이, 특히 남자들이, ‘사회적 지위’나 ‘돈’ 같이 이내 사라져 버릴 것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지 않기를 바란다. 건강한 존재 확인 방식을 갖기 바란다. 그리고 내가 무엇이 될까, 보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더 고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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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존재를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로 확인한다. 그런 방법으로 존재를 확인하면, 사회적인 지위가 사라지고, 내 주위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더라도 마지막 붙잡을 수 있는 존재 확인 방식이 남게 되는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본업으로 벌이가 시원찮더라도 늘 눈을 반짝이며 역사공부를 하시는 저의 아버지와 일치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심지어 어느 날은 대학교에 초청되어 강연까지 하셨지요. 내가 즐거워하는 일로 존재를 확인한다. 그래서 그렇게 어깨를 피고 사시나 봅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것은 꿈을 계속 살아있게 만든다.

사실 저는 '여행하며 요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꿈을 꾸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는데 열정을 잃어버린 경우입니다. 뒤이어 예를 드신 명제들처럼 '타인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적은 없었던 탓인가 싶기도 합니다. 댓글이 너무 길어 죄송합니다^^; 이 곳은 밤이라 적적해졌는가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존재 확인 방식을 가진 아버지를 가까이서 뵙고 있군요! 단순한 취미가 아니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이므로, 쉽게 멈추지도 움츠러들지도 않으실 겁니다.^^
다시금, 여행하고 요리하며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기로 작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번 뿐인 삶입니다. 주먹 쥐고 함께 나아갑시다! ㅎㅎ
본인의 진솔한 경험을 글에 덧대어 주셔서 글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어요.
'직업'으로 저를 규정짓지 않고 "책과 영어와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랍니다. 직업은 있다가도 없지만, 책/영어/글쓰기는 제 존재확인을 할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

같은 생각이셨군요~!^^ 좋습니다. 브리님과 저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는 꿈과 함께 살고 있네요!
이곳에서 존재 확인의 빈도를 높여가고 그만큼 꿈의 기둥도 든든히 서가는 것 같습니다. 함께 갑시다ㅎ

리스팀 해두었다가 다시 읽어봤습니다. 어찌 보면 나의 존재확인 방식이 이 곳에서 글을 쓰는 행위네요~ 차분한 어조로 마음을 울리는 글 잘 읽어보고 안 어울리는 반응이지만 가즈앗!! ^^

네 이곳에서 글을 쓰는 게 존재 확인 방식이라면 아주 건강하신 분입니다ㅎㅎ 격려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존재 확인 방식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드네요-

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할 거리를 드렸다면 기쁩니다.ㅎ

마음의 영향을 받은 1인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따뜻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전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거네요^^ 감사합니다ㅎ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현재 저는 답을 할 수 없군요 ㅠㅠ

하면서 가장 즐겁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일을 꼭 찾으시길 바랄게요!^^

저희 남편에게. 그리고 지인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줄까 하여 리스팀합니다. 좋은 글 감사 드려요~~

감사합니다^^ 팔로우할게요. 자주 뵈어요!

글을 보니 좀 쉬고 싶어집니다.

충전이 필요하신가 보네요!^^ 쉴 여유가 생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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