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연약함과 외로움에 대한 소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다들 보고 한 마디씩 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았다. 내 관점에서 좋았던 점 몇 마디를 보태고, 영화가 던진 생각의 씨앗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건, 영화가 프레디 머큐리의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었다. 퀸의 몇몇 히트곡이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것, 심장을 때리는 퀸의 노래들이 극장에 서라운드로 울리던 것, 노래만으로 묵직한 감동을 주던 영화 후반부의 콘서트 무대 장면 등도 참 좋았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이견을 달 수 없는 레전드, 프레디 머큐리를 신비화하거나 희화화하지 않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 그린 것처럼 보였다. 그는 흠 있고 외롭고 연약한 보통의 인간이었다. 음악에 대한 천재성이나 성적 지향을 빼놓고는, 옆집에 뿔테 안경을 끼고 살 것 같은 인물 말이다. (이 같은 느낌은 주연 라미 말렉 특유의 큰 눈과 선한 눈빛 때문에 더 강화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라미 말렉은 프레디 머큐리 이미지의 재창조에 기여한 것이 된다. 일정 부분 그렇다고 생각한다.)
프레디 머큐리는 흔들리고 충동에 약하며, 때론 의리를 지키지만 또 어느 때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등 돌리기도 하는, 인격적으론 비범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인물이다. 실제 모습인지, 캐릭터에 각색이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영화에서 본 프레디 머큐리는 영화 내내 우주 대스타의 위치가 아닌, 내 마음의 지근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작사한 종이를 촌스러운 옷 주머니에 쑤셔 넣고 대학생 밴드가 무대에 오르는 공연장에 드나드는 앞 장면부터, 그는 꿈을 품은 미숙한 한 인간으로 비춰졌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미숙했다. 그 모습은 영원히 모자람이 있을 것 같은 나의 모습이 투사될 정도로 위화감이 없었다.
외로움을 해결하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죽음에 직면해서도 진짜 친구를 찾아나서는 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과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을 그 역시 고스란히 느꼈음을 이 영화는 담담히 보여준다. 성적 지향과 상관없이 그가 느끼는 관계의 공허함과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을 채우려는 갈망은 모든 인간이 평생을 두고 몸부림치는 것 아닐까.
우리는 모두 마음의 빈 곳을 채우려는 갈망을 가지고 있다.
공연 장면에선 어느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 못지않게 손에 땀을 쥐었다. 난해하지 않은 문법과 모두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스타의 삶을 그리고 있어서 새로움을 느낄 순 없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내용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고 투박하지만 묵직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외롭다는 것
거대한 성공을 이루고도 누군가는 홀로 소파에서 잠이 든다. 한 집에서 먹고 잠을 자더라도, 우리 중 많은 이들의 외로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많은 선각자들은 이미 깨닫고 노래해왔다. 친구가 많다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인간의 힘으로 근원적인 외로움을 메울 수 없다는 건 이미 입증되어 왔다.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된 인류의 증언에 의해서 말이다. 그럼 친구나 배우자, 혹은 영혼의 동반자는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외로움에 관한 한 그들의 역할이 있다. 바로,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주는 것.’ 이다.
우리는 서로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해결해줄 순 없지만, 서로를 깊이 들여다보고 상대가 느끼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알아줄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도 나처럼 외롭구나. 네 마음을 알 것 같아. 네가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
완전한 처방은 아니지만, 나의 상태를 알아주고 건네는 한 마디에 우리는 큰 위안을 받는다. 외로움을 잠시 잊을 정도로 말이다. 가슴에 큰 구멍을 가진 연약한 우리들은 그렇게 서로 위안을 주고받으며 마음의 손을 붙잡는다.
근원적이고 전 우주적인 외로움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상태로, 우린 그렇게 때때로 쓸쓸하고, 때때로 누군가로 인해 따뜻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이가 들수록, 때때로 느낄 법한 그 따뜻함과 위로조차도 적어진다. 내게 위안을 주던 존재들도, 반쯤 떨어져서 바람에 파닥거리는 문풍지처럼 위태롭다. 서로의 문풍지가 되어주던 우린 저마다의 삶에 분주하고, 또 각자가 돌봐야 할 존재들이 늘어나면서 멀어지고, 우린 각기 외로움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나를 파괴하거나, 문란한 방법으로 그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실제 프레디 머큐리가 맞은 결말은 그것을 제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가슴을 부여잡고 조심스레 주변을 돌아보는 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얇은 문풍지라도 되어 줄 수 있을까를 살피는 일이다.
방금 경아님의 영화 리뷰 글을 읽고 왔는데 여기서 보니 또 다른 생각과 관점들이 보이네요- 제가 보면 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의 씨앗들을 품게 될 지 궁금해집니다.^^
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겠지요^^ 저도 순전히 저에게 크게 다가오는 부분을 확대시켜 쓴 것이니, 송블리님에겐 또 다른 의미들이 마음을 노크할 거라 생각해요ㅎ
키슬님께
보헤미안 랩소디 노래와 같이 스크롤 내리며 보면 좋을 그림을 추천합니다.
http://m.dcinside.com/board/hit/4834
11년전 게시글이라 성지글이 되었오용🤗
'보헤미안 랩소디' 노래를 만화로 만들었군요. 흥미롭네요.ㅎㅎ
감상 잘 봤습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ㅎ
정말 띵작인가보내요
꼭 보고 싶습니다~^^
네 정말 띵작입니다.ㅎㅎ 극장에서 보시는 걸 강추합니다!
마음을 울리네요. 크..
이 영화 재밌습니다. 시린님이 보시면 또 다른 감상이 나올 듯요.ㅎ
흐흐 요 글 영화보고와서 또 읽어봐야겠어요 :)
영화 꼭 보시고, 오세요.ㅎㅎ
신농님의 영화 감상도 올려주시구요.^^
으엇 이 글 보팅 열 번 해드리고 싶을만큼 좋아요. 글로 표현하지 못했던 제 마음 속 남은 여운을 모두 담아주셨군요.
사람은 모두 비슷하고 그 틈을 보면 안아주고 싶어요. 프레디를 꼭 안아주고 싶었던 영화 ㅠㅠ!!
하핫.ㅎ 고물님이 좋아해주시니 기분 좋네요.
프레디 역을 한 배우의 눈이 넘 선하다는 이유로 캐스팅에 논란이 좀 있었더라구요. 그럼에도 영화가 실제 프레디 머큐리의 캐릭터와 삶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틈이 있는 남자 프레디 머큐리,, 고물님에게 안기는 영광을! ^^
저는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어떤 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지도 모르지만.
네 술도, 다른 방법도 임시 방편이죠. 심하면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하구요^^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가서 봐야겠어요~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주는것'
고민중인 일이 있었는데 이 문장을 보니 이제 고민은 그만해야겠네여~ 감사합니다^&
네 생생한 사운드를 생각하면 극장에서 보는 게 좋습니다ㅎ 꼭 극장서 보시길요^^
외로움에 대한 고민중이셨나요. 이 글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ㅎ
외로움은 늘 동반하는거 같아요... 혼자 있는데 외로운거 모르기도 하고, 함께 있음에도 더 외롭기고 하고...
네 때론, 함께 있을 때 더 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요. ㅎ
갑자기 그대가 곁에 없는데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
이런게 생각나네요~~ 오늘도 굿밤되세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는
'그대가 곁에 있어서 나는 외롭다' 보단 사정이 나은 거겠죠? ㅎㅎ
초록사과님도 좋은 밤 되세욧.
아..... 그런가요? 생각도 못 했는데;;;;
제가 혼자라 잘 몰랐어요... 슬픈얘긴데 자꾸 웃음이 나서 죄송해요
저도 리뷰로 대세에 합류할려고 했는데 음,,,, 이 글을 보고 생각을 다시....
이 글은 본격 리뷰라기보다 영화를 통해 얻은 생각을 중심으로 쓴 에세이예요. 유니콘님의 본격 리뷰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