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을 보고.

in #kr8 years ago (edited)
  • 스포일러랄 것이 없을 영화이긴 합니다만, 영화 광고에 잘 등장하지 않아 보면서 깜짝 놀랄 만한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니 읽기 전에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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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연극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감상을 올린 바 있습니다. 해당 연극은 '1991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연극을 보는 도중에, 영화 <1987>을 썩 유쾌한 기분으로 보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1년'은 '1987년'의 실패 이후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연도니까요. 반쪽짜리 민주화, 여전했던 공안 통치, 그리고 체제 내화 된 과거의 청년들의 이야기. <1987>이 어떤 영화든, 그 이후의 역사를 돌이켰을 때 감동은 할지언정 시원한 느낌을 받긴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예상 그대로랄까요. 분명 흡입력 있고 몰입감 넘치는 영화였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그날이 오면'이 울려퍼질 때 저도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는 그런 영화였습니다만 감동보다는 씁쓸함이 더 많이 남는 영화가 아니었나 합니다. 그건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 문제라기 보다는,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일단 이 영화는 너무나도 많은 폭력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폭력의 대부분은 대공수사처장인 박처원과 그 부하 경찰들의 몫이죠. 박처원 역을 맡은 김윤석의 연기력은... 원래 연기 잘하는 배우지만 정말 역대급 연기였던 것 같습니다. 박처원은 평면적인 악당이 아니에요. 월남하기 이전, 어린 시절에 자신과 가족들이 당했던 '빨갱이'들의 폭력이 그의 원초적 기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세상은 '빨갱이'와 '애국자'로 나뉩니다. '빨갱이'를 잡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도 정당화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단은 주로 폭행, 고문, 조작 등이죠.

일반적인 국가라면, 어찌되었든 공무 상의 사건 처리에 대해서 '업무 협조'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박처원과 그의 나라(그리고 1987년의 대한민국)는 그러한 '정상 국가'가 아니죠. 법적으로 수사에 대한 지휘권은 검찰에게 있지만, 박처원과 경찰 대공부서는 검찰의 지휘를 폭력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보타주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처벌도 불가능하죠. 그뿐 아니라, 심지어 경찰 지휘 계통의 상관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적대하면 바로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거의 액션 영화에 가까운데, 특히 가장 '액션 영화'에 가까운 장면은 고문 살인 용의자인 대공 경찰들을 다른 경찰 부서에서 체포하자, 박처원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부하들이 잡혀 있는 곳을 습격하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박처원의 세계에서 법과 관료 체계는 의미를 잃습니다. 오직 물리적 폭력, 그리고 '쿠데타'를 통해 그 폭력의 정점에 서 있는 '각하'와의 거리가 중요할 뿐입니다.

이러한 '액션 영화'의 세계에서 폭력에 맞서는 주요한 인물들로 검찰과 언론, 그리고 의사들이 등장합니다. 검찰은 법으로, 언론은 취재와 펜으로, 의사들은 전문적인 의학 지식으로 물리적 폭력의 세계에 맞섭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느꼈습니다. 혹자들은 이 영화가 '386 세대'의 승리 선언이 아니냐, 하고 평하지만 저는 오히려 '물리적 폭력'에 의한 지배를 '엘리트와 전문가'들에 의한 지배로 대체하는 순간을 그린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대생'의 죽음으로 시작한 영화는 '서울대 출신 검사'의 분노, '연세대 출신 기자'의 취재, '서울대 출신 의사'의 제보, '고려대 출신 법의학자'의 증언 등으로 이어집니다. 언제까지 군바리들 비위를 맞춰주고 언제까지 경찰들에게 오냐오냐해줄거냐는 최 검사의 대사는 나름의 디테일을 살린 것이겠지만, 오히려 '검찰 공화국'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오늘 날의 상황을 슬쩍 집어넣은게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게 만듭니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연결시켜 감동을 자아냅니다. 훌륭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굳이 이한열 열사를 등장시키기 위해 연희라는 캐릭터를 연세대 학생으로 설정할 필요까지 있었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당시 투쟁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학생 운동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겠지만, 저항과 투쟁에 대한 냉소와 불신에서 저항의 능동적 주체로 전환하는 영화 내의 유일한 가상 인물인 연희마저 연세대생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전국민적인 저항 운동이었던 6월 항쟁의 주체들을 너무 협소하게 조명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이한열 열사의 추모식에서 문익환 목사의 유명한 연설이 실제 영상으로 나옵니다. 그 연설에서 문익환 목사는 광주의 2천 영령과 함께, 스물 다섯 분의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짖습니다. 이 스물 다섯 분 열사들 중에서는 장준하와 같은 재야 운동가나 박종철, 김세진, 김의기 등 학생운동가들도 있지만, 전태일, 김경숙, 김종태 등의 노동자들의 이름도 있습니다. 실제로 1987년은 6월 항쟁 이후 전국에서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조합들이 대거 결성, 이전까지 유명무실했던 노동자들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계기로 이어지기도 했지요. '1987년'을 다룬 영화로서 <1987>을 볼 때 제가 좀 아쉬운 것은 그러한 역사들을 좀 더 폭 넓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개인적인 아쉬움을 제외한다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의 과정을 복기한 작품으로서 영화적 구성이나 디테일한 복선들, 영화 전개에 따라 대비되는 장면 연출 등이 정말 '웰-메이드' 된 영화로서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영화에서 계속 등장하는 고문과 폭력의 장소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재 경찰청이 운영하는 인권센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청에서 인권센터를 대중들에게 제대로 오픈하지 않고, 평일에 제한된 시간에만 공개하는 등의 문제가 계속 지적되고 있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직접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꾸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진행되고 있으니 관심 가는 분들은 청원 참여 부탁드립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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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c8394님 안녕하세요. 별이 입니다. @eversloth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많이 기대했던 작품인데...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의미있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네요~~

의미도 있고 만듦새도 좋고... 특히 연기파 배우 올스타전 느낌이 들 정도로 훌륭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서 좋았습니다. 다만 <지구를 지켜라>에서 보여주었던 장준환 감독의 날카로운 사회 인식이 좀 덜 드러나는 듯해서 개인적으로 약간 아쉬웠네요 ㅠ

Wow . It's great language...D

저는 여러 걸리는 점 때문에 보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ㅠㅠ 1년에 영화 몇 번 안 보니까요...
@홍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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