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ke의 WOC 체험기(2)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8 years ago

안녕하세요 Cake입니다!! 오늘도 이어서 WOC 참가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가기에 많은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큐리는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ㅎㅎ

화요일에 발뻗고 편히 잠든 뒤, 수요일 아침을 맞았습니다. 선수들은 9시까지 대회가 열리는 호텔 연회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넉넉히 잡고 7시 40분에 다른 한국 대표분들과 합류하여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다만 의외로 일본에서 밥 나오는 시간이 굉장히 빨랐기 때문에, 밥을 먹고 연회장으로 가니 8시 25분정도밖에 안 된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다른 나라 선수들이 한명한명 오면서 그럭저럭 대회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긴장이 맴돌았고 저 또한 굉장히 설레는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으로 대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9시가 되어 연회장 안으로 입장하게 되었습니다. 대결 상대는 어제 발표되었던 대로 독일의 조르그 가트너라는 분이었습니다.

전날 밤에 상대의 전적을 훑어본 바로는, 약한 상대는 아니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상대였습니다. 다만 첫 세계대회 경기라는 점과 상대가 외국인이라는 점 또한 저에게는 더 긴장되는 요소로 다가왔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긴장도 풀 겸 이번 대회가 처음이고 굉장히 긴장된다는 말을 했더니, 조용히 웃으시며 잘해보자는 뉘앙스로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의 경우 경기 시작 전에 잘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을 하는데, 세계대회에선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더니 굿럭이라 말씀하시며 악수를 청해 오셨습니다. 세계대회에선 다들 그렇게 하는 모습이 주변에도 보였습니다.

사실 긴장 탓을 하는 것은 완전히 변명이지만, 저로서는 그 당시 너무 긴장이 되어서 돌을 가져가는데도 손이 덜덜 떨리곤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돌을 둔 뒤엔 시계를 눌러서 자신의 시간을 멈추고 상대의 시간을 가게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긴장하면서 첫 게임을 끝냈는데, 결과는 설마설마하는 무승부가 나왔습니다. 살짝 아쉬운 결과였습니다.

이후 연회장 밖으로 나가서 숨을 좀 돌리고 다음 라운드 페어링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1라운드에서 비긴 경기가 제 경기와 삐아냣 아운출리와 브라이언 로즈(Brian Rose, 미국)의 경기밖에 없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삐아냣에 대한 설명은 전 글에 드렸고, 로즈의 경우 전세계 오델러들의 필독서(?)인 브라이언 로즈의 오델로 교본을 써 낸 사람입니다. 세계대회 우승도 몇 번 해 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쨌든 2라운드에선 그 둘 중에 한명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2라운드 매칭은 삐아냣 아운출리 선수와 되었습니다. 어제 연습경기에서 만나서 크게 진 상대이기도 하고, 오델러라면 누구나가 다 아는 세계적인 선수란 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 주눅이 든 상태에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제가 나름대로 준비한 정석대로 두었으나, 이미 삐아냣은 제가 연구한 길을 그 이상으로 알고 있는 듯, 제가 3분씩 고민하던 수를 3-4초만에 받아치곤 했습니다. 결과는 50-14로 패배, 삐아냣 선수는 시간을 5분도 채 쓰지 않았습니다. 정말 세계 최고의 벽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삐아냣 선수는 준비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전 글에 밝혔듯 결국 우승까지 해냈습니다.


2라운드를 지긴 했으나 애초에 질만한 상대한테 진 것이라 힘이 빠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다른 한국 대표들과 담소를 나누다 3라운드 페어링을 보았습니다. 길즈 클루존(Gilles Cluzon, 프랑스) 선수와 매칭이 되었습니다. 3라운드정도 되니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1, 2라운드 때보다 더 여러 가지가 잘 보였습니다. 결과는 49-15 승으로 WOC에서의 첫 승을 따내던 순간이었습니다.


3라운드 이후에는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점심은 협회에서 제공되었는데 일본식 도시락이었습니다. 양이 많은 것 같지는 않지만 먹고 나니 적당히 배가 불렀습니다. 점심시간이 충분히 길었기에 점심을 먹은 후 한국 대표들이나 어느 정도 말을 나눈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담소를 좀 나누었습니다.


밥을 먹고 조금 쉬고 나니, 토마스 두다(Tomáš Douda, 체코) 선수와 매칭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선수의 경우 제가 원래는 이름을 모르고 있었으나 급하게 찾아 보니 세계 레이팅이 꽤나 높은 선수였습니다. 당시 제가 세계레이팅이 1590-1610 수준이었는데 두다 선수는 1900 이상이었습니다.

긴장감이 다시 몰려왔습니다. 처음 얼굴을 보고 긴장을 풀고자 말을 걸었는데, 저는 WOC가 처음이라 하였더니 자신은 이번이 11번째 참가라며 잘 해보자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긴장이 다 풀리지 않았는지, 처음 몇 수를 둘 때에는 손이 굉장히 떨렸습니다. 그래도 차분히 받아 나가다 보니, 오히려 상대가 당황하는 기색이 보였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만만하게 보여서 그런지 오히려 초반에 적당히 두어나가던 것이 독이 되었나 봅니다. 마지막까지 차분하게 마무리하고 나니 16-48 승이었습니다. 이기고 나서도 기분이 얼떨떨했던 것 같습니다.

4라운드까지 2승 1무 1패의 크게 나쁘진 않은 성적을 거두어서 그런지 긴장도 다 풀리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이후 5라운드 페어링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 대국했던 제리 하이 선수가 와서 자신과 매칭될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당시 제리도 2.5승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리와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연승에 의한 자신감과 어제 이겨본 상대라는 마음가짐으로 약간 붕 뜬 상태에서 둔 것 같습니다. 제리와는 전야제 이후 말을 꽤 나눠봐서 친한 상대였기에, 한결 더 풀어진 마음으로 임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굉장히 안일했습니다. 제리의 경우 미국에서 왔기 때문에(그마저도 토론토를 거쳐서 와서 이동시간이 20시간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어제는 시차적응이나 피로 문제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또한 레이팅도 전 라운드의 두다보다도 높은 2023이었습니다. 안일했던 마음가짐이 결국 패배를 불러왔습니다. 23-41 패, 5라운드까지 2승 1무 2패를 기록하였습니다.

너무 들떠 있었기에 5라운드가 끝나고는 약간 침울해 있었습니다. 이후 6라운드에서는 제대로 하자는 마음가짐을 갖고 6라운드 페어링을 준비하였습니다. 6라운드 페어링이 떴을 때에 제 이름 옆에는 얀 데 흐라프(Jan C. de Graaf, 네덜란드)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이름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의 협회장이자 이전 라운드에서 한국 선수를 이긴 선수였습니다.

저는 다시 긴장한 상태에서 경기에 임했고, 상대는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의외로 경기는 호각이었습니다. 이 대국에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상황이 있습니다.


46수까지 수치가 0인(계속 최선수를 두어나갔을 경우 무승부의 결과가 나오는) 상황이었으나, 47수에서 얀 데 흐라프가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16의 수치를 밟았고 대국은 그 후 최선으로 진행되어 24-40의 결과로 제가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승리였기에 조금 얼떨떨하기도 했습니다.

1일차는 7라운드까지 경기가 있습니다. 6라운드까지 3승1무2패를 기록한 채로 마지막 라운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칭이 뜨자 저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맞는지, 제 이름 옆에는 알렉스 고 보 차오(Bo Chao Alex Koh)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고보차오의 경우 참가자 중 레이팅이 8번째로 높을 정도로 역시 세계적인 선수입니다(삐아냣은 당시 참가자중 5위).


자리에 앉아 인사를 건네니,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이전에 한국에서 살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대국을 시작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준비한 정석(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고 모르는 정석을 준비해 갔습니다.)대로 따라 갔는데, 월드 클라스라는 말이 괜히 쓰이는게 아니다라는 걸 느꼈습니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불리한 길은 가지 않더군요. 무난하게 패배했습니다. 49-15 패.

1일차 7라운드까지 3승1무3패를 기록하여 84명의 선수 중 42위에 랭크되었습니다. 딱 절반이라 신기해 하면서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이날 가장 큰 이슈 중에 하나는, 일본의 나가노 야스시(Yasushi Nagano) 선수의 전승 행진이었습니다. 올해 대회를 처음 나온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기량으로 세계적인 선수들을 이겨나가 1일차 마지막에 1위에 랭크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꽤 놀랐습니다. 워낙에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또한 페어링이 스위스 룰(1라운드는 랜덤 매칭, 2라운드부터는 가능한 한 같은 승수끼리 맞붙도록 페어링이 짜여지는 룰)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는 다른 선수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한국 대표팀끼리 회식을 하러 갔습니다.

길을 걷던 중에 적당히 보이는 데로 들어갔더니, 한인 식당(확실치는 않습니다.) 같은 곳에 우연히 들어갔습니다. 이런 추측을 하는 이유는, 직원이 한국인(혹은 재일 교포)인지 한국어를 쓸 줄 알았고, 가게의 배경음악으로 한국 노래들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경우 고기집에서 고기를 시키면 정말 고기만 주기 때문에, 샐러드나 김치 등도 따로 주문해야 합니다. 또한 양도 한국에 비하면 적은 편입니다. 한국 대표팀이 일본에 오기 전에 한 변호사분께서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셨기 때문에 그 돈으로 회식을 잘 마쳤습니다.

작년 대회의 경우 1일차가 끝난 후에 2일차 첫 라운드(8라운드) 페어링을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올해의 경우 그렇지 않아서 내일의 첫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잠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 게임에 한 시간 가까이 소모되기 때문에 7라운드를 치루었다는 것은 7시간 가까이 머리를 열심히 썼다는 뜻입니다. 그 덕분인지 밤에 스르르 자연스럽게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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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나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열심히 써야겠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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