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in #kr5 years ago

#1. 돌이켜보면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몇 명 없는데,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끼치신 분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시다. (전직 치과의사, 프랜차이즈 개념으로 치과를 몇 개 내시고 다 대박 나서 돈을 많이 버셨고... 일찍 은퇴하시고 평생을 돈 많은 백수로 사셨던...) 그다음이 작은집 막내 삼촌인데(전직 내과의사, 현재 이민 가서 돈 많은 백수로 지냄) 막내 삼촌은 항상 나를 보면 다른 우리 집 식구들처럼 커서 판검사 되라는 말을 안 했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행복
하게 살라고 해줬다.

#2. 중학교 3학년 때... 이맘쯤이었나? 12월쯤이었나? 아무튼... 담임선생님께서 졸업앨범에 싣는다고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라고 하셨다. 나는 '돈 많은 백수'로 적어내려고 하다가 백수라는 말의 어감이 안 좋아서 '돈 많은 프리랜서'라고 적어냈다. 그런데 우리 담임은 나랑 한 마디의 의논도 없이 내 장래희망에 '판사'라고 써서 졸업앨범에 실으셨다.

#3. 대학 때... 아버지가 이름 들으면 다들 아는 모 광고회사에서 부사장으로 은퇴하시고 고문역이 되셨는데 매일 아침 부사장 때와 똑같이 정시에 출근을 하시는 것이었다. 여쭤봤다. '아버지, 이제 인생 2막 사셔야 하는데 왜 출근하세요? 출근 안 해도 급여 나오잖아요...' 그때 우리 아버지가 씨익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첫째로 남자는 명함이 필요하다고, 그래야 친구 만날 때 가오가 선다고 하셨고, 두 번째로는 회사 나가서 끗발질 하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너도 나중에 뭘 하던지 높은 자리 올라가면 그 상황을 즐기게 될 거라고 하셨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인생이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4. 대학 4학년 2학기 때 Goldman Sachs/HK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내 꿈은 돈 많은 백수가 되기 위해 일단 seed money를 많이 모으는 것 하나만 이었다.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뻥 하나 안 보태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근데 모기지 트레이딩은 안 시켜주더라고... C8... 열받아서 때려치우고 컬럼비아로 MFE 공부하러 떠났다. (난 컬럼비아에서 MFE를 할지, 아니면 하버드나 와튼에서 MBA를 할지 막판까지 고민하느라 GRE랑 GMAT을 둘 다 준비했다.)

#5. 컬럼비아 졸업하고 Lehman Brothers/NY에 들어갔는데 거기서는 트레이딩을 안 시켜줘서 다시 HK으로 왔고, 그때부터 본게임? 이 시작됐다. 트레이딩에 미쳐서 살았다. 며칠 전 SNU 후배님이 나한테 물어봤는데... 음... 궁극적으로 파고들면 말이지 트레이딩의 종착역은 딱 하나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이 과정의 무한 반복이 트레이딩이다. 자면서 꿈에서도 트레이딩 생각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눈 비비고 일어나 laptop을 켜고 검증을 하던지, 급하게 옷 입고 출근해서 블룸버그 터미널로 확인을 하던지, 아무튼 24시간을 미쳐있었다.

#6.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그 과정이 익숙해져서 트레이딩으로 돈을 쏠쏠히 벌게 되었을 즘, Lehman Brothers가 파산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내가 일하던 하우스, 우리 floor에서는 50명 넘는 트레이더가 한 번에 해고당하고 나랑 내 사수만이 남았다. 저녁에 둘이 술 마시면서 물어봤다. '내일부터 우리는 뭐 해서 먹고살지요? 잘리지는 않아서 다행인데, 잘린 사람들 몫까지 둘이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말이 씨가 된다고 진짜로 얼마간을 50명이 해야 할 것을 둘이서 했다. 그리고 6년 가까이를 더 HK에서 보냈다. (물론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인원을 충원했지만 New Talent들을 많이 뽑았지, 어쏘나 VP 급은 생각만큼 안 뽑아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고생은 죽도록 했다.)

#7. 도쿄에 와서는 꿈이 조금 바뀌었다. HK에서는 내가 프랍으로 짱 먹었지만 우리 Big Boss의 보너스만큼은 못 받았다. 하는 일 하나도 없이 트레이더들 관리만 하는데 연봉이 수백만 불이었던...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이거... 내 꿈의 설정이 잘못된 것이었다. 돈 많은 백수가 되려면 트레이딩으로 돈을 벌 게 아니라, 트레이더들에게 빨대를 꼽고 단물 뽑아서 보너스 타는 Big Boss가 되어야 한다는...

#8. 지금은 꿈을 이루었다. 트레이딩은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Trader, Quant, Sales, Developer, Programmer들 관리하면서 돈은 많이 받아 가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시간도 널널해서 이렇게 블로그질도 하고... 근데 백수는 되지 못했다. 백수가 되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남자들 사이에서 명함이 주는 사회적인 자존감? 자신감? 이런 것들을 포기해야 하고, 끗발질하는 재미도 포기해야 한다.

#9. 아니... 금일은 요즘 새로 시작한 algorithm paranoid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심심해서 잡담을 끄적였다. 글쎄... 난 나이 마흔에 감히 인생의 꿈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싶다. 노력은 기본이었고 운이 따라줬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을 내 블로그 오는 사람들도 인생의 꿈을 꼭 이루었으면 좋겠고 운이 따라줬으면 좋겠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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