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여행] 시베리아 횡단열차

in #kr7 years ago

이르쿠츠크에서 형이 귀한 몽골음식을 사줘서 배를 든든히 채운 뒤, 4일간 씻지 못할 것을 대비하여 이르쿠츠크 역에 있는 샤워실에서 샤워를 했다. 잔뜩 긴장을 한 채로 샤워를 한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4일간 기차만 타기'

처음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하자고 했으나 기차를 타고 가나 비행기를 타고 가나 금전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기에 협의(?) 후에 절반만 타기로 했다. 남들이 겪는 것의 절반 밖에 타지 않는데 벌써 걱정스럽고 견딜 수 있을지 내 자신에게 계속 물어본다. 이렇듯 여행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호기심은 항상 걱정과 함께 온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플랫폼에 서서 기차를 기다렸다. 우리는 이 곳에 오기 전에 숫자가 작을 수록 그나마 기차가 좋아서 편하다는 말을 듣고 어중간한 099호 열차를 골랐다. 이 열차보다 더 허름하면 못견딜 것 같고 너무 좋은 것을 타자니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리고 우리의 합리적 선택이 얼마나 빛을 발하게 될지 기대하며 들어간 순간 눈 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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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이거 입영열차 같은데요?"

기차에 들어가 자리를 찾으러 가는 그 좁은 길목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모두들 군복을 입고 있다. 심지어 다들 뭐가 그리 급한지 허겁지겁 짐을 정리하고 있다. 늦은 시간 기차는 출발하고 바로 취침을 하라는 기차 안내원의 말에 우린 군인들과 함께 군인처럼 찍소리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참고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안내원은 KTX의 안내원처럼 상냥하게 말을 들어주는 역할이 아니라 기차가 운행하는데 있어서 불안요소를 제거하는 경찰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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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피곤했는지 완전 기절 했다가 눈을 떠보니 기차다. 그리고 어제의 일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지금 내 눈 앞에 빡빡머리 군단이 왔다갔다하면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전문연구요원이란 제도 덕에 군대도 4주 훈련만 다녀온,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로 따지면 '안다녀온' 내가 입영열차를 탈 줄이야. 나야 그렇다 치고 한 번 군대 다녀왔는데 또 입영열차 탄 형은...

"잘 주무셨어여?"

"아니... 나 어제 자다가 군대 다시가는 꿈을 꿨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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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제 자기 전엔 저기가 짐더미였는데...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상상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보다 조금 더 빡세 보이는 기차에서 첫 끼니를 해결하고 다시 휴식에 들어갔다. 사실, 열차 안에서 할 것이라곤 먹기, 수다떨기, 책보기, 멍때리기, 잠자기 밖에 없다. 이 중 먹기와 잠자기가 주요 행위이고 나머지 행동들은 정말 자다자다 머리가 아파서 잠을 못자겠다 싶을 때 한다. 우리야 하루 종일 서로 챙겨가며 말을 붙였지만 맞은 편 1층에 위치하신 할머니와 2층에 위치한 군인은 도통 말도 없고 잠만 계속 잔다. 가끔 살아있는건지 확인을 해야하는게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보면 뒤척임 한 번 하고 또 이상하다 싶으면 일어나서 밥을 먹는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우리는 감탄만 할 뿐이다.

이틑날부터는 군인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첫 날부터 조금이라도 친해지기위해 여행책 뒷 면에 적혀있는 인사와 키릴문자를 외우기 시작했고 틈틈히 앞에서 주무시던 할머니께 사용하며 연습을 했다. 그러다 우리에게 희망의 천사같은 사람이 나타났으니, 이 군인들의 지휘자인 소대장의 일반인 친구가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이었다!!!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형은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온갖 질문을 던졌고 거의 모든 대답은

"I'm sorry. I don't understand"

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손짓발짓까지 이용하여 소대장과 의사소통을 나눴고 어느새 열차에 있는 대부분의 병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들이 뭐를 하는지 서서히 알아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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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시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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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끼 모두 이걸로 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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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차의 시간표. 이걸 잘 보고 있다가 좀 오래 쉬는 역이 있으면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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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의 꼬리칸. 정말로 19호가 마지막 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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