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in #kr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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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한적한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만들었었어. 무너뜨리고 다시 쌓고를 반복하면서, 더운 날엔 말라서 갈라지지않을까 비가 올 땐 모래성 아래를 파서 비를 피하는 곳으로 옮기면서, 그렇게 정성스럽게 모래성과 함께했어.
나는 정말로 내 모래성이 소중했거든. 무너지지 않고 모래성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 정도로 말이야. 모래성과 나는 같이 많은 추억을 만들어갔어. 성 안엔 어떤 사람들이 살 지를 상상하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반짝이는 돌이나 조개껍데기로 장식도 하고, 예쁜 사진도 찍고. 수도 없이 많은 추억들이 있었고 모래성도 나도 너무 행복했어.
그렇게나 행복했는데 어느 날 모래성이 무너져버린거야. 파도가 휩쓸어간 것도 아니었고, 내가 무너뜨린 것도 아니고, 모래성 스스로 무너뜨린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날 한참을 울고 그 바닷가를 떠났지.

나는 다른 바닷가를 다녀보면서 새로운 모래성을 만드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 처음의 내 모래성처럼 예쁘고 튼튼한 모래성이 안만들어지더라. 분명히 새로운 모래성도 훌륭한 모래성이었는데 자꾸만 내 원래 모래성과 비교하게 되고 모자란 점을 찾게됐어. 그래서 그 이후에 만들었던 모래성은 진심으로 예뻐할 수가 없었어.
원래 바다는 하나여서 그런지 어느 바닷가를 가도 모래성과 내가 함께했던 바닷가 그 자리가 떠올랐었어. 그 자리에서 모래성과 나눴던 이야기들, 함께 바닷가와 모래사장을 보며 웃었던 일들도 빠짐없이 다 기억이 났어.
그래서 다시 그 바닷가로 돌아가서 모래성을 지으려고 했는데, 정말 이상하더라. 아까까지만 해도 좋았던 기억들만 생각이 났는데 막상 다시 돌아가니까 모래성이 무너지던 기억밖에 안나는거야. 분명 다시 만들 수 있었는데 나는 그냥 그 자리를 또다시 떠났어. 그렇게 추억이 많았는데도. 그래서 그 자리에 다시 모래성을 만들 수가 없어. 그 자리가 아니어도 새로 만들 수가 없어.

나는 매일매일 생각해. 이런 내가 어디서, 다른 모래성을 쌓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걸 보고 있으면 꼭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이런 내가 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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