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과 싸우고 있나?

in #kr6 years ago

우리는 무엇과 싸우고 있나? 진보는 보수와 싸우고, 보수는 진보와 싸우는가? 젊은 층은 노년 층과 싸우고, 노년 층은 젊은 층과 싸우는가? 자본가는 노동자와 싸우고, 노동자는 자본가와 싸우는가? 과거는 현재와 싸우고, 현재는 미래와 싸우는가? 여자는 남자와 싸우고, 남자는 여자와 싸우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과 싸우는가?

싸움의 대상이 명확해야 이길 수 있다. 하룻밤 내내 나무토막에 불과한 죽은 장승과 싸워야 이길 수도 없고, 장승을 쓰러트린다 하더라도, 거기 깔려 다칠 가능성이 더 크다. 싸움의 대상은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는 의미다. 이 시대의 인류와 한국인의 시대정신에 따른 싸움의 대상은 무엇인가?

필자가 판단하는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 불합리다. 둘째, 우리 안의 두려움과 탐욕이다. 셋째,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불합리란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과관계의 법칙, 심리적 법칙, 역사적 지식 등에 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에 합의된 일반원칙에 배반하는 것도 불합리함이다. 인류평화, 남녀평등, 차별금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조화 등이 그 예일 것이다. 비판적 이성이 도구적 이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도 합리성의 하나에 해당할 것이다.

최근 미투(Me Too)운동의 대상은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불합리가 그 주적이다. 불합리의 대표에 해당하는 것이 가짜보수다. 가짜 보수란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는 보수를 참칭하는 분들을 의미한다. 투표에 이기기 위해 북한에게 총을 싸달라고 하거나, 선관위의 정보 시스템에 Ddos 공격을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국방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군대를 다녀오지 않는 자들을 우리는 가짜보수라고 한다. 미투운동은 우리사회의 불합리성에 대한 자정운동이다.

불합리성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보수안에도 불합리성이 있고, 진보에도 불합리성이 있다. 다만 이를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과거 장자연 사건과 박근혜 정부 당시의 검사의 섹스파티 사건은 가짜 보수들이 덮어 두었다. 자정능력이 없음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투 운동은 여성과 남성간의 갈등이 아니라, 남성 세계 안에 있던 불합리와의 싸움이다. 그래서 남성도 이에 대해 동참하고 반겨해야 한다.

우리가 싸워야할 두번째 대상은 두려움과 탐욕이다. 두려움은 우리를 보수화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탐욕을 선택한다. 미래 빈곤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실직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우리를 탐욕에 이르게 한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과거에 집착하게 한다.

두려움과 탐욕은 급변하는 현 시대를 더욱 뒤쳐지게 한다. 많은 학교의 선생들이 실직의 두려움으로 인해 교육개혁에 찬성하지 못하고 있다. 어학의 가치가 줄어드는 현재도 영어 시간을 줄일 수 없다. 디지털 역량과 협상 및 협조 역량 그리고 비판적 사고돠 종합적 사고 역량을 키워야 하나, 교과과정에 이를 반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에 대한 교과를 개설하면 다른 과목은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이해관계의 틀에 갖혀서, 그리고 생존의 두려움에 갖혀서 한국사회는 한치도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율곡 이이 선생은 만언봉사소에서 당시 조선을 "비유하건대 오래 묵은 집에 재목이 썩어서 언제 쓰러질는지 모르는데 서까래 하나, 기둥 하나도 교체하거나 수리하지 않고서 그저 앉아서 무너지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라고 비판한다.

그 거대한 이해관계의 틀에 갖힌 것이 교육만 그럴까? 우주과학기술 관련 생태계, 국방산업, 대학체계, 의료산업 등 모두 나열하는 것이 오히려 어렵다. 이른바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혁명 및 생명과학기술의 발달은 의료산업의 전반적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래역량을 함양하고 건전한 시민을 키우기 위해 대학교육체계는 말 그대로 변혁(transformation)해야 한다. 우주과학기술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고려할 때, 그 내부의 파벌을 일소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금 스스로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용기와 과단성이 필요하다. 불사조는 스스로의 재에서 다시 태어남으로써 비로서 불사조가 될 수 있다. Self-cannibalism 즉, 자기 식인을 통해 비즈니스는 새로운 발전과 영속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해관계의 틀을 깨어야만 유혈 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셋째,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변화의 현시대에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 우리 인류는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산업혁명이 저녁노을의 화려한 저물고 있고, 새로운 변혁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지식혁명, 지식사회, post human, post capitalism으로 표현되며, 아침 어스름으로 떠오르는 새로운 시대를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지식혁명과 post human 그리고 post capitalism이 오는 것은 확실하나,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아직 모른다.

이들의 구체적 모습을 아직 모르는 이유는 이들이 불확실성의 안개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지식사회의 모습과 post capitalism의 경제시스템 및 post-human이 구축할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예측이란 이미 결정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예측이란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대화와 토론이다. 우리가 아직 미래상을 결정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구체적인 미래상을 그릴 수 있을까?

미래의 안개를 걷어내고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futures readiness, futures literacy, futures culture를 키워야 한다. 작년 말에 우리나라에서 국회 상설미래연구원법이 통과되어, 올해 미래연구원이 설립될 예정이다. 일본은 2015년 1억명총활약사회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내각에 이를 전담하는 각료가 선임되었다. 중국은 2050년까지의 미래계획을 수립했다.

우리나라 기업과 조직에 미래전략실을 많이 두었다. 삼성그룹, 롯데그룹 등이 미래전략실 혹은 이와 유사한 조직을 두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들 조직의 주요 관심사는 단기적인 것이지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고 대응하고 만들어가는데 있지 않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미래위험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의 불합리, 우리 안의 두려움과 탐욕, 그리고 우리 안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함이 대상이다. 이는 진보와 보수의 싸움도, 여자와 남자의 싸움도 아니다. 이를 제대로 인식해야만,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퓨처리스트 윤기영이었습니다.

(c) 윤기영,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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