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건우 작가의 판타지 장편소설 안개의 산

in #kr8 years ago

제목 : 안개의 산.
지은이 : 허건우.

오랜만에 재미있는 모험소설을 읽었다. 외국에서는 모험소설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모험소설이 낯설기도 한데, 저자는 자신이 겪어온 경험으로 배운 인생철학을 모험소설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이 책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다가 이유 없이 몸이 안 좋아진 주인공인 요양을 위해 떠난 작은 마을의 뒷산에서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권의 책으로 되어 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하나의 짧은 동화처럼 되어있어서 어린 아이들에게 읽어줘도 좋을 것 같았다.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세 가지 있었는데 웅덩이에 집착하는 개구리와 단 하루를 사는 에페메레 그리고 열 개의 침노스트를 먹어야 어른이 되는 순록인 차복에 관한 것이었다.

웅덩이에 집착하는 개구리에 관한 이야기는 짧은 글이었지만 아주 깊은 인생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었다. 누구도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작은 웅덩이 속의 개구리. 그 개구리는 작은 웅덩이에서 굶어 죽어가면서도 결코 웅덩이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개구리를 깨우치려 하지만 개구리는 오히려 주인공을 잡아먹으려하고 주인공은 개구리를 피해 도망을 친다.

나는 이 장면을 읽고서 잠시 책을 놓고 창밖으로 스러져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개구리의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겨울의 노을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문득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무언가에 집착하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 아니,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남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는 것, 나에게만 중요한 그 무언가가 있다. 한 발짝만 떨어져서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것이. 어떤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음 에피소드는 에페메레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생물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것은 하루살이처럼 단 하루의 시간만 살뿐이다. 하지만 이 에페메레는 단 하루 밖에 살지 못하면서도 하루에 다 먹지 못할 만큼 많은 먹이를 가운데 놓고 다투느라 하루를 다 써버리고 만다. 그리고 다투지 않는 에페메레들은 하루의 절반을 살고 나서 나머지 절반의 하루가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머지 절반의 하루를 자신이 살아온 절반의 하루를 회상하느라 다 허비해버리고 만다. 나는 이 에페메레의 이야기를 읽고는 움찔했다. 아직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로 지나온 시절을 그리워하고 가끔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에 살지도 않았고, 미래에 살지도 않으며,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라는 말처럼 현실에 충실해야만 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인간존재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지적이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열 개의 침노스트라는 열매를 먹어야만 어른이 된다는 차복의 세계. 차복의 세계에는 집집마다 내려오는 침노스트라는 열매가 있다. 각 가정에서 열리는 침노스트 열매 열 개를 먹어야 차복은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침노스트라는 열매는 열리는 간격이 불규칙하다. 때론 3년에 한 개, 때론 5년에 한 개 열리기 때문에 꾹 참고 기다렸다가 열 개의 침노스트를 다 먹고 나서 어른이 되고 차복의 숲을 벗어나야만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다시 어린 차복으로 돌아가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차복은 8개를 먹고 벗어나기도 하고, 9개를 먹고 벗어나기도 해서 계속해서 어른이 되지 못하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단 하나의 침노스트만 더 먹었어도 어른이 될 수 있었는데, 어린 차복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해 9개의 침노스트를 먹으며 인내했던 순간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단 하나가 열릴 시간만 인내하면 되는 것을......


이 책에 들어있는 짧은 동화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다음 이야기와 연결이 되어 있지만, 하나씩 읽어도 너무나 큰 감동을 선사하고, 인생에 대한 성찰을 계속 하게 해줘서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삶과 존재에 대한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몰입도가 상당한 책이라 만약 중간 중간 책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기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줘도 좋고, 어른들이 읽기에도 너무나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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